계절시(季節詩)감상

三疊 消暑八事 - 삼첩소서팔사

-수헌- 2021. 7. 11. 15:42

三疊 삼첩

앞의 운을 세 번째 사용하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消暑八事(소서팔사) 여덟 수를 지은 뒤, 再疊 消暑八事(재첩 소서팔사)까지 지었음에도 더위를 물리치지 못했는지 다시 앞서와 같은 詩題(시제)에 같은 韻字(운자)를 사용하여 세번째로  三疊 消暑八事(삼첩 소서팔사)의 시를 지었다.

 

松壇弧矢 송단호시

소나무 언덕에서 활쏘기

 

偃蓋蒼蒼赫日中 언개창창혁일중

따가운 햇살 가운데 푸른 그늘 드리워 덮여

四隣賭射巷全空 사린도사항전공

내기 활쏘기에 이웃 거리 사방이 온통 비었네

肩比遠溯分階法 견비원소분계법

법도 따라 섬돌에 멀리 떨어져 나누어 서고

鼻罰猶流設扑風 비벌유류설복풍

코 때리는 벌칙은 여전히 풍속으로 전해오네

但喜酒聲輸漉漉 단희주성수록록

무릇 술 걸러 나르는 소리를 즐거워하다가

渾忘雨氣釀熊熊 혼망우기양웅웅

우기가 뭉게뭉게 일어남은 까맣게 잊고 있었네

紅鱗翠蓋云誰種 홍린취개운수종

껍질 붉고 잎 푸른 소나무를 그 누가 심었는지

嘉樹他年賦角弓 가수타년부각궁

아름다운 나무 두고 후일에 각궁편을 노래하겠지

 

※嘉樹賦角弓(가수부각궁) : 각궁편(角弓篇)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소인들의 말만 듣고 친족들을 멸시하는 임금을 친족들이 원망하여 부른 노래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魯)나라에 사신 갔을 때 노나라 소공(昭公)이 베푼 향연에서 각궁편을 부르고, 이어 노나라 계무자(季武子)의 집에서 베푼 주연에 참석했을 때 그 집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어 이를 좋다고 칭찬하자, 계무자가 말하기를, “제가 이 나무를 잘 길러서, 선생께서 각궁편을 노래해 주신 정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左傳》

 

槐岸鞦遷 괴안추천

홰나무 언덕에서 그네 타기

 

密葉陰濃軟草隄 밀엽음농연초제

나뭇잎 빽빽해 그늘 짙고 언덕에 풀 부드러워

繩兒身子倏參齊 승아신자숙참제

그네 줄에 실은 아이 몸이 갑자기 올라가네

馳來峻阪愁將倒 치래준판수장도

높이 치달을 땐 언덕에 거꾸러질까 걱정되고

蹴到層峯喜更低 축도층봉희경저

차고 층봉에 올랐다 다시 내려오면 안심이네

善舞遙疑攀月兎 선무요의반월토

잘도 뛰어 달나라 토끼 부여잡나 의심들 하나

拙工爭笑拾田鷄 졸공쟁소습전계

재간 없어 개구리 줍는 모양에 다투어 웃네

人間快樂須臾事 인간쾌악수유사

인간의 쾌락이란 모름지기 잠깐일 뿐이라

冉冉殘暉已樹西 염염잔휘이수서

뉘엿뉘엿 석양은 벌써 나무 서쪽에 걸렸네

 

※田鷄(전계): 참개구리 또는 개구리의 통칭.

 

虛閣投壺 허각투호

빈 정자에서 투호놀이 하기

 

陵殽澠酒樂升平 능효민주악승평

많은 술과 고기로 태평성대를 즐기니

松籟桐絲地分淸 송뢰동사지분청

솔바람 거문고 소리에 세상이 맑아지네

二耦齊聽司正誨 이우제청사정회

둘이 짝지어 나란히 사정의 지도를 받아

千秋遙和舍人鳴 천추요화사인명

천추에 멀리 떨친 사인의 명성에 화답하네

捉驍才似追飛礮 착효재사추비포

효를 잡는 재주는 나는 쇠뇌 쫓는 듯하고

立馬榮同建羽旌 립마영동건우정

말 세우는 영광은 정기 세우는 것과 같네

五月不須搖大扇 오월불수요대선

오월 이건만 커다란 부채 부칠 필요도 없이

箭聲錚處自風生 전성쟁처자풍생

화살 소리 쨍그랑하면 절로 바람이 이네

 

※陵殽澠酒(능효민주) ; 많은 고기와 많은 술이라는 뜻. 민수(澠水)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의 강물 이름으로,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2년에, 제(齊) 나라 임금이 연회를 베풀고서 “술은 민수처럼 많고 고기는 언덕처럼 많다[有酒如澠 有肉如陵].”라고 말한 내용이 있다. 다산은 이 시에서 肉(육)殽(효)로 바꾸어 썼다.

※舍人(사인)과 驍(효) ; 사인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곽사인(郭舍人). 투호(投壺)를 잘하기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는 특히 화살을 세차게 병에 던져 넣어 그 화살이 튕겨서 다시 나오게 하는 법을 썼던바, 그 다시 튀어나온 화살을 ‘효(驍)’라고 하였고 효를 손으로 잡으면 점수를 가산해 주기도 했다.

 

淸簟奕棋 청점혁기

맑은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桃笙竹几嬾看書 도생죽궤란간서

대자리 대책상에 앉아 게을리 글을 보는데

炎歊常於佔畢疏 염효상어점필소

무더울 땐 늘 글을 간간이 엿보기만 하네

鶴觀水流聲自好 학관수류성자호

백학관의 물 흐르는 소리는 절로 좋건만

象山河數悟全虛 상산하수오전허

상산의 하도수는 전혀 깨닫지 못하겠네

藩籬力護□防虎 번리력호□방호

힘써 울타리를 치고 지켜서 범도 막고

飣餖輕抛且餌魚 정두경포차이어

또 먹잇감으로 널려 있는 돌 포기하네

自有杭州消日好 자유항주소일호

본디 항주에서는 소일거리가 좋았으니

莫將棋譜問何如 막장기보문하여

앞으로 기보 가지고 무어냐고 묻지 말게

 

※佔畢(점필) ; 책을 엿본다는 뜻으로, 책의 글자만 읽을 뿐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

※鶴觀水流聲(학관수류성) ; 송(宋) 나라 소식(蘇軾)의 시 관기(觀棋) 서문에 “나는 본디 바둑을 둘 줄 모르는데, 일찍이 여산(廬山)의 백학관에서 혼자 노닐 적에 고송(古松) 밑으로 흐르는 물에서 바둑 두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象山河數(상산하수) : 하도수(河圖數). 송나라 상산(象山)의 육구연(陸九淵)이 시장에서 바둑 두는 구경을 했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바둑판 하나를 사 가지고 와서 벽에 걸어 놓고 누워서 그것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깨닫고 말하기를, “이것이 하도수(河圖數)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河圖(하도) ; 중국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가지고 왔다는 쉰다섯 개의 점이 그려진 그림. 낙서(洛書 또는 雒書)와 함께 주역의 기본 이치가 된다.】

※杭州消日好(항주소일호) ; 당 선종(唐宣宗) 때 바둑과 술을 좋아하는 이원(李遠)을 항주 자사(杭州刺史)로 제수하였는데, 이원이 정사는 제쳐 두고 술과 바둑을 일삼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西池賞荷 서지상하

서쪽 못의 연꽃 감상하기

 

群賢分席坐芳池 군현분석좌방지

어진 이들이 향기로운 못가에 나누어 앉아서

綠暗紅酣笑語遲 록암홍감소어지

짙푸른 잎에 붉은 꽃을 느긋하게 웃고 즐기네

誰障吾游眞絶境 수장오유진절경

참으로 절경에서 노는 우리를 누가 막으랴

不須人譽自殊姿 불수인예자수자

절로 자태 뛰어나 사람의 칭찬도 필요 없네

蜂掁玉淚收啼臉 봉쟁옥루수제검

벌은 뺨에 흐르는 옥루에 닿아 거두는 듯하고

鳥拂緗房勸畫眉 조불상방권화미

새는 누런 꽃술 떨쳐 눈썹을 그리게 하네

欲識夭夭含意處 욕식요요함의처

곱고 고운 정취 머금은 곳을 알고 싶거든

請看菡萏未開時 청간함담미개시

아직 피기 전의 연꽃 봉오리를 보게나

 

東林聽蟬 동림청선

동쪽 숲의 매미소리 듣기

 

林亭蒙密不窺天 림정몽밀불규천

무성한 숲 속의 정자 하늘도 안 보이는데

臥聽風枝嘒嘒蟬 와청풍지혜혜선

누워서 흔들리는 가지의 매미 소리 듣는다

聲滿人間身尙隱 성만인간신상은

소리는 세상에 가득 하나 몸은 숨겨져 있고

神飄空外坐如仙 신표공외좌여선

정신은 허공 밖을 날면서 신선처럼 앉았네

澁時艱似更張瑟 삽시간사경장슬

막힐 땐 비파 줄 고쳐 매는 것처럼 어렵고

沸處紛如競渡船 비처분여경도선

한창 울 땐 다투어 건너는 배처럼 어지럽네

爾亦知音難再得 이역지음난재득

너도 소리 알아줄 이 다시 얻기 어려우면

選枝須近曲欄邊 선지수근곡란변

굽은 난간 끝 가까운 가지 골라 울어 주렴

 

雨日射韻 우일사운

비 오는 날 시 짓기

 

闌風伏雨退朱炎 란풍복우퇴주염

계속되는 바람과 비가 무더위를 물리치니

撚蠟如棋客捲簾 년랍여기객권렴

밀랍 비빔이 바둑 손님 주렴 걷는 것 같네

暗地硏心千杵搗 암지연심천저도

어두운 곳에서 마음 닦으며 천 번을 고치고

遙天注目一峯尖 요천주목일봉첨

먼 하늘 쳐다봐도 봉우리는 뾰족하기만 하네

敲推未決頻挼手 고추미결빈뇌수

퇴고를 결정 못해 자주 손을 비벼 대고

莒墨難降又捋髥 거묵난강우랄염

거묵을 항복받지 못해 또 수염을 만지네

何由起得東方朔 하유기득동방삭

어떻게 하면 다시 동방삭을 얻어서

蜥蝪狋吽箇箇拈 석척시우개개념

석척과 시우아를 하나하나 집어내 볼까

 

※遙天注目一峯尖(요천주목일봉첨) : 시상(詩想)이 막혀 시가 잘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거묵(莒墨) : 전국 시대 연(燕)나라 악의(樂毅)가 제(齊)나라를 쳤을 때 거(莒)와 즉묵(卽墨) 두 고을만 항복을 못 받았다는 고사인데, 여기서는 좋은 시구를 얻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蜥蝪狋吽(석척시우) ; 석척은 도마뱀이고, 시우아(狋吽牙)는 개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말함. 한무제(漢武帝)가 엎어 놓은 그릇 속에 수궁(守宮 도마뱀의 일종)을 넣어 두고는 이를 알아맞히게 하였는데, 오직 동방삭(東方朔)만 이를 석척이라고 알아맞혔고, 또 곽사인(郭舍人)이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시우아(狋吽牙)는 뭐냐?”며 묻자, 동방삭은 “개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이다.” 하여 대번에 알아맞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좋은 시구를 척척 찾아내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漢書》

 

 

月夜濯足 월야탁족

달밤에 발씻기

 

石壁靑林送夕陽 석벽청림송석양

푸른 숲 속 돌벼랑에서 석양을 보내노니

凌波仙襪月中涼 릉파선말월중량

달 가운데 능파선의 버선발이 서늘하네

百濟江淸堪受濯 백제강청감수탁

발 씻은 후 백 번 강 건너도 물은 맑고

高麗臭去却聞香 고려취거각문향

고린 냄새 그치고 향내만 높게 나네

嘲騰白蹢如波豕 조등백척여파시

흰 발이 물에 씻긴 돼지 같다고 조롱들 하나

睡覺紅曦未爛羊 수각홍희미란양

붉은 햇볕도 양을 익히지 못함을 졸다 깨닫네

終是英雄眞趣少 종시영웅진취소

참으로 멋이 적어도 끝내 영웅으로 인정할 텐데

女兒何必洗當床 여아하필세당상

어찌 꼭 평상에서 여아 시켜 씻어야 하나

 

 

淸簟奕棋의 제목의 棋가 壺로 잘못 인쇄되어 있고 다섯째구의  防虎앞에 한자가 탈루되었다. 이미지 출처<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