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又消暑八事 - 우소서팔사

-수헌- 2021. 7. 14. 15:20

又消暑八事 우소서팔사

또 더위를 씻는 여덟 가지 일

 

삼복(三伏) 더위가 더욱더 기승을 부리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소서팔사(消暑八事) 시를 세 번이나 지어도 더위를 가시게 하지 못했는지 또 다른 방법의 소서 팔사를 지었다. 이는 剗木通風(잔목통풍; 나무 베어 바람을 통하게 하기), 決渠流水(결거류수; 도랑을 터서 물이 흐르게 하기), 拄松作壇(주송작단; 누운 소나무 떠받쳐 단 만들기), 升萄續檐(승도속첨; 포도넝쿨을 처마에 올려 잇기), 調童晒書(조동쇄서; 아이 시켜 책에 바람 쐬기), 聚兒課詩(취아과시; 아이들 모아 시 공부하기), 句船跳魚(구선도어; 배를 엮어 뛰어 오르는 물고기 잡기), 凹銚爇肉(요요설육; 오목한 냄비에 고기 삶아먹기)의 여덟 가지이다.

 

 

剗木通風 잔목통풍

나무 베어 바람을 통하게 하기

 

㴩水梧枝翳眼中 옹수오지예안중

옹수의 오동나무 가지가 안중을 가리니

鈷丘剷惡賀聲同 고구산악하성동

고구의 악목 벨 때 치하 소리와 같네

塵勞豁去千重障 진로활거천중장

속세의 노력으로 천 겹 장애를 뚫어내고

天路遙開萬里風 천로요개만리풍

천로를 멀리 열어 만 리 바람 개통했네

掣動牀琴絲振嶽 체동상금사진악

평상의 거문고 소리 오악을 끌어 움직이고

鏘鳴簷鐸羽搖銅 장명첨탁우요동

처마 끝 구리풍경은 깃털처럼 흔들려 우네

唯殘側畔靑楓樹 유잔측반청풍수

오직 밭 옆의 푸른 단풍나무만 남겨 두어

看取霜前盡意紅 간취상전진의홍

서리 내리기 전 붉어지는 뜻을 알아보리라

 

㴩(옹) ; 물 이름 옹(灉); 산동성에서 발원하여 저수(沮水)와 함께 황하로 들어간다.

鈷丘剷惡(고구산악) : 고구는 중국 영주부(永州府) 고무담(鈷鉧潭) 서쪽의 작은 언덕인데, 경치가 매우 뛰어났다. 당(唐) 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이곳을 구입하여 친구들과 함께 노닐면서, 예초(穢草)와 악목(惡木)을 모두 베어 버리고 가목(嘉木)과 미죽(美竹) 등을 구경하며 즐겼다고 하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柳河東集》

 

決渠流水 결거류수

도랑을 터서 물이 흐르게 하기

 

餘雨餘雲滿太虛 여우여운만태허

비 온 뒤 남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한데

晨興畚鍤導淸渠 신흥분삽도청거

새벽에 일어나 삼태기 삽으로 도랑 맑게 치네

欣趨欄圈泥居鴨 흔추란권니거압

우리 안 진흙 속에 있던 오리는 기꺼이 달리고

好逝塘坳溢出魚 호서당요일출어

웅덩이에 넘쳐나는 고기는 잘도 헤엄쳐 가네

窄口葫蘆愁下斧 착구호로수하부

호리병처럼 입구 좁아 파내기 걱정이더니

轉頭㟪?沛奔車 전두위류패분차

산에서 구르는 수레처럼 물이 콸콸 흐르네

傳聞四瀆如珠貫 전문사독여주관

전해 듣건대 사독도 구슬처럼 꿰었다 하는데

長笑東儒諫鑿書 장소동유간착서

동유들의 물길 뚫으란 상소에 오랫동안 웃네

 

※太虛(태허) : 우주의 본체 또는 기의 본체로 하늘을 뜻함.

※四瀆(사독) ; 예전에 나라의 운명과 관련이 깊다고 여기던 네 강. 조선 시대에는 낙동강(洛東江), 대동강(大洞江), 한강(漢江), 용흥강(龍興江)으로 네 방위를 따라 정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揚子江), 지수이(濟水), 황허(黃河), 화이허(淮河)의 4대 강을 말한다.

 

拄松作壇 주송작단

누운 소나무 떠받쳐 단 만들기

 

撐支偃蓋作高松 탱지언개작고송

드리운 가지 괴어 소나무 그늘 높이 만드니

軒起前榮積翠濃 헌기전영적취농

처마 앞에 푸르고 짙은 그늘이 무성해지네

對立虛明迎月牖 대립허명영월유

마주 선 밝은 허공은 달맞이하는 들창이요

上頭紺碧冪雲峯 상두감벽멱운봉

꼭대기 검푸른 빛은 구름에 덮인 봉우릴세

東褰恰好通明庶 동건흡호통명서

동쪽 들린 곳은 마치 밝은 빛 통하기에 좋고

西嚲兼須蔭下舂 서타겸수음하용

서쪽 늘어진 곳은 그늘 아래 절구질하기 좋네

賀汝登壇做盟主 하여등단주맹주

자네가 단에 올라 맹주 된 것을 축하하나

他年不受大夫封 타년불수대부봉

후일에 응당 대부의 봉작은 받지 말게

 

※他年不受大夫封 ; 진 시황(秦始皇)이 태산(泰山)에 올랐을 때 소나무 밑에서 비바람을 피하고는 그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해 준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맹주(盟主)가 되었기 때문에 대부 정도에 봉해지는 것은 바라지 말라는 뜻이다.

 

升萄續檐 승도속첨

포도넝쿨을 처마에 올려 잇기

 

老幹交舒弱蔓纖 노간교서약만섬

늙은 줄기와 가늘고 약한 넝쿨 엇갈리게 엮으니

碧陰如海罩長檐 벽음여해조장첨

푸른 그늘이 길게 추녀를 감싸 바다와 같네

虯鬚累綰風難動 규수루관풍난동

꼬부랑 수염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묶어 잡고

馬乳成漿渴可沾 마유성장갈가첨

열매엔 말 젖 같은 즙 생겨 목을 축일 수 있네

雨點攔遮高捧傘 우점란차고봉산

높다란 우산처럼 빗방울을 막아 가리고

月光穿漏細篩鹽 월광천루세사염

체에 소금을 친 듯 달빛도 가늘게 새어 나오네

誰知漢使乘槎力 수지한사승사력

누가 알았으랴 한나라 사신이 뗏목 탄 노력이

解使山家辟署兼 해사산가벽서겸

사신에서 벗어난 후 산가와 벽서를 겸할 줄을

 

※誰知漢使乘槎力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장건(張騫)의 고사임. 장건(張騫)은 무제(武帝)의 명으로 흉노와 대적하기 위해 서역의 대월지국에 동맹을 맺으러 사신으로 가다가 두 번이나 흉노에게 잡히는 등 고생 끝에 13년 만에 돌아왔다. 이때 서역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가져와 훗날 흉노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서역으로 출발할 때 뗏목을 타고[乘槎]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이후 乘槎(승사)는 힘든 사신이 된다는 의미가 되었다.

※解使山家辟署兼 ; 사신에서 돌아온 장건은 기원전 123년 교위가 되어 흉노원정군으로 종군하면서, 사신으로 다녀올 때의 경험과 정보를 이용해 큰 공을 세워 박망후(博望侯)의 작위를 받았다. 이를 辟署(벽서; 임금 벽, 고을 서)로 표현한 듯하다.

또 기원전 121년, 장군 이광(李廣)을 따라 종군하며, 이광이 흉노의 대군에게 포위당했을 때 장건은 약속한 기일에 늦는 바람에 대패하여 그 죄로 참수형에 처해 질 뻔하였으나 돈을 내고 속전하여 박망후의 작위를 잃고 서민으로 강등당했다. 이를 山家(산가; 산사람)로 표현한 듯하다. 이처럼 흉노 원정은 장건에게 생애 최대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안겨준 셈이 되었다.

【명대(明代)의 《도경본초(圖經本草)》에 포도(葡萄)가 장건이 서역에서 중국에 들여온 것이라 전하고 있어 이 시에 인용된 듯하다.】

 

調僮曬書 조동쇄서

아이 시켜 책에 바람 쐬기

 

秀水亭臨小酉房 수수정림소유방

빼어난 물가 정자에 임해 소유방이 있는데

縹衣披拂趁微涼 표의피불진미량

서늘한 때 맞아 옷 떨치며 책을 털어 보네

吹翻亂葉欣風逈 취번란엽흔풍형

기쁘게 밝은 바람을 쐬며 책장 불어 넘기며

閱遍群籤覺晝長 열편군첨각주장

많은 기록들 살피다 보니 해가 긺을 깨닫네

卷裏乾螢多歲月 권리건형다세월

오랜 세월에 책 속에 개똥벌레가 말라 있고

穴中肥蠹始風霜 혈중비두시풍상

틈 사이의 살찐 좀은 처음으로 바람을 쐬네

前人晒腹嗟何及 전인쇄복차하급

옛사람의 쇄복에 못 미침을 탄식하지만

記性纔能寫硬黃 기성재능사경황

쓰는 것도 겨우 경황에 베낄 수 있을 뿐이네

 

※소유방(小酉房) : 중국 소유산(小酉山)의 석혈(石穴) 속에 고서(古書) 천여 권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장서(藏書)가 많은 서실(書室)의 뜻으로 쓰인다.

※쇄복(晒腹) : 쇄복은 햇볕에 배를 쬔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때 학륭(郝隆)이란 사람이 칠석날에 이웃 부잣집들이 비단옷을 볕에 쬐는 것을 보고는, 그는 마당으로 나가 태양을 향해 누워 있었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내 뱃속에 들어 있는 서책들을 볕에 쬐고 있다[我曬腹中書耳;아쇄복중서이]’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경황(硬黃) : 경황지(硬黃紙). 당지(唐紙)의 이름으로, 법첩(法帖)을 모사하는 데 쓰는 요즘의 습자지 같은 종이이다. 종이에 황랍(黃蠟)을 발라서 투명(透明)하게 만든 종이이다.

 

聚兒課詩 취아과시

아이들 모아 시 공부하기

 

少微塾史若嫌遲 소미숙사약혐지

소미의 역사책은 더딘 것이 싫어서

暑月詩篇例課兒 서월시편례과아

더울 땐 아이들에게 시편을 가르친다

薈萃書能披白帖 회췌서능피백첩

지어 모은 글들은 백첩을 펼친 듯하고

輸贏算各界烏絲 수영산각계오사

승부의 계산은 각기 오사를 한계로 하네

時頒筆墨褒居首 시반필묵포거수

때론 필묵을 나누어 장원을 포창하고

且讀蘇黃要洗脾 차독소황요세비

또 잘못을 고치기 위해 소황의 시도 읽네

此是春亭新體裁 차시춘정신체재

이것이 바로 춘정의 새로운 체재로서

都都平丈總能知 도도평장총능지

도도평장을 모두가 능히 알 수 있다오

 

※少微塾史(소미숙사) : 소미는 송(宋) 나라 때의 학자 강지(江贄)의 호이고, 역사책이란 바로 그가 저술한 『통감절요(通鑑節要)를 가리킨다.

※輸贏(수영) ; 승패, 승부, 도박에서 잃거나 따는 돈의 액수

※烏絲(오사) ; 오사란(烏絲欄)의 준말로, 즉 책장의 검은 줄로 그어진 선을 가리킨다.

※蘇黃(소황) : 송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을 같이 일컫는 말이다.

※體裁(체재) ; 시문(詩文)의 형식을 의미한다.

※都都平丈(도도평장) : 옛날 삼가촌(三家村)의 무식한 선생이 아동에게 논어(論語)를 가르치면서 공자(孔子)가 주(周) 나라의 예(禮)를 일컬어 ‘욱욱호문(郁郁乎文)’이라고 한 것을 도도평장으로 잘못 읽었다는 데서 온 말로, 성인의 글을 잘못 읽는다고 조롱하는 말이다.

 

句船跳魚 구선도어

배를 엮어 뛰어오르는 물고기 잡기

 

無鉤無網兩漁船 무구무망양어선

낚시도 없고 그물도 없는 두 척의 어선을

直角相聯汎鏡天 직각상련범경천

직각으로 연결하여 맑은 강에 띄웠는데

自有喜魚跳滿席 자유희어도만석

고기 뛰어 자리에 가득하니 절로 기뻐서

不過揮麈坐隨沿 불과휘주좌수연

주미 떨치며 앉아 물 따라 내려가지 않네

江流未礙彎環曲 강류미애만환곡

강물은 굽은 곳을 거리낌 없이 흐르고

月影仍涵句股弦 월영잉함구고현

달그림자 구고현처럼 물속에 잠기었네

穿取柳條歸每緩 천취류조귀매완

버들가지에 꿰어 천천히 돌아올 때마다

不愁多露豆花田 불수다로두화전

콩밭에서 이슬 흠뻑 젖어도 걱정 않네

 

凹銚爇肉 요요설육

오목한 냄비에 고기 삶아먹기

 

北柄南流日本銚 북병남류일본요

북두성 자루가 남으로 흘러 뒷날 냄비가 되니

倫膚細切待炎宵 륜부세절대염소

고기 잘게 썰어 넣고 더위 식길 기다리네

輕雲始釀黃梅雨 경운시양황매우

가벼운 구름 일어 비로소 황매우를 내리니

高浪俄騰白馬潮 고랑아등백마조

흰 물결 갑자기 세차게 일어 높이 일렁이네

翠釜珍羞今淡泊 취부진수금담박

푸른 솥의 좋은 음식이 이제 담박해지니

朱門豪擧到漁樵 주문호거도어초

권세가의 좋은 음식이 어초 앞에 펼쳐졌네

從來此事嫌淸寂 종래차사혐청적

예로부터 이런 일은 조용히 함을 싫어해서

莧肚藜腸廣見招 현두려장광견초

나물 먹는 가난한 사람들 널리 초대하였네

 

※輕雲始釀黃梅雨(경운시양황매우) : 구름이 일어 비를 만든 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비유함.

※白馬潮(백마조): 하얀 물결이 세차게 일어나는 것을 흰 말에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는 냄비의 물이 끓어오름을 비유함.

※朱門(주문) : 왕공(王公) 귀족의 붉은 칠을 한 대문으로 권세가를 뜻함.

※漁樵(어초) : 어부와 나무꾼. 즉 초야의 서민을 뜻함.

※莧肚藜腸(현두여장) : 비름이나 여뀌 같은 나물로 배와 창자를 채우는 가난한 사람.

 

<이미지 출처 ; 한국고전종합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