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소서팔사(消暑八事) - 정약용

-수헌- 2021. 7. 7. 15:40

하지도 지나면 해가 점점 기울어져 시원해져야 할 텐데 입추가 지날 무렵까지는 오히려 삼복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요즘은 시원한 에어컨도 있고 물가나 산으로 피서여행을 다니지만 옛날 선비들은 어떻게 피서를 하였을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소서팔사(消暑八事)’란 시를 지어 더위를 피하는 여덟 가지 피서 방법을 제시했다. 그 여덟 가지 피서방법으로

송단호시(松壇弧矢),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괴음추천(槐陰鞦遷),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허각투호(虛閣投壺), 빈 정자에서 투호 놀이하기.

청점혁기(淸簟奕棋). 깨끗한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서지상하(西池賞荷).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동림청선(東林聽蟬), 동쪽 숲 속의 매미소리 듣기.

우일사운(雨日射韻), 비 오는 날 시 짓기.

월야탁족(月夜濯足), 달밤에 발 씻기의 제목으로 7언 율시 8수를 지었고 또 같은 제목과 운자(韻字)로 재첩(再疊), 삼첩(三疊) 16수를 더 지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 소서팔사(又消暑八事) 16수를 더 지어 모두 40수의 더위를 이기는 시를 지었다. 다산(茶山)은 어떤 방법으로 더위를 피했는지 차례대로 감상해 본다.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 갑신년 여름

 

松壇弧矢 송단호시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兩階升耦楅當中 량계승우복당중

화살통 가운데 두고 양쪽 계단 짝지어 오르니

沈李浮瓜酒不空 침리부과주불공

오얏 가라앉고 오이 뜬 술동이가 가득하네

紗帳交遮松罅日 사장교차송하일

얇은 휘장으로 소나무 틈의 햇볕을 가리고

布帿正飽栗林風 포후정포율림풍

밤 숲 바람에 과녁의 베는 부풀어 올랐네

增開野席容賓雁 증개야석용빈안

길손을 맞이하려 들판의 자리 더 넓히고

且設涼棚學老熊 차설량붕학로웅

또 차일도 치고 무능한 이에게서도 배우네

總道炎曦消遣好 총도염희소견호

모두 말하길 뜨거운 여름에 소일하기 좋은데

雪天何必詫鳴弓 설천하필타명궁

활 소리 울리니 눈 오는 날처럼 시원하리

 

槐陰鞦遷 괴음추천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槐龍一桁偃芳隄 괴룡일항언방제

홰나무 큰 가지 하나 다리처럼 늘어져

垂下鞦遷兩股齊 수하추천량고제

그네 양끝을 가지런히 아래로 드리웠네

直怕巖中飛電掣 직파암중비전체

바위틈을 번개처럼 스쳐 날 땐 두렵지만

忽看天外碧雲低 홀간천외벽운저

하늘 밖 푸른 구름 낮게 언뜻 보이네

跼來頗似穹腰蠖 국래파사궁요확

굽히고 올 땐 허리가 자못 자벌레 같고

奮去眞同鼓翼鷄 분거진동고익계

떨치고 갈 땐 참으로 날개 치는 닭과 같네

習習涼颸吹四座 습습량시취사좌

되풀이할 때 서늘바람이 온 좌석에 불어오니

不知紅日已傾西 불지홍일이경서

붉은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운 줄도 몰랐네

 

虛閣投壺 허각투호

빈 정자에서 투호놀이하기.

銅壺兩耳席前平 동호량이석전평

두 귀 달린 구리 병을 앞에 편평히 놓으니

水閣風松盡日淸 수각풍송진일청

물가 정자에 부는 솔바람 종일토록 맑네

一點丁東銀漏滴 일점정동은루적

한 점씩 물시계 물 떨어지는 소리 울리고

衆聲鏜鎝竹樓鳴 중성당삽죽루명

뭇사람들 떠드는 소리는 죽루를 울리네

從行二馬成三馬 종행이마성삼마

따라가는 두 말이 세 말을 이루기도 하고

簇立紅旌雜翠旌 족립홍정잡취정

모여 선 붉은 기에 푸른 기 섞이기도 하네

就把激驍要倍算 취파격효요배산

격효에 대한 점수는 갑절로 계산하면서

哄堂一笑太憨生 홍당일소태감생

하나같이 떠들썩하게 태감생처럼 웃는다

 

※丁東(정동) : 옥(玉) 같은 것이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 또는 풍경(風磬) 같은 것이 울리는 소리.

※銀漏(은루) : 물시계. 조선 세종 때 자격궁루(自擊宮漏)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 사용됐던 고려시대 물시계의 이름은 루상수(漏上水)였으며, 별칭으로 궁루(宮漏)·금루(禁漏)·은루(銀漏) 등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激驍(격효) : 투호놀이에서 세게 던진 살(矢)이 튕겨 나오면 손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太憨生(태감생) : 귀여우면서도 어리석은 모습.

 

청점혁기(淸簟奕棋)

깨끗한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炎天瞌睡厭攤書 염천갑수염탄서

더운 날 졸음이 와서 책 보기는 싫으니

聚客看棋計未疏 취객간기계미소

손님 모아 바둑 구경이 괜찮은 계책이네

棗核療飢諧者怪 조핵료기해자괴

대추씨로 요기한단 건 해자의 괴담인데

橘皮逃世理耶虛 귤피도세리야허

귤 속에서 세상 피한 건 사실인가 거짓인가

已忘火傘寧揮麈 이망화산녕휘주

편안히 주미 휘둘러 뜨거운 햇볕 잊었는데

思切銀絲且賭魚 사절은사차도어

생선회 생각 간절하여 또 고기 내기를 하네

對局旁觀均一飽 대국방관균일포

대국자나 방관자가 똑같이 싫증이 나니

息機閒話復何如 식기한화부하여

기심 내려놓고 한담이나 나눔이 또 어떨까

 

※棗核療飢(조핵료기) ; 대추씨로 요기한다는 것은 후한 때 방술사(方術士) 학맹절(郝孟節)이 대추씨만 입에 머금고 밥을 먹지 않고도 5년 10년을 살아다는데서 나온 말.

※橘皮逃世(귤피도세) ; 옛날 파공(巴邛)이란 사람이 집안 귤나무에서 귤 하나를 따다 쪼개 보니 신선 세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즉 棗核療飢(조핵료기)나 橘皮逃世(귤피도세)는 신선놀음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銀絲(은사) ; 은색 실처럼 가늘게 썬 생선회를 뜻함.

 

西池賞荷 서지상하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垂柳光風轉碧池 수류광풍전벽지

푸른 못에 밝은 바람 불어 수양버들 흔들리고

芙蓉顔色使人遲 부용안색사인지

부용의 자태는 사람을 머뭇거리게 하네

藐姑氷雪超超想 막고빙설초초상

막고의 빙설은 상상을 멀리 뛰어넘고

越女裙衫澹澹姿 월녀군삼담담자

월녀의 치마저고리처럼 자태도 얌전하네

一榼兼宜彎象鼻 일합겸의만상비

일합은 코끼리 코처럼 굽어 술잔을 겸하고

百花那得妬蛾眉 백화나득투아미

온갖 꽃은 미인의 시샘을 받으니 어찌하랴

天心留此娉婷物 천심류차빙정물

하늘이 이 아름다운 물건을 그대로 두어

靜俟塵脾苦熱時 정사진비고열시

더위로 고통받는 속인을 조용히 기다리네

 

※藐姑氷雪(막고빙설) ; 藐姑山에는 신인(神人)이 산다는데, 그 살결이 마치 얼음이나 눈 같고, 자태가 마치 처녀 같다는 데서 온 말. <壯子 逍遙遊>

※象鼻(상비) ; 象鼻杯(상비배). 줄기가 붙은 연잎을 이용한 술잔. 위(魏)나라의 정각(鄭慤)이 삼복더위에 빈료(賓僚)들을 데리고 피서를 가서 큰 연잎을 연격(硯格) 위에 올려놓고 술을 따른 후 잎 가운데를 비녀로 찔러서 줄기로 술이 흘러내리게 하고는, 그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 모양과 같이 굽혀서 이를 빨아먹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벽통배(碧筩杯)라고도 한다.

 

東林聽蟬 동림청선

동쪽 숲속의 매미소리 듣기.

紫霞紅露曙光天 자하홍로서광천

자하의 새벽하늘 홍로처럼 밝아 오니

萬寂林中第一蟬 만적림중제일선

고요한 숲 속에서 첫 매미 소리 들리네

苦境都過非世界 고경도과비세계

이 세상 아닌 데서 어려운 처지 다 보내고

鈍根淸脫卽神仙 둔근청탈즉신선

둔한 근본 맑게 벗으니 바로 신선이로세

高飄妙唱凌虛步 고표묘창릉허보

빼어난 노래 높이 날리어 허공을 넘어 걷고

旋搦哀絲汎壑船 선닉애사범학선

골짜기에 뜬 배처럼 슬픈 곡조 되돌아 잡네

聽到夕陽聲更好 청도석양성경호

석양에 이르러선 그 소리 더욱 듣기 좋아

移床欲近老槐邊 이상욕근로괴변

평상 옮겨 늙은 홰나무 곁으로 가고 싶네

 

※紫霞(자하) ; 전설에서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哀絲(애사) : 슬픈 음조(音調)를 내는 현악기

 

雨日射韻 우일사운

비 오는 날 시 짓기

窶藪詼諧度潦炎 구수회해도료염

구수의 해학으로 장마와 염천을 보내노라니

美人顔色隔重簾 미인안색격중렴

미인의 고운 얼굴 주렴으로 거듭 막혀 있네

唯知競病全依律 유지경병전의률

경병이 온전히 율격을 따른 줄만 알았는데

忽訝戈波半露尖 홀아과파반로첨

과파가 끝을 반쯤 드러내어 갑자기 놀라네

思路望窮千里目 사로망궁천리목

생각을 할 땐 눈으로 천 리 끝을 바라보고

疑山撚斷數莖髥 의산년단수경염

의심이 날 땐 몇 가닥 수염을 꼬아 끊네

不如自作詩千首 불여자작시천수

스스로 시 천 수를 지으며 따르지 않는 건

難字還宜信手拈 난자환의신수념

어려운 운자를 손 가는 대로 집어내는 것일세

 

*구수회(窶藪詼) : 한(漢) 나라 때 동방삭(東方朔)이 해학에 매우 뛰어났는데, 한 번은 곽사인(郭舍人)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 나무에 붙어 있는 기생(寄生)을 보이지 않게 가리고서 이를 알아맞히라고 하자, 동방삭이 이를 ‘구수(窶藪)’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구수는 곧 동이를 머리에 받쳐 이는 똬리이므로, 곽사인이 그에게 알아맞히지 못했다고 말하자, 동방삭이 말하기를, “나무에 붙어 있으면 기생이지만, 동이 밑에 받치면 똬리가 된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기생이란 나무에 붙어 있는 버섯으로, 그 모양이 똬리처럼 동그랗게 생겼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漢書>

*경병(競病) : 시를 지을 때 어려운 운자(韻字)를 달아 짓는 것을 말한다. 양무제(梁武帝)때 장군 조경종이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양무제가 잔치를 열고 운자(韻字)를 걸고 시를 지었는데 다른 운자는 모두 사용하고 경병(競病)만 남아 모두 쩔쩔 맬 때, 조경종이 이 운을 사용해 멋진 시를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과파(戈波) : 서법(書法)의 과법(戈法)과 파법(波法)을 가리키는 말로서, 글씨 쓰는 것을 이른 말이다.

 

月夜濯足 월야탁족

달밤에 발 씻기

矮簷排悶送殘陽 왜첨배민송잔양

조그만 집에서 번민 없이 석양을 보내니

素月流輝釣石涼 소월류휘조석량

하얀 달빛이 낚시터를 비추어 서늘하구나

魯野漁歌愁水濁 로야어가수수탁

노나라 어부는 물 흐릴까 걱정됨을 노래하고

晉亭禊事憶蘭香 진정계사억란향

진나라 정자의 계사에는 난초 향기 생각나네

瀊回欲學隨波鴨 반회욕학수파압

물결 돌려 오리가 일으키는 물결 배우려 하고

晞挋還如畏濕羊 희진환여외습양

닦아 말릴 땐 다시 물 싫어하는 염소 같네

社友相携渾睡熟 사우상휴혼수숙

사우들 서로 이끌고 모두 깊이 잠이 드니

不羞紅旭照藜牀 불수홍욱조려상

명아주 침상에 아침 해 비춰도 부끄럽지 않네

 

이미지 출처<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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