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再疊 消暑八事 - 재첩 소서팔사

-수헌- 2021. 7. 9. 15:12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소서팔사]에 관한 시 여덟 수를 지은 뒤 다시 앞서와 같은 시제(詩題)에 같은 운자(韻字)를 사용하여 소서팔사의 시를 지었다.

 

再疊 재첩

앞의 운을 다시 사용하다

 

松壇弧矢 송단호시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翠蓋童童火傘中 취개동동화산중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푸른 그늘 무성하니

分曹習藝勝談空 분조습예승담공

편 나눠 기예 익힘이 실없는 얘기보다 낫겠네

人閒已度移秧雨 인한이도이앙우

모내기철 비도 이미 지나 사람들은 한가하고

天靜仍無擺木風 천정잉무파목풍

고요한 하늘엔 나무 흔드는 바람도 없네

箭社美規防虎豹 전사미규방호표

활모임의 좋은 규칙은 호표를 막기 위함이라

澤宮遺禮溯豻熊 택궁유례소한웅

택궁이 남긴 예도에 따라 안웅에 맞서네

行觥釋算歸來晩 행굉석산귀래만

술잔 나누고 산가지 놓고 늦게야 돌아오니

桑樹西邊月似弓 상수서변월사궁

뽕나무 서쪽 끝의 반달이 활을 닮았네

 

※澤宮(택궁) ; 주나라 시대에 사(士)를 뽑기 위해 활쏘기를 연습시키던 궁전.

※豻熊(안웅) ; 활 쏘는 장소에 설치한 안후(豻侯 : 들개 가죽으로 장식한 과녁)와 웅후(熊侯 : 곰의 가죽으로 장식한 과녁)를 말한다.

 

槐岸鞦遷 괴안추천

홰나무 언덕에서 그네 타기

 

毿毿兎目蔭芳堤 삼삼토목음방제

방초 언덕에 늘어진 홰나무 가지 그늘에

綵索雙垂簇立齊 채색쌍수족립제

채색 그네 줄 두 가닥 가지런히 드리웠네

吹面風來誇得意 취면풍래과득의

얼굴에 바람 스쳐 득의 함을 자랑하고

當頭月掛欲衝虛 당두월괘욕충허

허공을 치솟고자 하니 머리에 달 걸리겠네

騰霄仙已乘雲鶴 등소선이승운학

하늘에 오른 신선이 탄 구름 속의 학은

蓄銳人方似木鷄 축예인방사목계

기력을 모은 인간세상 목계와 같구나

向晩招呼酬麥醞 향만초호수맥온

저물녘엔 서로 불러 보리술 돌려 마시려

兩行分坐水東西 양행분좌수동서

물 동쪽과 서쪽에 두 줄로 나눠 앉았네

 

※木鷄(목계) ; 사람의 힘이 강하게 보임을 비유한 말. 목계(木鷄)는 나무를 깎아 만든 닭이란 뜻으로, 옛날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이 임금을 위해 투계(鬪鷄)를 길렀는데, 임금이 싸울 만한 닭이 되었느냐고 묻자, 기성자가 대답하기를 ‘다른 닭이 울어도 이 닭은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아서,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이제는 이 닭의 덕이 온순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莊子》

 

虛閣投壺 허각투호

빈 정자에서 투호놀이 하기

 

松髥檜鬣翠蕤平 송염회렵취유평

솔과 회나무 지엽이 푸르고 고르게 드리워져

釦矢銅壺韻更淸 구시동호운경청

금테 화살과 구리병의 소리 또한 맑아지네

雙瀑交摏深水躍 쌍폭교용심수약

쌍 폭포 서로 쏟아져 깊은 물이 튀듯 하고

一槌時下病鐘鳴 일퇴시하병종명

한 막대씩 내던질 땐 헌 종이 울리 듯하네

樂存貍首宜懸鼓 악존리수의현고

풍류는 이수에 있으니 의당 북을 매어 달고

禮倣豻侯合建旌 례방한후합건정

예는 안후를 모방하여 모두 기를 세웠네

蹴毱彈棋歸一類 축국탄기귀일류

공차고 바둑 두는 일도 끝내기는 한 가진데

舊儀誰問魯諸生 구의수문로제생

그 누가 노나라 제생에게 옛 풍속을 물을까

 

※貍首(이수); 일시(逸詩;시경에 수록되지 않은 고시, 또는 전해 내려오지 않았으나 후대에 발견되어 모은 시)의 편명인데, 이(貍)는 오지 않다[不來]의 뜻으로, 천자국에 내조(來朝)하지 않은 제후(諸侯)의 머리를 쏘아 버린다는 내용을 담은 악장으로, 이는 제후들이 활을 쏠 때에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

※豻侯(안후) : 들개 가죽으로 장식한 과녁

※魯諸生(노제생) : 노나라의 모든 선비, 학자.

 

淸簟奕棋 청점혁기

깨끗한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黑白交鋪撤案書 흑백교포철안서

책상 걷어치우고 흑백의 바둑을 펼치니

淳昌竹簟卍文疏 순창죽점만문소

순창의 대자리에 卍자 무늬 듬성하네

死生相變生方死 사생상변생방사

죽고 삶이 서로 변해 살았던 게 금방 죽고

虛實無端實亦虛 허실무단실역허

허와 실이 끝이 없어 실한 것 또한 허하네

快手飛騰鶯趁蝶 쾌수비등앵진접

좋은 수는 꾀꼬리가 날아 나비 쫓는 듯하고

拙謀遲鈍鷺窺魚 졸모지둔로규어

서툰 꾀는 우둔한 백로가 고기 엿보듯 하네

明朝更議舟中載 명조경의주중재

내일 아침 다시 의논하여 바둑판을 배에 싣고

一櫂滄波任所如 일도창파임소여

노 저어 푸른 물결 가는 대로 맡겨야겠네

 

西池賞荷 서지상하

서쪽 연못의 연꽃 감상하기

 

十笏亭前九曲池 십홀정전구곡지

조그마한 정자 앞 아홉 굽이의 못에

荷風吹急柳風遲 하풍취급류풍지

연에는 바람 급히 불고 버들에는 더디네

新開菡萏滔滔愛 신개함담도도애

새로 핀 연꽃은 사랑스러움이 넘치고

半擺臙脂宛宛姿 반파연지완완자

연지의 부드러운 자태 반쯤 열렸네

東海休懸三世眼 동해휴현삼세안

동해는 삼세의 눈으로 바라보길 그치고

西湖今作一州眉 서호금작일주미

서호에서 지금 한 고을의 미인이 되었네

須知世上看花趣 수지세상간화취

모름지기 세상의 꽃구경하는 취향을 알면

不在桃紅李白時 불재도홍리백시

붉은 복사 하얀 오얏꽃 필 때만 있지 않네

 

※十笏(십홀) ; 笏(홀) 열 개를 펼쳐 놓을 만한 넓이로 아주 작은 면적을 말함.

※동해삼세(東海三世) : 동해는 선경(仙境)인 봉래도(蓬萊島)가 있다는 동쪽 바다를 말하고, 삼세는 선녀(仙女)인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이르기를, “동해가 세 번 상전(桑田)으로 변한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東林聽蟬 동림청선

동쪽 숲의 매미소리 듣기

 

碧雲紅旭滿江天 벽운홍욱만강천

넓은 하늘에 푸른 구름 아침 햇살 가득하니

萬尺長聲惹一蟬 만척장성야일선

한 매미가 일만 자나 긴 소리를 내는구나

後事隨流秦土偶 후사수류진토우

죽은 후에는 진나라 토우 따라 흘러가지만

前身承露漢銅仙 전신승로한동선

전신은 한나라 동선에서 감로 받아 마셨지

初來瑟瑟黏松蓋 초래슬슬점송개

처음에는 쓸쓸히 소나무에 붙어 있다가

時復棲棲著藕船 시부서서저우선

때로는 다시 연잎에 앉아 머물기도 하네

叵耐月明霜厚夜 파내월명상후야

견딜 수 없는 건 달 밝고 서리 내린 밤에

百蟲啁哳繞牆邊 백충조찰요장변

담장 가에서 온갖 벌레 울어대는 때일세

 

※銅仙(동선); 한무제(漢武帝) 때 선인(仙人)이 손으로 쟁반을 받쳐 들고 감로(甘露)를 받는 형상을 구리로 만든 기물(器物).

 

雨日射韻 우일사운

비 오는 날 시 짓기

 

休將韻事度霖炎 휴장운사도림염

장마 염천 보내며 시 짓는 일도 그만두고

霧裏看花似隔簾 무리간화사격렴

안갯속에 보는 꽃은 주렴으로 가린 듯하네

頭上壁皆千仞立 두상벽개천인립

머리 위 벼랑은 모두 천 길이나 높이 섰고

眼前山忽九疑尖 안전산홀구의첨

눈앞의 산은 문득 구의산처럼 뾰족하네

欲捐鷄肋仍無肉 욕연계륵잉무육

살이 없는 닭갈비는 버리고 싶으나

將謂蛾眉亦有髥 장위아미역유염

장차 미인에게도 수염이 있다 하려고 하네

縱使今人能夙悟 종사금인능숙오

지금 사람이 일찍 깨달을 수 있다 하여도

外孫虀臼却難拈 외손제구각난념

좋은 시구는 도리어 집어내기 어렵네

 

※眼前山忽九疑尖 : 시를 짓는 데 있어 시상(詩想)이 막혀 시가 잘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外孫虀臼(외손제구); 좋은 말(시구)이라는 뜻. 外孫은 딸의 아들이니 ‘好[=딸 녀女+아들 자子]’가 되고, 부추 찧는 절구인 虀臼(제구)는 매운 것을 받으니까 ‘辭[사=받을 수受+매울 신辛]’로 풀이되어 ‘好辭’의 뜻이 된다는 것으로, 이는 한단순(邯鄲淳)이 지은 조아(曹娥)의 비문에 채옹(蔡邕)이 8글자로 제서(題書)한 글 중 일부인데 원문은 黃絹幼婦外孫虀臼(황견유부외손제구)이다. 조조(曹操)양수(楊修)가 함께 길을 가다가 이 여덟 글자를 보고, 양수는 즉석에서 절묘호사(絶妙好辭)로 풀이했지만 조조는 30리를 지나가서야 비로소 깨달아 ‘유지무지교30리(有智無智校三十里)’란 말이 생겼다 함.

 

月夜濯足 월야탁족

달밤에 발 씻기

 

策策鳴沙步夕陽 책책명사보석양

지팡이 울리며 석양에 모래 위를 걸으니

滄浪遠色水微涼 창랑원색수미량

멀리 비치는 푸른 물결이 조금 서늘하네

躡從皆是比丘白 섭종개시비구백

모두 비구처럼 밝은 곳 따라 올라가

踞洗奚煩女子香 거세해번녀자향

걸터앉아 씻으니 여자의 향이 필요 없네

性本熙怡隨浴鳥 성본희이수욕조

성정은 본디 낙천이라 물새를 따랐으나

歸猶餘戀似牽羊 귀유여련사견양

돌아와도 메인 양처럼 연민이 남네

波心捉月愁還放 파심착월수환방

물결 속의 달 잡았다 놓친 게 아쉬운데

玉兎思搘折角牀 옥토사지절각상

옥토끼가 귀 꺾인 침상을 괴고자 하네

 

이미지 출처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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