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溟大師의 충절과 詩

四溟大師-일본으로 가다(대마도에서 본토로)

-수헌- 2020. 6. 10. 12:58

사명대사(四溟大師)는 대마도에서 3개월 이상을 머물다 일본 본토로 가게 되는데 정확히 언제 건너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2월 하순에 교토(京都)에 도착하고 섣달그믐을 본법사(本法寺)에서 지냈다는 기록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간 것은 처음부터 도쿠가와(德川家康)로부터 강화 요청이 있어서가 아니고 대마도주인 평의지(平義智)가 조선과 화호(和好)를 맺기 위해 도쿠가와를 핑계로 강화를 요청했고, 사명대사에 의해 조선과의 강화가 성립되자 조선과 본국(일본)과의 강화가 성립되지 않으면 후환이 우려되어 평의지가 도쿠가와에게 편지를 보내 도쿠가와의 승인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사명대사가 일본 본토로 건너갔는지 여부도 모르고 있다가 1605년 5월 대사가 돌아오기 직전 평의지의 편지를 받고서야 알았다 한다.

따라서 사명대사의 일본에서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고 단지 가는 곳마다 지은 사명대사의 시(詩)에 의해 알 수 있는데 그 행적과 왜인을 굴복시키고 국위를 선양한 공적의 일면을 찾아본다.

※ 당시 대마도주는 종의지(宗義智)로 알고 있는데, 종의지(宗義智 소오 요시토시)와 평의지(平義智 다히라 요시토시)는 같은 사람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일본인의 성을 다르게 적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풍신수길(豊臣秀吉,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평수길(平秀吉, 타이라 히데요시)로, 덕천가강(德川家康.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원가강(源家康, 미나모토 이에야스)으로 써놓은 경우가 많다,

 

赤關海夜泊 적관해야박

밤에 적관해에 배를 대다

 

碧琉璃界泛瓊樓 벽유리계범경루

푸른 유리 같은 바다에 옥 같은 배 띄우니

汗漫無涯浩不收 한만무애호불수

끝없이 넓은 바다에서 돌이킬 수 없네

萬里壯游心眼大 만리장유심안대

만 리 먼 길에 마음도 눈도 크게 뜨나

百年超忽蟪蛄羞 백년초홀혜고수

백 년이 잠깐이니 혜고(蟪蛄;매미)가 부끄럽구나

月明半夜鯨鵬戲 월명반야경붕희

달 밝은 한밤중에 고래와 대붕은 희롱하고

雲盡三清宿耀浮 운진삼청수요부

구름 걷힌 하늘에는 빛나는 별들이 떠 있네

北極朝廷音信斷 북극조정음신단

북극의 조정에는 소식이 끊어졌는데

吳鉤獨向赤關洲 오구독향적관주

오구는 홀로 적관주(赤關洲)로 향하도다.

 

※오구(吳鉤) : 춘추 시대 歐冶子(구야자)가 오(吳)나라에서 만든 여섯 자루의 명검(名劍)중 하나로 월(越)나라 句踐(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얻은 보검이다. 전(轉)하여 명검을 뜻한다.

鉤(구)는 칼끝이 활처럼 굽은 도검(刀劍)의 이름이며, 옛날에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선사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두보(杜甫)의 시(詩)〈후출새(後出塞)〉에 “소년이 이별할 때 내게 준 것이 있어, 웃음 머금고 오구를 바라보네.〔少年別有贈 含笑看吳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오구(吳鉤)는 먼 길 떠난 사명대사 자신을 지칭한 듯하다.

적관(赤關)시모노세키(下關)이다.

 

岨峿吾生也 저어오생야

나의 일생은 험하고 어긋났지만

吁嗟已矣夫 우차이의부

오로지 탄식만 할 뿐이구나

行年六十二 행년륙십이

금년에 나이 예순 둘인데

太半在長途 태반재장도

절반은 먼 길 위에 있었네

髪白非心白 발백비심백

머리는 희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고

形枯道不枯 형고도불고

꼴은 말랐어도 도는 마르지 않았네

吾身天共遠 오신천공원

내 몸은 하늘과 함께 멀리 있으니

壯志月同孤 장지월동고

장한 뜻이 달과 같이 외롭도다

宇宙秋毫大 우주추호대

우주는 가을철 털끝만 한데

干戈萬事辻 간과만사십

전쟁은 만사를 큰길로 내 모네

長風麤膽氣 장풍추담기

오래 떠돌다 보니 배짱과 기개도 거칠어져

無語倚菖蒲 무어의창포

창포에 기대어 말이 없구나

 

 

 

霜津海中寫懷 상진해중사회

상진해 중에서 회포를 적다.

 

恭承聖命渡滄溟 공승성명도창명

삼가 임금의 명을 받아 창해를 건너가니

履險忘身許一生 이험망신허일생

위험 속에도 몸을 잊고 일생을 바쳤네

三寸恥爲蘇季子 삼촌치위소계자

세치의 혀는 소계자(蘇季子)가 부끄럽고

六奇空羡漢陳平 륙기공이한진평

한(漢) 진평(陳平)의 여섯 계책을 공연히 부러워하네

思歸念切歌長鋏 사귀념절가장협

장협가(長鋏歌)를 노래하며 돌아갈 생각 간절하나

作客時多損性靈 작객시다손성령

손님 노릇에 성령(性靈)이 많이 상했도다.

髪白形枯非爲口 발백형고비위구

머리털 희어지고 몸 마른 건 못 먹어서가 아닌데

只緣無榮繫長纓 지연무영계장영

다만 영예롭게 (원수를) 묶어올 긴 줄이 없기 때문이구나

 

蘇季子(소계자) :소진(蘇秦), 전국 시대 연나라 문후의 책사.

전국 7웅(戰國七雄) 중 가장 강한 진(秦)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6국이 동맹하여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을 설파하여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의 재상이 되었다. 합종은 진나라의 책사 장의(張儀)가 진나라가 6국 동맹을 분쇄하고, 각각 화친해야 한다는 연횡책을 폄으로써 깨졌다.

陳平(진평) :진류자(陳留子), 한나라의 정치가. 원래 서초패왕 항우의 책사였으나, 후에 유방을 도와 여섯 가지 기묘한 계책으로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여씨의 난 때 주발과 함께 여씨 일족을 몰아내고 한 문제를 옹립했다.

장협가(長鋏歌): 제나라의 재상인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이었던 풍환(馮驩)이 불렀다는 노래. 풍환은 본시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찾아왔으나 맹상군은 그가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3등 식객으로 받아주었다. 그는 대우에 불만을 품고 긴 칼을 두드리며 돌아가야겠다고 노래했다. 맹상군이 이 소식을 듣고 대우를 잘 해주자 계책을 세워 후일 맹상군이 크게 성공하도록 도왔다.

長纓(장영); 적을 묶어올 긴 줄.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남월(南越)이 화친을 원하므로 사자를 보내 남월왕을 설득해 제후로 삼고자 했다. 이때 간대부(諫大夫) 종군(終軍)이 남월에 사자로 가기를 자청하면서 “긴 끈을 받아 반드시 남월왕을 묶어 대궐 아래로 데려오기를 원합니다.(願受長纓, 必羈南越王而致之闕下.)”라고 말하며, 황제에게 긴 끈을 내려줄 것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