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곡우(穀雨)와 차(茶)

-수헌- 2022. 4. 15. 11:31

곡우(穀雨)는 봄철의 마지막 절기로서 곡우가 지나면 다음 절기는 바로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이다. 이 무렵은 농촌에서 씨를 뿌리고 못자리를 만드는 시기로, 농사의 근원이 되는 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곡우란 이름도 곡식에 필요한 비를 기원하는 뜻에서 유래한 것 같다. 논밭에서는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지지만, 우리네 선비님들은 새로이 돋아나는 어린 찻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는 즐거움에 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를 노래한 시에는 차(茶)를 마시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노래한 시가 많이 보인다.

 

 

穀雨日始雨 곡우일시우     李敏求 이민구 

곡우에 비로소 비가 내리다

 

拓戶條風好 척호조풍호

문을 활짝 여니 봄바람 불어 좋아서

巡簷穀雨妨 순첨곡우방

처마 밑 거닐려니 곡우가 훼방하네

煎茶蘇病肺 전다소병폐

차 달여 마셔 병든 가슴 소생시키고

漉酒浣愁腸 록주완수장

술 걸러 마셔 마음의 시름 씻어내네

徑綠抽纔嫩 경록추재눈

어린싹이 돋아나 오솔길 푸르러지고

林紅吐乍芳 임홍토사방

갑자기 꽃향기 피어나 숲이 붉어지네

卽今春事早 즉금춘사조

지금 당장은 봄철 농사일이 일러서

巢燕莫須忙 소연막수망

둥지의 제비도 아직 바쁘지는 않구나

 

※條風(조풍) :계절에 따라 부는 팔풍(八風)의 하나로, 봄에 부는 동북풍을 말한다. 입춘 후 45일 동안 분다고 한다. 팔풍은 입춘의 조풍, 춘분(春分)의 명서풍(明庶風), 입하(立夏)의 청명풍(淸明風), 하지(夏至)의 경풍(景風), 입추(立秋)의 양풍(涼風), 추분(秋分)의 창합풍(閶闔風), 입동(立冬)의 부주풍(不周風), 동지(冬至)의 광막풍(廣莫風)이다.

 

*이민구(李敏求,1589~1670) :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 관해(觀海).

 

 

상춘 이수(傷春二首)     신종호(申從濩)  

 

茶甌飮罷睡初輕 다구음파수초경

차를 마신 뒤에 가벼운 졸음이 오니

隔屋聞吹紫玉笙 격옥문취자옥생

휘장 너머에서 좋은 옥피리 소리 들려오네

燕子不來鶯又去 연자불래앵우거

꾀꼬리마저 떠난 뒤 제비는 오지 않고

滿庭紅雨落無聲 만정홍우락무성

붉은 꽃잎이 뜰에 가득 소리 없이 지는구나

 

粉墻西面夕陽紅 분장서면석양홍

흰 담장 서쪽 면에 석양이 붉게 비치고

飛絮紛紛撲馬鬃 비서분분박마종

버들 솜 날아와 말갈기에 엉겨 붙었네

夢裏韶華愁裏過 몽리소화수리과

꿈속의 소화는 시름 속에서 지나가고

一年春事楝花風 일년춘사연화풍

또 한해 봄철의 연화풍이 불어오네

 

紅雨(홍우) : 비 오듯 붉은 꽃잎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韶華(소화) : 화창한 봄의 경치. 젊은 시절.

楝花風(연화풍) : 봄의 끝자락인 곡우 무렵에 불어오는 봄철의 마지막 화신풍(花信風).

 

 

田家晩春 전가만춘     丁若鏞 정약용 

농가의 늦은 봄

 

雨歇陂池勒小涼 우헐피지륵소량

비 그친 방죽엔 잠깐 서늘한 기운 돌고

楝花風定日初長 연화풍정일초장

해 길어지기 시작하니 연화풍이 불어오네

麥芒一夜都抽了 맥망일야도추료

하룻밤 사이 보리 이삭이 모두 패어 나고

減却平原草綠光 감각평원초록광

들판의 풀들은 아직 푸른빛이 덜하구나

泥水漪紋漾碧靴 니수의문양벽화

흙탕물은 신발에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槹閒臥井邊莎 설고한와정변사

두레박은 한가로이 우물가 이끼에 누웠네

西隣黃犢春來健 서린황독춘래건

서쪽 마을 송아지는 봄이 오자 튼튼해져

新服平畦八齒耙 신복평휴팔치파

새로이 써레를 메고 밭두둑을 갈고 있네

荊桑芽吐魯桑舒 형상아토로상서

꾸지뽕은 싹이 돋고 여느 뽕은 잎이 피니

螘子纖纖出殼初 의자섬섬출각초

누에는 가는 실로 고치를 짓기 시작하네

從此女紅爭日夜 종차녀홍쟁일야

이제부터 부녀자들 길쌈으로 밤낮 다투니

小姑朝起廢粧梳 소고조기폐장소

작은아씨 아침에 일어나 머리도 못 빗겠네

 

※女紅(여홍) : 예전에, 부녀자들이 하던 길쌈질.

 

新茶 신차     丁若鏞 정약용  

새로 제조한 차

 

銷金帳外建高牙 소금장외건고아

아름다운 장막 밖에 깃대를 높이 세우니

蟹眼魚鱗滿眼花 해안어린만안화

찻물 끓는 모습이 눈에 가득 어른거리네

貧士難充日中飯 빈사난충일중반

가난한 선비 점심 끼니도 채우기 어려워

新泉謾煮雨前芽 신천만자우전아

새 샘물로 느긋이 우전차를 끓이는구나

民憂莫問群仙境 민우막문군선경

백성의 근심을 신선 세계에 묻지 마소

水厄誰分謝客家 수액수분사객가

손님 사절하는 집에 누가 수액을 나눌까

自信胸中無壅滯 자신흉중무옹체

가슴속에 막힘이 없음을 스스로 믿으며

喫添淸苦更堪誇 끽첨청고경감과

청고한 맛을 더해 마시니 더욱 자랑스럽네

 

※銷金帳(소금장) : 침대 주변에 치는 금실로 장식한 휘장. 아름다운 장막이라는 뜻.

※蟹眼魚鱗(해안어린) : 게의 눈알 고기비늘이란 말이나 로, ‘물이 막 끓기 시작할 때의 작은 거품을 형용한 것’이다.

※眼花(안화) : 눈에 어른거리는 모습.

※雨前芽(우전아) : 雨前茶(우전차). 곡우(穀雨) 이전에 어린 찻잎을 채취하여 제조한 차를 말하며 차()의 품질을 상품으로 친다..

※水厄(수액) : 차를 너무 많이 마시게 되어 느끼는 고통. 진(晉) 나라 때 왕몽(王濛)이 차를 매우 좋아하여 손님이 그의 집에 가면 반드시 차를 마시게 되므로, 당시 사대부들이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겨, 왕몽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오늘은 수액(水厄)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