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樓와 密陽

嶺南寺竹樓 外 - 林椿

-수헌- 2021. 12. 14. 19:37

영남사(嶺南寺)는 현재의 영남루의 자리에 있던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이다. 영남사(嶺南寺)에는 절과 함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고려시대의 문인 林椿(임춘)嶺南寺竹樓(영남사죽루)와 題嶺南寺(제영남사)란 시에서 영남루가 세워지기 약 200년 전 영남사의 절경을 신선이 살던 원교(圓嶠)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유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嶺南寺竹樓 영남사죽루      林椿 임춘

 

嶺南山水甲吳興 영남산수갑오흥

영남사의 산수는 오흥에서도 제일인데

樓上春來偶一登 누상춘래우일등

봄이 와 누각 위에 우연히 한 번 올랐네

橫皺愁眉孤岫遠 횡추수미고수원

근심스레 눈 찌푸리니 먼 산봉우리 외롭고

平鋪淨練碧波澄 평포정연벽파징

넓게 펼쳐진 푸른 물결은 맑고 깨끗하네

雲飛畫棟歸湘浦 운비화동귀상포

나는 구름 같은 화동은 상포로 돌아가고

風送漁舟入武陵 풍송어주입무릉

고깃배는 바람 따라 무릉으로 들어가네

罷罷揮毫留粉壁 음파휘호유분벽

시를 지은 뒤에 붓 휘둘러 벽에 남긴 건

重遊聊欲記吾曾 중유요욕기오증

다시 놀 때 예전의 나를 기억하려 함이네

 

吳興(오흥) : 중국 저장 성 북부의 옛 지명. 지금의 절강성 오흥현을 말하며 중국 남부의 절경에 비유함.

畫棟(화동) : 단청(丹靑)한 마룻대.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도록 된 도리

湘浦(상포) : 湘水의 포구. 湘水는 상강(湘江)으로 광서성(廣西省)에서 발원하여 호남성(湖南省)으로 유입되는 호남성 최대의 강이며 동정호(洞庭湖)로 흘러 들어감.

 

 

題嶺南寺 제영남사      林椿 임춘

 

曾聞圓嶠臨蒼濤 증문원교임창도

일찍 듣기에 푸른 바다에 있는 원교에

樓閣玲瓏駕巨鼇 누각영롱가거오

큰 자라 위에 있는 누각이 영롱하다네

鼇傾海動群仙駭 오경해동군선해

자라 기울면 바다 흔들려 신선들이 놀라서

茫茫失去一峯高 망망실거일봉고

아득히 높은 봉우리로 잘못 갔다네

飛來怳惚移於斯 비래황홀이어사

그 누각이 문득 이곳으로 날아 옮겨 와서는

磅礡千古當古壕 방박천고당고호

옛 성 해자를 오랫동안 웅장하게 덮었네

突起連空如疊玉 돌기연공여첩옥

쌓아놓은 옥처럼 우뚝 솟아 공중에 닿았고

百丈淸潭橫鴨綠 백장청담횡압록

백길 맑고 푸른 물가에 오리가 비껴 나네

水泛桃花出洞中 수범도화출동중

복사꽃 물에 떠서 골짝에서 나오고

居人宛是奏餘俗 거인완시주여속

주민은 완연히 넉넉한 풍속을 아뢰네

靑山影裏兩三家 청산영리양삼가

푸른 산 그림자 속엔 두 세 집뿐이나

水柳陰中千萬屋 수류음중천만옥

물가 버드나무 그늘 속엔 천만 집이네

日暮郊原牛馬歸 일모교원우마귀

해 저물면 들녘의 소와 말이 돌아오고

春深洲渚鳧鷖浴 춘심주저부예욕

깊은 봄 물가에 오리 갈매기 헤엄치네

渔舟之子棹如飛 어주지자도여비

고깃배는 어부가 나는 듯이 노를 저어

溪岸不知盤幾曲 계안부지반기곡

시내를 몇 구비나 돌았는지 알 수 없네

洛城遷客來何時 낙성천객래하시

서울을 떠난 손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樓上欲窮千里目 루상욕궁천리목

누각 위에서 천리 밖을 보려고 하네

山耶雲耶遠一色 산야운야원일색

산인가 구름인가 멀어서 한빛인데

雁點長空行斷續 안점장공행단속

기러기 먼 하늘에 끊어졌다 이어져 가네

天涯晩色正蒼然 천애만색정창연

저무는 하늘가 모습 참으로 창연하여

其奈思家心更速 기내사가심경속

갑자기 고향 집 생각남을 어찌하나

不用重來登此樓 불용중래등차루

다시 와도 이 누각에 오르지 말아야지

煙波好處使人愁 연파호처사인수

풍경 좋은 곳이 시름을 자아내게 하니

 

圓嶠(원교) : 전설 속의 신선들이 사는 산. 발해(渤海) 동쪽 깊은 골짜기에 대여(岱輿) 원교(圓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선산(仙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바다에 떠 있으므로 상제(上帝)가 떠내려 갈까 봐 걱정스러워 열다섯 마리의 자라로 하여금 떠받치고 있게 하였다 한다.

 

*林椿(임춘, 1149 ?~1182 ?)은 고려시대의 문인으로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이다. 과거에 수차례 떨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조통(趙通) 황보 항(皇甫沆)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 등과 함께 중국 위(魏) 나라의 완적(阮籍) 혜강(嵇康) 등이 구성한 죽림칠현(竹林七賢, 일명 江左七賢)에 비견하여 고려의 강좌칠현(江左七賢)으로 불리며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이 시기는 정중부(鄭仲夫)의 무신집권기로, 이규보(李奎報)의 칠현설(七賢說)에 이들은 술 마시고 시 지으며 호탕하게 즐겨서 세인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는데, 무신정권 하에서의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영남사 부속암자였던 무봉사에서 바라본 밀양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