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樓와 密陽

영남루(嶺南樓)와 문인들의 교류

-수헌- 2022. 3. 26. 11:51

영남루(嶺南樓)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한 규모, 그리고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고승 사명대사(四溟大師),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 사람들을 시문으로 굴복시킨 청천 신유한(靑泉 申維翰) 등을 배출한 밀양지역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역대로 문학 창작의 자산이 되었다. 따라서 영남루는 휴식이나 제영(題詠)의 장소로 쓰이다가 부사가 관리하는 객사(客舍)의 일부로 되어 자연스럽게 사신과 관리들이 공적으로 묵고 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당대의 유명한 학자나 문인들, 그리고 관찰사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수령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등림(登臨)하여 시문을 남겼다. 특히 이들 문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시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를 차운한 것도 많지만 독자적으로 운자를 내어 지은 것도 많다.

영남루를 소재로 문인들이 교류하면서 주고받은 시 몇 수를 차례로 소개한다.

 

 

送梁都事 송양도사     金宗直 김종직 

양도사를 보내며

 

舜卿 壬寅七月 自戶曺佐郞 爲慶尙都事

순경 임인칠월 자호조좌랑 위경상도사

양순경(梁舜卿)은 임인년 7월에 호조 좌랑에서 경상도 도사가 되었다.

 

嶺南山水窟 영남산수굴

영남의 산과 물과 굴 중에서

何地最淸雄 하지최청웅

어디가 가장 맑고 뛰어난가

景物吾鄕勝 경물오향승

경치로는 내 고향이 뛰어나고

形容乃祖工 형용내조공

형용은 그대 조부가 능했으니

也應江筆牘 야응강필독

응당 강필의 시판을 보면은

仍想錦心胸 잉상금심흉

좋은 글재주 품었다고 생각되네

君繼箕裘業 군계기구업

그대는 선조의 업을 이었으니

風儀在眼中 풍의재안중

훌륭한 풍채가 눈 속에 들겠지

 

都事祖正郞梁汝恭 有詩名 賦密陽嶺南樓詩 板猶在壁

도사조정랑양여공 유시명 부밀양영남루시 판유재벽

도사의 조부인 정랑 양여공이 시명이 있었다. 그가 지은 밀양 영남루 시가 있는데, 그 판이 아직도 벽에 걸려 있다.

 

粉署稱淸俊 분서칭청준

분서에서도 청준으로 불리는 이가

迢迢入幕賓 초초입막빈

머나먼 곳에 막빈으로 들어왔으니

莫愁辭北闕 막수사북궐

대궐을 떠나는 건 걱정하지 말고

且爲福南人 차위복남인

장차 남쪽 사람들을 복되게 하소

節鉞威兼濟 절월위겸제

절월은 위엄과 민생 구제 겸하고

江山興有神 강산흥유신

강산을 일으킬 신묘함이 있으리라

瓜期眞一瞥 과기진일별

임기는 참으로 잠깐일 뿐이니

知子不逡巡 지자불준순

그대는 알고 머뭇거리지 않겠지

 

※江筆(강필) : 훌륭한 시문을 비유한 말이다. 강필은 양(梁) 나라 때의 문장가인 강엄(江淹)의 붓이란 뜻으로, 그가 일찍이 곽박(郭璞)에게서 오색필(五色筆)을 받아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가 뒤에 꿈에 그 붓을 다시 돌려주고는 문재(文才)가 상실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箕裘業(기구업): 선대(先代)의 업(業)을 완전히 이어받음을 뜻한다.

※粉署(분서) : 백색(白色)으로 칠한 관서(官署). 한(漢) 나라 때 여러 성중(省中)에 모두 호분(胡粉)으로 벽을 발랐기 때문에 여러 성을 분서라 하였는데, 전하여 제조(諸曹)의 낭관(郞官)을 일컫기도 한다.

※淸俊(청준) : 용모가 맑고 빼어남.

※節鉞(절월) : 조선 시대, 지방에 관찰사, 유수, 병사, 수사, 대장, 통제사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주던 절과 부월

 

 

예림서원(禮林書院).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밀양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