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州楊氏(密城君派)

관서공자(關西孔子) 양진(楊震)

-수헌- 2020. 1. 29. 15:49

   서예를 배우면서 천자문을 쓰다 보니 꼭 100번째 문장에 易輶攸畏 屬耳垣牆(이유유외 속이원장; 쉬울이, 가벼울유, 바유, 두려울외, 붙일속 귀이, 담원, 담장)이란 문구가 나온다.

   그 뜻은 군자는 가볍게 움직이고 쉽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하고, 벽에도 귀가 있으니 경솔히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글의 뜻을 공부하다 보니 사지공(四知公) 관서공자(關西孔子) 양진(楊震)의 고사(故事)가 생각나서 적어본다.

 

   양진(楊震)우리가 흔히 어떤 부정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쓰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을 처음 사용한 분인데, 원래는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고 하는가? (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 청주양씨(淸州楊氏) 시조는 고려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를 배행해 오신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이신데, 이분의 43대조가 바로 양진(楊震)이다.

   당나라 때 아동 교육서인 몽구(蒙求)에 사지(四知)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옮겨보면,

   사지(四知)천지(天知)신지(神知)아지(我知)자지(子知)를 말한다. 후한(後漢)양진(楊震)의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인데, 이를 <진외사지(震畏四知)>라 한다. 또 이 고사(故事)<양진사지(楊震四知)>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에서 옮긴 이야기이다.

   진외사지(震畏四知) - 양진(楊震)이 사지(四知)를 두려워하다-

   후한(後漢)의 양진(楊震)이 무재(茂才 : 秀才)에 뽑혔는데 네 번 벼슬을 옮겨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다. 그 후 동래태수(東萊太守)가 되어 임지로 가는데 창읍(昌邑)을 거치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난 날 그가 형주자사로 있을 때 천거해 주어 무재(茂才)에 뽑힌 왕밀(王密)이 창읍현령(昌邑縣令)이 되어 있었다. 왕밀은 은인인 양진을 찾아보고 밤이 되자 금 10근을 가지고 와서 은밀히 양진에게 주는 것이었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잘 알거늘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데 무슨 이유인가?"

   (故人知君, 君不知故人何也)

   왕밀이 말했다. "한밤중이라 아는 자가 없습니다." (暮夜無知者)

   이에 양진이 말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고 하는가? (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

   그러자 왕밀이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그는 성질이 공정하고 청렴하여 사사로운 청을 받지 않았다. 자손들이 모두 거친 먹거리를 먹고 걸어 다녔다. 오랜 친구들이 후손을 위해 산업(産業)을 하기를 권했으나 양진은 즐겨 하지 않고 말했다.

   "후세(後世)의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을 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이라고 칭하게 하여 이런 평판을 자손에게 물려준다면 이보다 더 후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使後世稱爲淸白吏子孫, 以此遺之, 不亦厚乎) 하였다.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시조이신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도 청백리(淸白吏)였다고 하고, 선조 중 조선 4대 명필이자 유명한 태산가의 저자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공도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지만 사후 후손들에게 남겨진 재산이 없었다 하니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청백리(淸白吏)적인 가풍은 이때부터 연유 했나 보다.

 

   양진(楊震; 59~124)은 후한(後漢)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으로 자는 백기(伯起)라 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학문을 좋아하여 경전에 밝고 박람(博覽)해서 당시 여러 선비들이 말하기를 "관서의 공자 양백기(關西孔子楊伯起)"라 했다 한다. 또 고향이 홍농인 관계로 우리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중국쪽 본관인 홍농양씨(弘農楊氏)의 본관을 최초로 쓰신 분이기도 하다.

   중국 양씨의 뿌리는 공손황제(公孫黃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황제의 41세손인 백교(伯橋)가 처음으로 양씨(楊氏) 성을 사용한 양씨의 태시조이고 60세손(백교의 19세손)이 바로 양진이다.

   황제(黃帝)와 그의 아들 소호(少昊)는 함께 중국 전설상의 삼황오제중 한분으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비록 전설상의 인물이기는 하나 우리 청주 양씨도 중국 삼황오제의 후손이 되는 셈인가.

   삼황오제에 대하여는 전하는 문헌에 따라 설이 분분하여 정설은 없지만,

   우선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수인씨(燧人氏)를 말하는데, 수인씨(燧人氏) 대신 여와씨(女媧氏)를 넣기도 하고 황제(黃帝)를 넣기도 한다.

   또는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을 말하기도 한다.

   오제(五帝)로는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황제(黃帝)당요(唐堯)우순(虞舜)을 말하기도 하고,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황제(黃帝) 대신에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을 넣고, 당요(唐堯)우순(虞舜)을 합하여 오제(五帝)라 하기도 한다.

   또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당요(唐堯)우순(虞舜)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성군으로 이름 높은 제왕들이다.

 

 중국 양씨 세계표 (출처: 청주양씨 대종회)

   

  

 

 

 

():1. 41世 伯嬌가 처음으로 楊氏성을 사용한 太始祖이다.

        2. 60世 震43世孫 楊起淸州楊氏 始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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