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중에서도 언뜻 비가 개면 높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는 것이 제법 가을을 느끼게 한다. 가을을 느끼며, 고려 때의 문신 이지심(李知深)의 감추회문(感秋回文)이란 시를 감상한다. 이 시는 제목에서 밝혔듯이 회문시(回文詩)의 형태로 되어있는데, 회문시란 시를 첫머리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의미가 통하고 시법에도 어긋나지 않게 지은 한시를 말하며, 한자란 문자 체계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형태이다. 일종의 언어유희에 해당하지만 옛날 시인들은 즐겨 지었고 후대에 오면서 점차 사라졌다.
感秋回文 감추회문 李知深 이지심
가을을 느끼며 회문시를 짓다.
散暑知秋早 산서지추조
더위 흩어지고 이른 가을임을 알게 되니
悠悠稍感傷 유유초감상
걱정스레 아픈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네
亂松靑蓋倒 난송청개도
어지러운 소나무에 푸른 덮개가 쳐졌고
流水碧蘿長 유수벽라장
흐르는 물 푸른 넝쿨처럼 길게 이어졌네
岸遠凝煙皓 안원응연호
멀리 언덕에는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고
棲高散吹涼 서고산취량
누각 높아서 부는 바람 흩어져 시원하네
半天明月好 반천명월호
하늘 반쪽에 비친 밝은 달빛이 아름다워
幽室照輝光 유실조휘광
방안에 밝은 빛을 그윽하게 비치는구나
이 시를 거꾸로 읽으면[逆讀] 이렇게 된다.
光輝照室幽 광휘조실유
밝은 빛이 비쳐 방안이 그윽하니
好月明天半 호월명천반
아름다운 달이 하늘 반쪽 밝히네
涼吹散高棲 량취산고서
서늘한 바람 높은 누각에 흩어지고
皓煙凝遠岸 호연응원안
흰 안개는 먼 언덕에 엉키었구나
長蘿碧水流 장라벽수류
긴 넝쿨은 흐르는 물처럼 푸르고
倒蓋靑松亂 도개청송란
가지 쳐진 푸른 소나무 어지럽네
傷感稍悠悠 상감초유유
아픈 느낌이 점점 조금씩 멀어지니
早秋知暑散 조추지서산
이른 가을에 더위 물러감을 알겠네
이지심(李知深 ?∼1170)은 고려의 문신으로 주로 간관(諫官)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재미있는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茶壺詩 (다호시) (0) | 2021.09.25 |
---|---|
令旗 영기 (0) | 2021.09.15 |
盤中詩 반중시 (0) | 2021.09.11 |
回文詩(회문시) - 美人怨 (0) | 202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