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소서(小暑)가 지나면 본격적인 삼복더위가 시작된다. 복날은 하지(夏至)가 지난 후 세 번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그다음 경일(庚日)을 중복(中伏), 입추기 지난 후 첫 번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하는데 통상 그 기간이 20~30일이 걸리며 이 시기가 연중 가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이다.
옛날 서거정은 꼼짝하기도 귀찮은 삼복더위를 이렇게 표현했다.
三伏 삼복 徐居正 서거정
삼복날에
一椀香茶小點氷 일완향다소점빙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조그마한 얼음 띄워
歠來端可洗煩蒸 철래단가세번증
마셔보니 참으로 무더위를 씻을 수 있네
閑憑竹枕眠初穩 한빙죽침면초온
한가로이 죽침 베고 단잠이 막 들려는데
客至敲門百不應 객지고문백불응
손님 와서 문 두드려도 백번인들 대답 않네
삼복더위를 맞아 더위를 쫓기 위해 시원하게 얼음 띄운 차를 마시고 한가하게 누워 죽침을 베고 막 잠이 들려는데 밖에서 눈치 없는 손님이 찾아와 부른다. 여러 차례 불러도 못 들은 척 대답을 안 한다. 손님을 깍듯이 대접하던 옛 풍습에 비추어보면 욕먹을 짓이지만 어쩐지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복날 개고기를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진(秦)나라 덕공(德公) 원년(기원전 677년), 옹성(甕城)의 대정궁(大鄭宮)에서 태뢰(太牢: 통째로 제물로 바치는 짐승)로 돼지, 양, 소 300마리를 제물로 바쳤다. 양(梁)나라 군주와 예(芮)나라 군주가 조공을 바쳤다.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三伏) 제사를 지냈는데, 사대문에서 개고기를 찢어 나쁜 기운[蠱]을 막았다”라는 기록이 복날과 개고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희생(犧牲)으로 개고기를 바치던 풍속에서 ‘삼복 날 먹는 맛난 음식’으로 삼게 되었다는 말이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전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지은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삼복구갱(三伏狗羹)’이라는 시를 남겼다. ‘삼복 날 개장국’이라는 제목의 시다.
三伏狗羹 삼복구갱 洪錫謨 홍석모
삼복 날 개장국
秦門磔狗饗神禳 진문책구향신양
진(秦) 나라에서 개 잡아 제사 지냈는데
伏日遺風啗戌羹 복일유풍담술갱
이것이 복날 개장국 먹는 풍속 되었네
禦暑補虛澆白飯 어서보허요백반
밥 말아먹고 허한 기운 보하고 더위 막으려
家家醵食三庚 가가갹식삼경
집집마다 음식 추렴해 삼복더위 보내네
삼복더위를 반드시 시원한 차 마시고 쉬거나 보양식만 먹는 것이 아니고, 당나라 수도승인 杜筍鶴(두순학)은 이렇게 노래했다.
安忍偈 안인게 杜筍鶴 두순학
마음을 안정하고 인내하는 게송
三伏閉門被一衲 삼복폐문피일납
삼복더위에 문 닫아걸고 누더기 걸치니
兼無松竹蔭房廊 겸무송죽음방랑
법당에는 솔숲 대숲 같은 그늘이 모두 없네
安禪不必須山水 안선불필수산수
마땅히 참선함에 좋은 산수는 필요 없고
滅得心頭火自凉 멸득심두화자량
마음속 욕심 없애면 불 속이라도 서늘하리
두순학(杜筍鶴, 846~907) 선사(禪師)는 당나라 사람으로서, 정확한 신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생을 두고 道(도)를 깨닫고자 勇猛精進(용맹정진)과 參禪(참선)을 한 수도승(修道僧)이라 한다.
이 시는 參禪(참선)을 하는 수도승의 모습이다. 삼복더위에 어째서 방문을 닫아걸어야 할까? 누덕누덕 기운 僧服(승복)을 입은 것은 본분을 잊지 말자는 뜻일 것이고, 문 닫은 이유는 세속의 풍진을 막기 위함이니, 깨달으면 더위나 추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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