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燈夕有感 (등석유감) - 黃俊良 (황준량)

-수헌- 2025. 5. 2. 14:23

燈夕有感   등석유감     黃俊良   황준량 

초파일 저녁에 드는 느낌

 

去年燈夕丹丘郡 거년등석단구군

지난해 초파일 저녁엔 단구군에 있으며

二樂樓上忝先登 이요루상첨선등

외람되이 이요루에 가장 먼저 올랐더니

星篝火樹粲文光 성구화수찬문광

나무에 매달린 등불이 별처럼 찬연한데

酒徒詞客多風稜 주도사객다풍능

주객과 시객들의 풍채 모두 훌륭했었네

笙歌動塵沸寥廓 생가동진비요곽

풍악이 울려 하늘 멀리 펴지는 가운데

豪吟縱醉何瞢騰 호음종취하몽등

몽롱히 취해 얼마나 호탕하게 읊었던가

今年燈夕錦水村 금연등석금수촌

올해 초파일 저녁에는 금수 마을에서

少院閉門風露凝 소원폐문풍로응

문 닫힌 작은 집에 바람 이슬만 엉겼네

疏星缺月助燈焰 소성결월조등염

성근 별 이지러진 달빛에 등불 밝히니

桐花影裏明層層 동화영리명층층

그림자 속의 오동꽃이 층층이 밝아오네

萱華春茂映高堂 훤화춘무영고당

봄날 무성한 원추리꽃이 고당을 비추고

棣萼韡韡輝彩增 체악위위휘채증

활짝 핀 산앵도 꽃이 밝은 빛을 더하네

山醪野蔌自眞率 산료야속자진율

막걸리에 나물 안주가 참으로 담백하고

橫笛鳴琴搖玉繩 횡적명금요옥승

피리불고 가야금 타니 옥승이 흔들리네

恰愉深夜斗欲轉 흡유심야두욕전

흥겨운 밤이 깊어 북두성도 기울려는데

諧笑氤氳和氣蒸 해소인온화기증

온화한 웃음이 피어나서 화기를 더하네

家居落跖不須嗟 가거낙척불수차

물러나서 지낸다고 슬퍼할 필요 없으니

一門三樂非人能 일문삼락비인능

한 집안 삼락은 사람 뜻대로 되지 않네

荷沼浮錢政可憐 하소부전정가련

연못에 동전처럼 뜬 연잎은 사랑스럽고

柳風撲綿堪生憎 유풍박면감생증

버들개지 날리는 바람에 미움이 생기네

淸和佳節罄承歡 청화가절경승환

맑고 고운 계절에 부모 섬김을 다할 뿐

豈學照佛傳燈僧 기학조불전등승

어찌 부처님 비추는 전등승에게 배우랴

浮生處世貴適意 부생처세귀적의

떠도는 인생의 처세는 뜻맞음이 귀하니

倘來軒冕難驕矜 당래헌면난교긍

뜻밖의 현달에도 교만 해질까 꺼려지네

追思舊遊似隔晨 추사구유사격신

돌이켜 생각하니 옛일이 엊그제 같은데

却添衰鬢霜鬅鬠 각첨쇠빈상붕괄

가늘어진 귀밑털이 서리처럼 헝클어졌네

金龜已損換一斗 금귀이손환일두

술 바꿔 마시느라 금귀를 이미 잃었는데

太倉無心糴五升 태창무심적오승

쌀 닷 되를 사더라도 태창에는 무심하네

一瓢猶堪樂顔巷 일표유감락안항

안회는 한 바가지 물로도 도를 즐겼는데

千詩不必驚杜陵 천시불필경두릉

두보처럼 많은 시로 놀라게 할 일 없네

優游卒歲聊爾耳 우유졸세료이이

여유롭게 놀면서 세월 보내면 그만인데

他年何處看春燈 타년하처간춘등

다른 해엔 어디에서 초파일 연등을 볼까

 

※丹丘郡(단구군) : 충북 단양군(丹陽郡)의 옛 이름. 황준량(黃俊良)이 단양 군수(丹陽郡守)를 지냈다.

※笙歌(생가) : 생황(笙簧)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다. 생황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악기를 타며 노래하다는 의미로 연주와 노래가 어우러진 것을 말한다.

※萱華(훤화) : 늙으신 어머니를 비유한다. 원추리 꽃[萱華, 萱花]은 일명 망우초(忘憂草)라고 하는데 어머니의 처소에 걱정을 잊고 사시라는 의미에서 망우초(忘憂草)를 심었던 데서 유래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모친을 자당(慈堂) 또는 훤당(萱堂)이라고 부른다.

※棣萼(체악) : 형제간에 서로 화락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상체(常棣)는 산당나무를 말하는데,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장(常棣章)에 ‘상체 꽃이 빛나지 않은가, 지금 세상 사람 중에서 형제만 한 이 없느니라. [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 한 데서 유래한다.

※玉繩(옥승) : 옥승(玉繩)은 북두 제 오성(第五星) 북쪽에 위치한 천을(天乙)과 태을(太乙)의 두 작은 별로써 새벽이 오면 빨리 사라져 버리는 별이다.

※三樂(삼락) :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으로, 맹자(孟子)는 ‘부모가 모두 생존하고 형제가 모두 무고한 것[父母俱存 兄弟無故],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 [得天下英才而教育]’의 세 가지를 들었다.

※承歡(승환) : 부모나 왕을 받들어 모셔 기쁘게 해 드리다. 남의 기분을 맞추어 기쁘게 하다.

※軒冕(헌면) : 옛날에 고관(高官)이 타던 수레와 면류관이란 뜻으로 현달하여 고관이 되는 것을 말한다.

※金龜已損換一斗(금귀이손환일두) : 금귀(金龜)는 벼슬아치가 차는 거북 모양의 인장을 말한다. 당(唐) 나라 이백(李白)이 고인이 된 벗 하지장(賀知章)을 생각하며 지은 대주 억하감(對酒憶賀監)이라는 시에 ‘금귀로 술을 바꾸어 먹던 곳에서, 벗을 생각하며 눈물로 수건을 적시네. 〔金龜換酒處 却憶淚沾巾〕’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太倉無心糴五升(태창무심적오승) : 태창(太倉)은 나라의 큰 곡식 창고로 조정에 벼슬하여 녹봉을 받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적은 곡식으로 살더라도 벼슬에 관심 없다는 의미이다.

※一瓢猶堪樂顔巷(일표유감락안항) : 안항(顏巷)은 안자누항(顔子陋巷)의 준말로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연(顔淵)이 벼슬하지 않고 시골에 있으며 매우 가난했던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은 한 소쿠리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一簞食 一瓢飮〕로 가난하게 살았어도 결코 도를 즐기는 마음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황준량(黃俊良, 1517~1563) : 조선 전기 신녕 현감, 단양군수, 성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