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尹愭;1741년~1826년)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며, 조선 후기 남포현감, 황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이다. 저서로 『무명자집(無名子集)』 20권 20 책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가학(家學)을 통하여 부형에게 학업을 전수받았으며, 20세가 되던 해에 연로한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33세에야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무려 20여 년을 유생으로 생활한 끝에 52세에야 대과(大科)에 급제하였고, 거의 노경에 접어든 시기에 현감을 역임했으며, 80세에 호조 참의가 된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선비이다. 86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윤기의 작품은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시문(詩文) 보다 앞서 소개한 정월 대보름 시처럼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이 많고, 표현이나 내용에서도 난해하지 않으며 순조로운 표현이 많은데, 윤기가 지은 영남루 시 한 편 소개한다.
華構高臨粉堞開 화구고림분첩개
화려하게 늘어선 성가퀴 높이 솟았으니
坐如天上石爲臺 좌여천상석위대
돌로 된 누대가 하늘 위에 앉은듯하네
栗林遠野眼前濶 율림원야안전활
멀리 들판의 밤 숲이 눈앞에 펼쳐졌고
巴字澄江軒下回 파자징강헌하회
굽이치는 맑은 강이 처마 아래 돌아가네
斜陽漁艇孤煙杳 사양어정고연묘
석양의 고깃배는 아득히 안갯속에 외롭고
淸磬招提萬壑哀 청경초제만학애
초제의 맑은 풍경소리 온 골짝에 애처롭네
三復退陶題壁句 삼부퇴도제벽구
퇴계께서 남기신 시 여러 번 읽어 보아도
欲追餘韻愧非才 욕추여운괴비재
재주 없어 차운하지 못해 부끄럽기만 하네
※ 招提(초제) : 관부(官府)에서 사액(賜額; 임금이 이름을 지어줌)한 절. 영남루가 있는 아동산 언덕에는 신라 천년고찰인 무봉사(舞鳳寺)가 있다.
※ 舞鳳寺(무봉사) ; 무봉사는 신라시대 때 법조선사가 당시 신라의 5대 명사 중에 하나였던 영남사(嶺南寺 ; 현재 영남루 자리에 있던 절)에 주석하다 대낮에 큰 봉황새가 춤을 추며 이곳으로 날아와 앉아 상서로운 성지라 하며 법계로 삼았다는 이야기와, 신라 혜공왕이 법조스님으로부터 받은 불은(佛恩)을 갚기 위해 영남루 자리에 가람을 짓고 무봉암으로 했다는 사적이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무봉사와 마주 보고 있는 강 건너편(지금의 삼문동)에는 봉황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밤나무를 심어 가려 주었으며, 아침저녁으로 무봉사에서 범종을 울려 봉황을 날게 하였다 한다. 그래서 밀양 풍경이나 영남루를 노래한 시문에는 밤밭이 자주 등장한다. 1359년 영남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무봉암에서 무봉사로 되었다고 한다.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밀양강과의 조화로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사찰 무봉사는 경내에 보물 제493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어 그 역사에 걸맞은 사격(寺格)과 운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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