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당(今是堂)은 밀양시 활성리 백곡에 있는 여주 이 씨의 선세 유적(先世遺蹟)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이다.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1513∼1566)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금시당(今是堂)이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름을 깨달았다[覺今是而昨非]”는 말이 있는데 ‘금시당’이란 여기에서 취한 것으로 산수와 전원에서 여생을 즐긴다는 뜻이다.
밀양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는 금시당십이경(今是堂十二景)이라 불리는 ‘밀양 12경도(密陽十二景圖)’ 열두 폭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은 금시당 이광진이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인 밀양에 내려와 밀양의 절경처를 두루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병이 나서 산수 구경을 못하게 되자, 효성이 지극한 장남 근재(槿齊) 이경홍(李慶弘 1540~1595)이 부친을 위로하기 위해 병석에서도 경치를 구경할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이다.
‘밀양12경도’는 한 폭마다 색 다른 절경을 그렸고, 경치에 따른 한 수의 시(詩)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그림을 그린 지 300년 후에 이광진의 12대손인 만성(晩惺)이용구(李龍九)가 그림을 화제(畵題)로 시를 지었으며, 서예가 동계(東溪) 박명찬(朴明讚) 선생이 1995년에 예서체로 쓴 제시가 함께 표구되어 있다.

1경
驚麓春花 앵록춘화(금시당)
앵봉의 봄꽃
春風一夜足生涯 춘풍일야족생애
봄바람은 생애 하룻밤에도 족한데
雨洗山顏碧破霞 우세산안벽파하
비에 씻긴 푸른 산의 안개가 흩어지네
金馬歸來曾機日 금마귀래증기일
금마문에서 돌아온 지 그 언제인데
年年留發杜鵑花 년년유발두견화
해마다 두견화는 잊지 않고 피어나네
※金馬歸來(금마귀래) : 금마문(金馬門)은 중국 한나라 때 지어진 미앙궁(未央宮) 문의 하나. 벼슬을 하여 관청에 나가 하문(下問)을 기다리던 곳이다. 따라서 금마귀래는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오다는 뜻이다.
2경
龍壁冬篁 용벽동황(용두산)
용두언덕의 겨울 대나무
龍岡歲慕綠猗猗 용강세모록의의
용강은 세모에도 푸른 대가 무성하여
活意欣看机案移 활의흔간궤안이
기분 따라 책상 옮겨 흔쾌히 바라본다.
鳳去千年山獨立 봉거천년산독립
봉황은 가고 산만 천년 홀로 섰는데
琅干不見雪封枝 낭간불견설봉지
눈이 가지를 덮어 낭간은 보이지 않네
※琅干(낭간): 아름다운 대나무의 이칭. 혹은 좋은 문장을 일컫기도 한다.

3경
鳳庵孤鍾 봉암고종(무봉사)
무봉암의 종소리
殘燈落月到深宵 잔등락월도심소
달도 지고 밤은 점점 깊어 등불만 남았는데
萬籟俱空四寂寥 만뢰구공사적요
세상의 온갖 소리 사라져 사방이 적막하네
山僧似解塵襟惱 산승사해진금뇌
산사의 승려가 속세의 번뇌를 벗어내듯이
打送鍾聲衆慮消 타송종성중려소
종소리 울려 보내 중생들 근심을 덜어주네
4경
馬巖暮雨 마암모우(마암산)
마암산의 저녁 비
浦樹依微一夢中 포수의미일몽중
물가 나무 하룻밤 꿈속처럼 희미하여
仰看雲氣濕蒼穹 앙간운기습창궁
구름을 쳐다보니 하늘이 젖어 있네
躊躇半壁騎驢客 주저반벽기려객
언덕 위 노새 탄 나그네의 머뭇거림이
恰似當年陸放翁 흡사당년육방옹
옛날 방옹의 행색과 정녕 흡사하구나
※陸放翁(육방옹): 중국 남송시대의 문학가 육유(陸游 ; 1125~1210). 放翁(방옹)은 호. 9300 여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으며, 금나라에 항거하는 시를 많이 써 애국시인으로 불린다.

5경
淵臺霽月 연대제월 (월연정)
월연대의 밝은 달
先生遺迹水東流 선생유적수동류
선생의 유적은 물처럼 동으로 흘러가고
惟見鶯峯霽月留 유견앵봉제월류
앵봉에는 비가 개여 밝은 달이 보이네
萬古如磨心鏡白 만고여마심경백
오랫동안 닦은 마음 거울처럼 깨끗하고
清光夜夜上簾鉤 청광야야상렴구
맑은 빛이 밤마다 주렴 사이로 희미하네.
6 경
舍堂炊烟 사당 취연(선불 마을)
사인당의 밥짓는 연기
江村西望隔澄紗 강촌서망격징사
강마을 서쪽으로 맑은 모래 바라보면
桑柘千年釀物華 상자천년양물화
조상의 오랜 터전 좋은 풍경 빚었구나.
況是南鄕生理好 황시남향생리호
하물며 남쪽 고향 살기도 좋아서
雨中烟樹碧家家 우중연수벽가가
빗속에 밥 짓는 연기 집집마다 푸르네.

7 경
南樓畫棟 남루화동(영남루)
영남루의 단청기둥
眼勢西窮野復寬 안세서궁야복관
보이는 곳 서쪽 끝에 들이 다시 펼쳐지고
群山浮碧大江漫 군산부벽대강만
푸르고 큰 강 위에 산들이 가득 떠있네
南樓豈獨專奇勝 남루개독전기승
어찌 영남루만 홀로 빼어난 승경 일 까만
為作斯亭供好看 為作斯亭供好看
이 정자 지은 덕에 함께 보고 즐기네
8경
西城曉角 서성효각 (읍성)
서쪽성의 새벽달
舞鳳山西月欲沈 무봉산서월욕침
무봉산 서쪽으로 달이 넘어가려 하니
松陰眠鶴忽驚吟 송음면학홀경음
소나무에 잠든 학 문득 깨어 우는구나
依依畫角江城出 의의화각강성출
희미한 화각 소리 강성 밖으로 들려오면
警起幽人五夜心 경기유인오야심
유인도 놀라 새벽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畫角(화각) : 악기의 한 가지. 대나무로 만들며 외부를 채색하였으므로 화각이라 한다. 옛날 軍中이나 城中에서 새벽을 경계하는 데 사용했다.
※幽人(유인) ; 세상을 피해 조용히 은거하는 사람.

9경
梨淵漁火 이연어화(남포리)
이연의 고기잡이 불
漁子連燈徹夜明 어자련등철야명
고기 잡는 등불들이 밤새도록 밝으니
波宮應有老龍驚 파궁응유로룡경
수궁에 응당 있는 노룡도 놀라리라
問渠知得江山趣 문거지득강산취
그에게 강산의 정취를 아는지 물으니
夢裏惟聞欸及聲 몽리유문애급성
오직 노 젓는 소리만 꿈속에서 들린다네.
10경
栗林落葉 율림낙엽 (활성밤밭)
밤숲의 지는잎
暮天摇落薄雲陰 모천요락박운음
해 질 녘 옅은 구름 아래 흔들리며 떨어지니
極目秋容冷不堪 극목추용랭불감
가을 풍경 보이는 대로 못 견디게 차네
薊北丹楓何處是 계북단풍하처시
계북의 고운 단풍도 이만한 곳 있을까
風吹一夜滿江南 풍취일야만강남
한밤에 바람 불면 강남에도 가득 차리

11경
白石看羊 백석간양(호분탄)
백석 더미의 양치기
道士看羊去不回 도사간양거불회
양을 치던 도사는 가고 오지 않고
只留堆石古江隈 지류퇴석고강외
옛날의 강굽이엔 돌 더미만 남았네
至今箇箇精神白 지금개개정신백
지금도 하나같이 정신이 명백한데
長使行人指點來 장사행인지점래
늙은이가 행인을 가리키며 오는구나
12경
青郊牧牛 청교목우(삼문들)
푸른들의 소치기
小兒安得識陶唐 소아안득식도당
소년들이야 어찌 도당을 알랴마는
兩兩驅牛飮水傍 양양구우음수방
짝을 지어 물 먹이러 소를 몰아가네
一色青烟芳草岸 일색청연방초안
풀 우거진 언덕 푸른 안개 일색인데
夕陽無限笛聲長 석양무한적성장
석양에 피리소리 끝없이 길구나
※陶唐(도당) : 중국 태평시대의 성군인 요(堯) 임금을 말함. 처음에 陶땅에 살다가 唐 땅으로 이사하여 도당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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