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詠雪 (영설) - 趙絅 (조경)

-수헌- 2024. 11. 28. 18:04

詠雪   영설     趙絅   조경  

눈을 읊다

 

同雲釀雪暮天低 동운양설모천저

저녁 하늘 나지막이 눈구름이 눈을 빚어내어

漠漠絲絲勢轉迷 막막사사세전미

아득히 가늘게 내리던 기세 혼미하게 변하네

大壑高山俱受賜 대학고산구수사

큰 골짜기와 높은 산이 모두 은택을 받아서

平郊長坂盡藏泥 평교장판진장니

들판과 긴 비탈의 진흙을 모두 감추었네

謾敎越犬群聲吠 만교월견군성폐

월나라 개들이 공연히 무리 지어 짖게 하고

更覺吳兒顏色悽 경각오아안색처

오나라 아이들 차가운 안색 다시 느끼면서

怪底先生東郭履 괴저선생동곽리

괴이하게도 동곽 선생의 신발을 신고서

浪吟梅逕獨扶藜 낭음매경독부려

매화 길에서 홀로 지팡이 짚고 읊고 있네

 

※越犬群聲吠(월견군성폐) : 월(越) 나라 지방에는 평소에 눈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어쩌다 눈이 오기라도 하면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 대다가 눈이 그쳐야 그만둔다고 한다.

※更覺吳兒顏色悽(경각오아안색처) : 오(吳) 나라도 눈이 귀한 지방이라 눈이 오면 추위에 아이들의 얼굴의 안색이 변한다는 의미이다.

※先生東郭履(선생동곽리) : 동곽선생(東郭先生)은 한 무제(漢武帝) 때 제(齊) 나라 사람으로, 오랫동안 대조(待詔)의 벼슬에 있으면서도 살림이 빈궁하여 닳아서 윗부분만 있고 바닥이 없는 신발을 신고 눈 위를 걸어 다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전하여 가난한 선비를 의미한다.

 

 

詠雪   영설     趙絅   조경  

눈을 읊다.

 

試手龍公戲太陰 시수용공희태음

용왕이 달을 만들어서 가지고 노니

素娥仍挾玉妃臨 소아잉협옥비림

소아가 이내 눈송이 끼고 내려오네

鹽傾東海吳王煮 염경동해오왕자

오왕이 동해물을 달여 소금이 쏟아졌고

梅避西湖處士尋 매피서호처사심

매화는 서호를 피하여 처사를 찾아왔네

便使人寰開一色 변사인환개일색

문득 인간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 만드니

始知天上少褊心 시지천상소편심

비로소 하늘이 편협하지 않음을 알겠구나

淸瑩肝膽雪同老 청영간담설동로

속마음이 맑고 밝은 눈과 함께 늙어가니

盡日柴門費獨吟 진일시문비독음

사립문에서 하루 종일 홀로 읊조리며 보내네

 

※試手龍公戲太陰(시수용공희태음) : 소식(蘇軾)의 시 취성당설(聚星堂雪)에 ‘창 앞에 은은하게 마른 잎 소리 울리더니, 용왕이 만든 첫눈이 내리는구나. 〔窓前暗響鳴枯葉, 龍公試手行初雪.〕’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태음(太陰)은 태양(太陽)과 반대되는 달을 의미한다.

※素娥仍挾玉妃臨(소아잉협옥비림) : 소아(素娥)는 달에 산다는 선녀인 항아(姮娥)의 별칭이고, 옥비(玉妃)는 옥처럼 고운 비(妃)라는 뜻으로, 매화의 별칭이나 여기서는 고운 눈송이를 표현한 듯하다.

※鹽傾東海吳王煮(염경동해오왕자) : 여기서는 눈을 소금에 비유하였다. 한 고조(漢高祖)의 조카인 오왕 비(吳王濞)가 반역을 위한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바닷물을 달여서 소금을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인용하였다.

※梅避西湖處士尋(매피서호처사심) : 여기서는 눈을 매화에 비유하였다. 처사는 북송(北宋)의 임포(林逋)를 말하는데, 임포는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였으며 행서와 시에 능하였는데 특히 매화 시가 유명하다.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즐겨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조경(趙絅,1586~1669) : 조선시대 대제학, 형조판서, 회양 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 주봉(柱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