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懷 추회 金壽恒 김수항
가을날의 회포
楚山蕭瑟楚江寒 초산소슬초강한
초산은 쓸쓸하고 초강은 차가운데
上有楓林霜葉丹 상유풍림상엽단
위로 단풍 숲 있어 서리 내린 잎 붉구나
流水尙能朝大海 유수상능조대해
흐르는 물은 오히려 대해로 들어가는데
浮雲只解蔽長安 부운지해폐장안
뜬구름은 단지 서울 가릴 줄만 아는구나
后皇嘉樹偏憐橘¹⁾ 후황가수편련귤
후황의 좋은 나무인 귤을 더욱 사랑하고
南國幽香獨佩蘭 남국유향독패란
남국의 향기 그윽한 난초를 홀로 지니며
莫把新詞賡九辯²⁾ 막파신사갱구변
구변의 새로운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니
由來苦調易悽酸 유래고조이처산
곡조가 괴로워서 서글퍼지는구나
其二
屋角凝霜晩未晞 옥각응상만미희
집 모퉁이 엉긴 서리 저녁에도 마르지 않고
疏籬旭日冷暉暉 소리욱일냉휘휘
아침 해는 성근 울타리에 차갑게 빛나는데
西洲水落魚龍蟄 서주수락어룡칩
서쪽 모래톱에 물 마르자 어룡도 숨어들고
南畝禾殘鳥雀肥 남무화잔조작비
남쪽 논둑에 남겨진 벼에 참새들만 살지네
錦里羈人桃竹杖³⁾ 금리기인도죽장
금리의 나그네는 도죽 지팡이를 짚었는데
湘潭騷客芰荷衣⁴⁾ 상담소객기하의
상수의 시인은 마름과 연잎 옷을 입었구나
浮生不用懷鄕陌 부생불용회향맥
떠도는 삶이 고향길 그리워 해선 안되지만
著處心安卽當歸 저처심안즉당귀
다다른 곳이 마음 편하면 바로 돌아가야지
其三
輕寒乍透木綿裘 경한사투목면구
가벼운 추위가 언뜻 무명옷을 파고드니
一夜歸心在玉樓 일야귀심재옥루
하룻밤에 돌아갈 마음 옥루에 머물렀네
萬事忘懷唯戀主 만사망회유연주
만사 잊었어도 오직 임금님만 사모하며
四時隨運獨悲秋 사시수운독비추
사계절이 따라 돌아도 가을만 슬프구나
湘江雷雨恩猶阻⁵⁾ 상강뇌우은유조
상강에 뇌우 같은 은총은 내려오지 않고
京洛風波夢已休 경락풍파몽이휴
한양의 풍파 속에 꿈도 이미 멈추었구나
天遣仲翔疎骨節⁶⁾ 천견중상소골절
하늘이 중상의 곧은 절개를 보내왔으니
敢辭南海久羈留 감사남해구기류
남해에 오래 잡아 둔다고 감히 사양할까
其四
憀慄秋懷獨掩門 요율추회독엄문
가을 감회가 쓸쓸하여 홀로 문닫고 지내니
小庭殘照易黃昏 소정잔조이황혼
작은 뜰의 지는 햇살 황혼으로 바뀌는구나
蟲收亂響初坏戶⁷⁾ 충수난향초배호
벌레들 울음 그치고 입구를 막기 시작하고
葉隕高枝欲晦根 엽운고지욕회근
높은 가지에서 잎 떨어져 뿌리 감추려하네
際海巖巒瞻月嶽 제해암만첨월악
바닷가에서 월출산 바위 봉우리가 보이고
隔溪祠廟挹煙村 격계사묘읍연촌
개울과 떨어진 사당에선 연촌을 배향하네
天機衮衮兼人事 천기곤곤겸인사
천기는 끊임없이 인간의 일을 포용하기에
坐閱東流萬壑奔 좌열동류만학분
동으로 흐르는 온갖 골짝 물 앉아서 보네
〈煙村崔德之有書院⁸⁾ 연촌최덕지유서원
연촌 최덕지의 서원이 있다.〉
其五
竹間茅屋靜深更 죽간모옥정심경
대숲 속 초가집의 고요하고 깊은 밤에
坐到前簷北斗橫 좌도전첨북두횡
처마에 북두칠성 기울 때까지 앉았으니
明月遙分秦地色⁹⁾ 명월요분진지색
밝은 달은 멀리 서울 땅에 빛을 나누고
淸砧又聽楚鄕聲 청침우청초향성
맑은 다듬이질 또한 초향 소리 들려주네
風林摵摵飄寒葉 풍림색색표한엽
숲에 찬 바람 불어 잎이 우수수 날리고
露菊凄凄委落英 노국처처위락영
국화에 쓸쓸히 이슬 내려 꽃잎 떨어지네
忽有征鴻連陣過 홀유정홍연진과
문득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 있으니
天涯喚起弟兄情 천애환기제형정
하늘 끝 형제들의 그리운 정을 일으키네
其六
背郭僑居一草亭 배곽교거일초정
임시로 거주하는 성곽 등진 초가 정자에
秋花野蔓護柴扃 추화야만호시경
가을꽃과 들 넝쿨이 사립문을 덮었구나
山從落木增新瘦 산종낙목증신수
산에 낙엽 지니 나무는 새로이 수척하고
竹爲凌霜自舊靑 죽위능상자구청
대나무는 서리 내려도 예전처럼 푸르네
簷畔飛來賈傅鵩¹⁰⁾ 첨반비래가부복
처마 아래에는 가부의 복조가 날아오고
案頭乾死鄭虔螢¹¹⁾ 안두건사정건형
책상 앞에 정건의 반딧불이 말라죽었네
閒中漸覺塵根淨¹²⁾ 한중점각진근정
한가한 중에 진근이 점점 맑아짐을 느껴
默驗靈臺萬理形¹³⁾ 묵험영대만리형
온갖 이치를 말없이 마음으로 징험하네
其七
桐江南畔是磻溪 동강남반시반계
동강의 남쪽 물가가 바로 반계이니
一壑風煙戀舊棲 일학풍연연구서
골짝의 바람과 안개가 옛 터전 그리워하네
松葉夜迷山後徑 송엽야미산후경
밤에는 솔잎 덮인 산 뒷길을 헤매게 하고
稻花秋映井邊畦 도화추영정변휴
가을에는 벼꽃이 피어 우물가를 비추었지
書藏破篋封蛛網 서장파협봉주망
책 담긴 상자는 부서져서 거미줄이 쳐졌고
塵暗空梁帶燕泥 진암공량대연니
먼지 덮인 빈 들보에 제비 둥지만 남았네
同社向來多釣伴 동사향래다조반
한마을 사람들 예전부터 함께 낚시했기에
一竿明月夢相携 일간명월몽상휴
낚싯대는 밝은 달과 꿈을 함께 한다네
其八
買得靑山不愛錢 매득청산불애전
청산을 사는 데는 돈이 아깝지 않아서
幽居曾卜白雲邊 유거증복백운변
일찌감치 은거지를 백운산 가로 정했네
泉甘盤谷誰爭地¹⁴⁾ 천감반곡수쟁지
샘물이 단 반곡에서 누가 땅을 다투는가
洞邃仇池別有天¹⁵⁾ 동수구지별유천
구지의 깊은 골짜기에 별천지가 있는데
茅棟未成臨磵屋 모동미성임간옥
시냇가에 초가집은 아직 완성 못했어도
豆苗應沒斫畬田 두묘응몰작여전
밭은 일구어 콩 심고 응당 베었으리라
鷹巖松桂龜汀月 응암송계구정월
응암의 소나무 계수나무와 구정의 달을
興入秋風望渺然 흥입추풍망묘연
가을바람에 흥이 나서 아득히 바라보네
〈鷹巖 龜汀在白雲山 응암 구정재백운산
응암과 구정은 백운산에 있다.〉
※后皇嘉樹偏憐橘(후황가수편련귤)¹⁾ : 후황(后皇)은 토지의 신인 후토(后土)를 말하는데, 후황가수(后皇嘉樹)는 후토(后土)가 내놓은 나무 중에 특히 좋은 나무라는 말이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 ‘후황의 아름다운 나무인 귤나무가 남쪽의 이 땅을 사모해 찾아왔네. 〔后皇嘉樹橘徠服兮〕’라는 구절이 있다.
※九辯(구변)²⁾ : 초사(楚辭)의 편명으로, 굴원의 제자인 송옥(宋玉)이 억울하게 축출된 스승을 위해 지은 것이다.
※錦里羈人桃竹杖(금리기인도죽장)³⁾ : 금리(錦里)는 금관성(錦官城)의 별칭으로, 두보(杜甫)가 살았던 곳이다. 따라서 금리기인(錦里羈人)은 두보를 말한다. 두보는 재주(梓州) 자사 장이(章彛)가 도죽(桃竹) 지팡이 두 개를 선물하자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도죽장인(桃竹杖引)이란 시를 지어 보낸 일화가 있다.
※湘潭騷客芰荷衣(상담소객기하의)⁴⁾ : 상수(湘水)는 굴원(屈原)이 몸을 던져 죽은 강물이고, 소객(騷客)은 시인이나 문사(文士)를 말한다. 따라서 상담소객(湘潭騷客)은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마름과 연잎 마름질하여 저고리를 짓고, 부용을 모아서 치마를 짓네. 〔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湘江雷雨恩猶阻(상강뇌우은유조)⁵⁾ : 상강(湘江)은 굴원(屈原)의 귀양지이고, 뇌우(雷雨)는 위엄과 은혜를 뜻하는 말로, 임금의 사면령(辭免令)을 말한다.
※仲翔(중상)⁶⁾ : 삼국시대 오(吳) 나라 사람 우번(虞翻)의 자이다. 우번은 손권(孫權)을 섬기면서 직언을 자주 하여 그로 인해 교주(交州)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다.
※坏戶(배호)⁷⁾ : 칩충배호(蟄蟲坏戶)의 준말로 벌레들이 칩거하기 위해 흙으로 구멍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전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의미가 있다.
※崔德之(최덕지, 1384~1455)⁸⁾ : 조선 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시인, 문신.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여 영암(靈岩)에 머물렀으며, 시를 잘 지었다.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 존양(存養).
※秦地(진지)⁹⁾ : 장안, 즉 서울을 가리킨다.
※賈傅鵩(가부복)¹⁰⁾ : 가부(賈傅)는 한 문제(漢文帝) 때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있던 가의(賈誼)를 말하고, 복(鵩)은 수리부엉이 또는 올빼미를 말하는데, 상스럽지 못한 새로 여겨진다. 가의가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있을 때 집에 복조(鵩鳥)가 날아들자, 상서롭지 못한 새라고 여겨 상심한 나머지 복조부(鵩鳥賦)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한다.
※鄭虔螢(정건형)¹¹⁾ : 정건(鄭虔)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광문박사(廣文博士)로 몹시 가난하였다. 이 구절은 몹시 가난하여 고학(苦學)하였다는 의미이다.
※塵根(진근)¹²⁾ : 불가(佛家) 용어로 육진(六塵)과 육근(六根)의 통칭이다. 육진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하며, 육근(六根)은 육진(六塵)을 인식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여섯 가지 기관을 말한다.
※靈臺(영대)¹³⁾ :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泉甘盤谷誰爭地(천감반곡수쟁지)¹⁴⁾ : 반곡(盤谷)은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지명인데, 한유(韓愈)의 반곡으로 돌아가는 이원을 전송하는 글〔送李愿歸盤谷序〕에 ‘반곡의 샘물은 씻을 만하고 물 따라 거닐기 좋고, 반곡은 험하니 누가 그대와 이 장소를 다투겠는가. [盤之泉 可濯可沿 盤之阻 誰爭子所]’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仇池(구지)¹⁵⁾ :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 이름, 산속에 99개의 샘[泉]이 있는 등 경치가 좋아 도원경(桃源境)과 같다는 이야기가 소동파의 화도화원(和桃花源)이라는 시의 서문에 있다.
*김수항(金壽恒, 1629~1689) : 조선 후기 예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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