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初夏 五首 (초하 오수) - 成俔 (성현)

-수헌- 2024. 4. 27. 11:14

初夏 五首 초하 오수 成俔 성현  

초여름 다섯 수

 

風捲疏簾晝夢驚 풍권소렴주몽경

바람이 발을 걷어 낮 꿈에서 놀라 깨니

床頭書籍亂從橫 상두서적란종횡

책상 위 서적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네

黃鸝憐我苦岑寂 황리련아고잠적

적막하여 괴로운 내가 꾀꼬리도 불쌍해

飛上庭柯啼一聲 비상정가제일성

가지 위를 날면서 소리 내어 울어 주네

 

四月淸和暖氣融 사월청화난기융

사월이라 날씨가 따뜻하고 화창한데도

病身猶在土床中 병신유재토상중

병든 몸은 아직도 온돌방 안에 있구나

開牕喜快東南豁 개창희쾌동남활

창 열고 동남쪽이 툭 트인 걸 기뻐하며

臥看飛鳶點太空 와간비연점태공

누워서 하늘을 나는 한 점 솔개를 보네

 

落盡園花不賦詩 낙진원화불부시

뜰에 꽃이 다 지도록 시를 짓지 못하니

簡齋詩句豈余欺 간재시구기여기

간재의 시구가 어찌 나를 업신여길까

病翁詩吻枯將涸 병옹시문고장학

병든 노인 입가에는 시가 고갈되어 가니

欲賦春詩困不支 욕부춘시곤불지

봄 시 지어 보려 해도 피곤을 못 견디네

 

病叟聲名只有詩 병수성명지유시

병든 노인의 명성은 오직 시에 있는데

家人猶恨宦途遲 가인유한환도지

가족들은 오히려 더딘 벼슬길 한탄하네

羞將白髮三千丈 수장백발삼천장

부끄럽게도 삼천 길의 백발을 가지고서

坐對盆花一兩枝 좌대분화일량지

화분 속의 두어 가지 꽃을 보고 앉았네

 

群花次第儘飄紅 군화차제진표홍

꽃들이 차례차례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新綠成陰滿院濃 신록성음만원농

신록은 정원 가득 짙은 그늘을 만들었네

掃却春光無覓處 소각춘광무멱처

봄빛은 쓸어내 버린 듯 찾을 곳이 없고

流鶯語燕領薰風 류앵어연령훈풍

꾀꼬리와 제비 소리가 훈풍을 끌어오네

 

※簡齋詩句豈余欺(간재시구기여기) : 간재(簡齋)는 송나라 시인 진여의(陳與義)를 말한다. 진여의의 시 차운부자문절구(次韻傅子文絶句)에 ‘이제부터 이 늙은이 할 일이 없겠구나, 뜰에 꽃이 다 지도록 시를 짓지 못했으니.〔從今老子都無事 落盡園花不賦詩〕’라고 하였는데, 봄이 다 가도록 시를 짓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과 같다는 의미이다.

 

*성현(成俔,1439~1504) :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 국오(菊塢). 시호는 문대(文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