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湖堂梅花 (호당매화) - 李滉 (이황)

-수헌- 2024. 2. 21. 14:22

湖堂梅花 暮春始開 用東坡韻 二首 春赴召後    호당매화 모춘시개 용동파운 이수 춘부소후   李滉  이황

호당(湖堂)에 매화가 3월에 비로소 피었기에 동파(東坡)의 운을 써서 짓다. 2수(二首). 봄에 소명(召命)에 나아간 뒤에 지은 것이다.  

 

我昔南遊訪梅村 아석남유방매촌

내가 옛날 남쪽 매화촌을 찾아 노닐 때

風烟日日銷吟魂 풍연일일소음혼

아지랑이 매일같이 시혼을 다하게 했네

天涯獨對歎國艷 천애독대탄국염

하늘가의 국염을 마주해 홀로 찬탄하고

驛路折寄悲塵昏 역로절기비진혼

역로에서 꺾어 부치며 진혼을 슬퍼했네

邇來京輦苦相憶 이래경련고상억

서울에 온 이래 간절하게 서로 그리워서

淸夢夜夜飛丘園 청몽야야비구원

밤마다 전원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네

那知此境是西湖 나지차경시서호

이곳이 서호인 줄은 어떻게 알았으며

邂逅相看一笑溫 해후상간일소온

우연히 서로 만나 따스한 웃음 지었네

芳心寂寞殿殘春 방심적막전잔춘

늦봄 궁궐에 피어 적막하며 애처롭고

玉貌婥約迎初暾 옥모작약영초돈

고운 자태 아름답게 돋는 해맞이하네

伴鶴高人不出山 반학고인불출산

학을 짝한 고인은 산에서 나오지 않고

辭輦貞姬常掩門 사련정희상엄문

연을 사양한 정희는 항상 문을 닫았네

天敎晩發壓桃杏 천교만발압도행

하늘 뜻으로 늦게 피어 복사 살구 누른

妙處不盡騷人言 묘처불진소인언

묘한 의미 소인도 다 말하지 못하리니

媚嫵何妨鐵石腸 미무하방철석장

철석장인들 아름다움을 어찌 거리낄까

莫辭病裏携甖罇 막사병리휴앵준

병든 몸 술병 들고 찾을 테니 사양 말라

 

藐姑山人臘雪村 막고산인랍설촌

막고산의 신선이 섣달 눈 내리는 마을에서

鍊形化作寒梅魂 련형화작한매혼

몸을 단련하여 한매의 넋으로 변하였구나

風吹雪洗見本眞 풍취설세견본진

바람 불고 눈에 씻겨 본모습을 나타내니

玉色天然超世昏 옥색천연초세혼

천연의 옥빛이 어두운 세상에서 뛰어났네

高情不入衆芳騷 고정불입중방소

높은 뜻은 이소경의 많은 꽃에 들지 않고

千載一笑孤山園 천재일소고산원

고산의 동산에서 천년에 한 번 웃는구나

世人不識嘆類沈 세인불식탄류침

세상사람 심제량 같음을 모르고 한탄하니

今我獨得欣逢溫 금아독득흔봉온

온백설자를 만난 듯이 나 홀로 기뻐했네

神淸骨凜物自悟 신청골름물자오

맑은 정신 늠름한 기골로 스스로 깨달아

至道不假餐霞暾 지도불가찬하돈

도에 이르러 참으로 노을과 햇빛을 먹네

昨夜夢見縞衣仙 작야몽견호의선

어젯밤 꿈속에 흰옷 입은 선인이 나타나

同跨白鳳飛天門 동과백봉비천문

하얀 봉새 함께 타고 천문으로 날아가서

蟾宮要授玉杵藥 섬궁요수옥저약

섬궁에서 옥절구로 찧은 약을 달랬더니

織女前導姮娥言 직녀전도항아언

직녀가 앞을 인도하여 항아에게 말하네

覺來異香滿懷袖 각래이향만회수

깨어나니 그 향기가 옷소매에 가득하여

月下攀條傾一罇 월하반조경일준

달 아래서 가지 잡고 술병을 기울인다

 

※國艷(국염) : 나라 안에서 가장 곱다는 뜻으로, 본래 소식(蘇軾)이 우중화(雨中花)라는 시에서 모란을 묘사한 표현인데, 퇴계 이황이 이를 가져와 매화를 뜻하는 말로 썼다.

 

※驛路折寄悲塵昏(역로절기비진혼) : 남조(南朝) 송(宋)의 육개(陸凱)가 강남의 매화 한 가지를 꺾어 역사(驛使)를 통해 친구 범엽(范曄)에게 부치며 아울러 시를 지어 전한 고를 인용하였다. 진혼(塵昏)은 어두운 속세를 의미한다.

 

※西湖(서호) : 송(宋) 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임포(林逋)가 서호(西湖)에서 학을 기르고 매화를 가꾸며 은거한 채 살았기에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 서호처사(西湖處士)라고 하였다.

 

※伴鶴高人不出山(반학고인불출산) : 송나라 은사(隱士)이자 시인인 임포(林逋)는 서호에 은거하여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았다고 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일컬었다. 고인(高人)은 뜻이 높고 지조가 굳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임포(林逋)처럼 학식이 높은 은사(隱士)를 의미한 듯하다.

 

※辭輦貞姬常掩門(사련정희상엄문) : 정희(貞姬)는 한 성제(漢成帝)의 후궁(後宮) 반희(班姬)를 말하는 듯하다. 반희(班姬)는 반첩여(班婕妤)라고도 하는데, 정원을 산책하던 성제(成帝)가 수레[輦]에 같이 타자고 하는 것을 사양하면서 ‘옛날의 그림을 보니 성현이 된 임금은 모두 옆에 명신이 있었는데, (하 은 주) 삼대의 마지막 임금들은 옆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수레를 같이 타면 그와 같지 않겠습니까? [觀古圖書 聖賢之君 皆有名臣在側 三代末主 有嬖女 得無近似之乎]’ 하였다. 훗날 조비연(趙飛燕) 자매의 모함으로 장신궁(長信宮)에 유폐되었다. 이 구절은 매화의 고고한 자태와 품위를 반희(班姬)에게 비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騷人(소인) : 시인과 문사.

 

※鐵石腸(철석장) : 철심석장(鐵心石腸). 쇠 같은 마음에 돌 같은 창자라는 뜻으로, 지조(志操)가 철석같이 견고(堅固)하여 외부(外部)의 유혹(誘惑)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이르는 말.

 

※藐姑山人(막고산인) : 장자 소요유(莊子 逍遙遊)에, 막고야산(藐姑射山)에 선인(仙人)이 있는데, 살결이 빙설(氷雪)같이 희고 깨끗하며 아름다워서 처자(處子)와 같다 하였다.

 

※高情不入衆芳騷(고정불입중방소) :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에 온갖 초목을 나열되어 있으나, 매화는 거기에서 빠졌다는 뜻.

 

※孤山(고산) : 매화(梅花)와 학(鶴)을 사랑한 임포(林逋)가 살았던 곳.

 

※世人不識嘆類沈(세인불식탄류심) : 초나라의 葉公(섭공)인 심제량(沈諸梁)이 공자가 어떤 분인지 모르고 자로(子路)에게 물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今我獨得欣逢溫(금아독득흔봉온) : 만나서 서로 눈길만 마주치고도 마음이 통했음을 뜻한다. 공자(孔子)가 초(楚) 나라의 현인(賢人) 온백설자(溫伯雪子)를 만나보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로(子路)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사람은 눈길만 마주쳐도 거기에 도가 있으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 [若夫人者 目擊而道存矣 亦不可以容聲矣]’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