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上元雜咏 (상원잡영) - 黃玹 (황현)

-수헌- 2024. 2. 15. 17:00

上元雜咏 상원잡영 黃玹 황현 

대보름날의 여러 풍속을 읊다

 

上元前後天甚寒 擁衾度日 無以遣歲時之懷 遂綴鄕村故俗 得長歌十篇 盖亦范石湖田園樂府之遺 云 若祭烏則尙沿東京俗 其餘幷不知昉自何時

상원전후천심한 옹금도일 무이견세시지회 수철향촌고속 득장가십편 개역범석호전원악부지유운 약제오칙상연동경속 기여병불지방자하시

상원 전후로 날씨가 몹시 추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날을 보내자니 세시의 감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침내 시골의 옛 풍습을 엮어서 장가 10편을 지었다. 이는 또한 범석호(范石湖)의 전원악부의 영향을 받았다 할 것이다. 까마귀에게 제사하는 것은 동경의 풍속에서 따른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祭烏 제오

까마귀 제사

烏啼啞啞復角角 오제아아부각각

까마귀가 아옥아옥 또 까옥까옥 울어대니

驅之復來墻頭啄 구지부래장두탁

쫓아내도 다시 와서 담장 머리를 쪼아대네

寄語兒童莫浪驅 기어아동막랑구

얘들아 부탁하노니 함부로 쫓아내지 말라

此鳥不是凡鴉鵲 차조불시범아작

이 새는 평범한 까막까치가 아니라네

新羅宮中啣書來 신라궁중함서래

신라의 궁중에 편지를 물고 와서

能爲君王捍大灾 능위군왕한대재

군왕을 위해서 큰 재앙을 막았다네

糯飯成俗過千年 나반성속과천년

찰밥 짓는 풍속이 천년동안 이어와서

家家施食如僧齋 가가시식여승재

승려들 재 올리듯 집집마다 밥을 주네

擧世聾瞶無眞聰 거세롱귀무진총

세상이 온통 눈귀 멀어 바로 듣는 이 없어

聞烏輒嗔烏鳴凶 문오첩진오명흉

까마귀 소리 들으면 흉하다고 하는구나

烏如解語應叫寃 오여해어응규원

까마귀가 말을 알면 원통하다 할 텐데

不祥幾與梟䲭同 불상기여효시동

올빼미와 한 가지로 불길하게 보는구나

人不如鳥世多有 인불여조세다유

세상에는 새만도 못한 사람이 많으니

竊國者侯印如斗 절국자후인여두

나라 훔친 자의 제후인이 말만 하구나

援琴欲彈烏夜啼 원금욕탄오야제

거문고를 끌어다가 오야제를 타려다가

北望長安淚眼枯 북망장안루안고

북쪽 장안 바라보며 눈물 다하도록 우네

 

※范石湖(범석호) : 송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 석호(石湖)는 그의 호이다. 자는 치능(致能). 남송의 시인 4 대가의 한 사람으로, 청신(淸新)한 시풍으로 전원의 풍경을 읊은 시가 유명하다.

 

※新羅宮中啣書來(신라궁중함서래) : 신라 소지왕(炤知王) 10년 1월 15일에 왕이 경주(慶州) 금오산(金鰲山) 동쪽 기슭에 있는 천천정(天泉亭)에 거둥 하였을 때, 까마귀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날아가므로 뒤쫓게 하니, 한 노인이 못〔池〕 속에서 나와 봉투를 전하였는데, 그 속에 ‘거문고 갑을 쏘라. [射琴匣]’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곧 입궁(入宮)하여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더니, 그 속에는 왕비와 간통하면서 그날 왕을 시해하려고 했던 승려가 숨어 있었다. 이에 감동한 백성이 1월 16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드렸고, 그 못은 글이 나온 못이라고 하여 ‘서출지(書出池)’라 불렀다고 한다. <三國遺事>

 

※竊國者侯印如斗(절국자후인여두) : 이 시는 매천이 52세 되던 해(1906년)에 지은 시들을 모은 병오고(丙午稿)에 실려 있는데, 그 전해인 1905년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어 이에 관련된 매국노(賣國奴)들의 매국행위와 영달(榮達)을 규탄한 것으로 보인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통분하여 그해 9월 8일부터 유서와 절명 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9월 10일에 자결하였다.

 

※援琴欲彈烏夜啼(원금욕탄오야제) : 오야제(烏夜啼)는 까마귀가 밤에 운다는 뜻으로 악곡명(樂曲名)이다. 까마귀가 밤에 우는 것은 원래 길조(吉兆)를 의미하나 뒤에는 임을 그리는 상사곡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국권을 잃은 임금을 임에 비유한 듯하다.

 

飼牛 사우

소 먹이기

敗箕三尺粘糠厚 패기삼척점강후

세 자짜리 헌 키에다 차진 겨를 듬뿍 담아

小婢提向牛欄口 소비제향우란구

어린 계집종이 들고서 외양간으로 향하네

一頭白飯一頭菜 일두백반일두채

한쪽에는 흰밥이고 한쪽에는 나물인데

棉子一掬如粉糗 면자일국여분구

한 움큼의 목화씨는 볶은 쌀가루 같네

老牛擧首聞飯香 노우거수문반향

늙은 소가 머리 들어 밥 냄새를 맡고는

出舌舐鼻跑起忙 출설지비포기망

혀로 코를 핥으며 벌떡 딛고 일어서네

頑涎如膠注睛久 완연여교주정구

끈끈한 침 흘리며 오랫동안 쳐다보며

然疑四嗅未遽嘗 연의사후미거상

냄새 맡고 의심하며 선뜻 먹지 않더니

須臾張舌如帚掃 수유장설여추소

순식간에 혀를 뻗어 비로 쓸듯 먹고는

揮吻一磨推箕倒 휘문일마추기도

입술로 문질러서 키를 엎어 버리는구나

小婢嚇嚇向牛笑 소비혁혁향우소

어린 계집종 소를 향해 깔깔대고 웃으며

不是牛性無歹好 불시우성무알호

소의 본성 아니라 좋고 나쁨 안 따지네

今歲定應豐無比 금세정응풍무비

올해는 응당 전에 없이 풍년 들 터이니

木綿雪積禾雲委 목면설적화운위

목화는 눈처럼 벼는 구름처럼 쌓이리라

千畦菘葉賤於蒿 천휴숭엽천어호

넓은 들의 배추 값은 쑥보다 쌀 것이고

羹芼溢椀霜鱸美 갱모일완상로미

나물국 사발에 넘치고 농어는 맛있으리

明年此日炊豆飯 명년차일취두반

다음 해 이날에는 콩으로 밥을 지어서

報賽牛靈應不晩 보새우령응불만

영험한 소에 보답해도 늦지 않으리라

 

※飼牛(사우) : 대보름날 소가 먹는 것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되고, 목화씨를 먼저 먹으면 목화 농사가 잘된다는 말이 있다.

 

治聾 俗呼耳明酒   치롱   속호이명주

귀 밝히기. 민간에서는 귀밝이술이라 부른다.

屠蘇酒至居人後 도소주지거인후

도소주가 사람들에게 다가온 뒤에

治聾酒至居人前 치롱주지거인전

치롱주가 사람들 앞에 다가왔네

縱不欲老無那老 종불욕로무나로

늙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늙으니

把盞一笑成華顚 파잔일소성화전

백발이 되어 술잔 잡고 한바탕 웃는구나

我亦少年誇耳聰 아역소년과이총

나 또한 젊을 때는 귀 밝다고 자부해서

不施鞱挑常洞然 불시도도상동연

귀 후비지 않더라도 항상 잘 들렸는데

漸怪床下聞牛鬪 점괴상하문우투

침상 아래서 소싸움 소리 들리듯 하고

蒲柳脆薄驚秋先 포류취박경추선

가을 전 갯버들 바스락 소리에 놀라네

傍枕勃窣郭索行 방침발솔곽색행

베개 옆엔 바스락대며 기어가는듯하고

拂幘嚘嚶蒼蠅鳴 불책우앵창승명

두건 위에서 쉬파리가 앵앵 울어대네

有時飛舃名山趾 유시비석명산지

때때로 비석으로 명산 자락 찾아봐도

兩竅夢夢隔壁聽 량규몽몽격벽청

양쪽 귀 어두워 벽 너머 듣는 듯하네

始憐東隣黃髮叟 시련동린황발수

이웃 누런 머리 노인이 가련해지더니

妄問妄對誠非情 망문망대성비정

동문서답하니 참된 본성이 아니로구나

何人刱出上元酒 하인창출상원주

누가 상원주를 처음 만들어 내었는지

飮者一一能效否 음자일일능효부

마신 사람 하나하나 효과를 보았는가

人云我云徇俗好 인운아운순속호

너도나도 풍속을 따르는 게 좋다 하니

聊且不辭盃到手 요차불사배도수

잔 손에 들면 일단 사양 않고 즐기네

繞舍淸溪玉淙淙 요사청계옥종종

집을 두른 맑은 시내 옥처럼 졸졸대고

東風泛艶門前柳 동풍범염문전류

동풍에 문 앞 버들은 고운 빛을 띠네

春來不聞黃鳥聲 춘래불문황조성

봄이 와도 꾀꼬리 소리 듣지 못하니

板汝杜康九十九 판여두강구십구

두강 너를 아흔아홉 잔 마셔 보려네

 

※屠穌酒(도소주) : 도소주는 설날에 마시는 약주(藥酒)를 말한다. 귀신의 기운을 끊어 죽이고 사람의 혼을 다시 깨워 살린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그믐밤을 자지 않고 새다가 새해 첫새벽이 되면 가족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 모여서 차례로 도소주를 마시는데,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신다.

 

※治聾酒(치롱주) : 귀밝이술. 한국의 정월 대보름 세시 풍속으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온 가족이 마신다. 마시면 귀가 밝아질 뿐만 아니라 1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귀가 먹는 것을 막아 준다는 술로, 이명주(耳明酒), 명이주(明耳酒), 총이주(聰耳酒)라고도 한다.

 

※漸怪床下聞牛鬪(점괴상하문우투) : 진(晉) 나라 은중감(殷仲堪)의 아버지 은사(殷師)가 귓병을 앓았는데, 누워 있을 때 침상 아래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듣고도 소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飛舃(비석) : 나는 신발이라는 뜻. 후한(後漢) 때 섭현령(葉縣令) 왕교(王喬)가 조회를 올 때마다 거기(車騎)도 없이 빨리 오므로, 이상하게 여긴 임금이 사람을 시켜 확인하였는데 그가 올 때마다 오리 두 마리가 날아와서 그물로 잡고 보니 신발 한 짝이 걸려 있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杜康(두강) : 중국의 황제(黃帝) 때 맨 처음 술을 만들었다는 사람. 전하여 술의 이칭으로 쓰였다.

 

 

賣暑 매서

더위 팔기

塡街小兒無春寒 전가소아무춘한

골목 가득한 아이들 봄추위도 잊은 채

嚼冰如破蕪菁根 작빙여파무청근

무 뿌리 씹듯이 얼음 깨물어 먹는구나

西舍東隣相望呼 서사동린상망호

이쪽저쪽 이웃집 바라보고 부르면서

刁聒合杳連村喧 조괄합묘련촌훤

속이며 떠들어 대니 동네마다 시끄럽네

唇焦舌倦呼不應 순초설권호불응

입술 혀 부르트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어

如有應者銀一錠 여유응자은일정

답하는 자 있으면 은 한 덩어리 주리라

驀地偶逢善忘人 맥지우봉선망인

우연히 깜빡 잘 잊는 사람을 만난다면

我暑我暑如獲勝 아서아서여획승

내 더위 내 더위 하며 이긴 듯 좋아하네

黃冠老子絶纓笑 황관로자절영소

황관 쓴 늙은이 갓끈이 끊어져라 웃으니

且住汝賣勤吾聽 차주여매근오청

잠시 파는 것 멈추고 내 말 좀 들어 보렴

天南六月火傘張 천남륙월화산장

온 나라의 유월에 불 우산이 펼쳐지면

溝魚自死如探湯 구어자사여탐탕

도랑의 물고기 끓는 물에 덴 듯 죽겠지만

千耦徂鋤汗滴土 천우조서한적토

짝 지어 김맬 적에 땀방울 흙에 떨어지면

豐年有慶歌稻粱 풍년유경가도량

곡식이 풍년 들어서 경축 노래를 부르리라

恣吾買喫幸吾飽 자오매끽행오포

나는 실컷 사 먹어서 배부르기를 바라지만

賤軀元非病暑腸 천구원비병서장

천한 이 몸 원래 더위 먹는 체질 아니니라

 

※黃冠(황관) : 누른빛의 관. 풀로 만든 평민의 관이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

 

※天南(천남) : 천남지북(天南地北)의 준 말로 온 나라 전국 곳곳을 의미한다.

 

 

植風竿 식풍간

풍간 세우기- 솟대 세우기

去年過臘不見雪 거년과랍불견설

작년엔 섣달 지나도록 눈을 보지 못했는데

今年入春雪不絶 금년입춘설불절

금년에는 봄이 되어도 눈이 끊이지를 않네

人言春雪不宜麥 인언춘설불의맥

사람들은 봄눈은 보리에 좋지 않다고 하고

又釀蝗蟲作禾孼 우양황충작화얼

또 해충을 배양하여 벼에도 해롭다고 하네

田翁慣行禳禬術 전옹관행양회술

늙은 농부는 익숙하게 푸닥거리를 하지만

但有手法無口訣 단유수법무구결

다만 손놀림만 보여 줄 뿐 구결은 없구나

編藁作窠學僧笠 편고작과학승립

짚단 엮어서 스님 삿갓 모양 집을 만들어

承以長竿倚簷立 승이장간의첨립

긴 장대에 걸어서 처마에 기대어 세우네

野曠村平風不定 야광촌평풍불정

마을의 빈 들판에 산들바람이 불어오니

鴟尾旖旎流蘇掣 치미의니류소체

치미에 달린 깃발이 펄럭이다 나부끼네

嶢嶢百尺高我倉 요요백척고아창

우리 곳간이 백 척이나 높다랗게 쌓이고

家家擊壤歌無節 가가격양가무절

집집마다 격양가가 끊이지 않게 되기를

待到二月初吉天 대도이월초길천

좋은 날씨 시작되는 이월 되길 기다려

解藁作薪吹火爇 해고작신취화설

짚단 풀어 땔감 삼아 불을 붙여 피우면

瓦銚腷膊熬黃豆 와요픽박오황두

질그릇 솥엔 타닥타닥 황두가 볶여지고

奇驗證在蝗隨滅 기험증재황수멸

기이한 증험 있어 해충도 따라 제거되지

君不見雲谷老人歌石廩 군불견운곡로인가석름

운곡 노인의 석름 노래를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世間惟好年快活 세간유호년쾌활

세상에선 오로지 풍년 들기만을 좋아하네

 

※風竿(풍간) : 마을 입구에 자리 잡아 마을공동체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솟대의 일종.

 

※禳禬術(양회술) : 양회(禳禬)는 재앙을 물리치는 굿을 말한다. 따라서 푸닥거리하다는 뜻이다.

 

※鴟尾(치미) : 전각이나 문루 등 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기와.

 

※腷膊(픽박) : 닭이 날개를 푸득이는 모양.

 

※雲谷老人歌石廩(운곡노인가석름) : 운곡노인(雲谷老人)은 송(宋) 나라의 대학자로 신유학(新儒學)을 집대성하여 주자(朱子)로 불리는 주희(朱熹)를 말한다. 그의 호가 운곡산인(雲谷山人)이어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주희(朱熹)의 시 석름봉차경부운(石廩峰次敬夫韻)이라는 시에, ‘일흔두 봉우리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한 봉우리는 석름이라는 옛 이름이 전하네. 집집마다 이렇게 높은 창고 있으니, 인간 세상 풍년 든 것이 너무 좋구나.〔七十二峰都挿天 一峰石廩舊名傳 家家有廪髙如許 大好人間快活年〕’라고 하였다.

 

 

苫橋 점교

점교 놓기

北郭老巫米布卦 북곽로무미포괘

성곽 북쪽 늙은 무당이 쌀로 점을 치다가

自言神降向空拜 자언신강향공배

신이 내려온다면서 공중을 향해 절을 하니

村媼稽首筭新年 촌온계수산신년

시골 노파들 조아리며 신년 운수 셈해보며

勤爲諸男作醮禬 근위제남작초회

부지런히 아들들 위해 푸닥거리하는구나

家家空苫把爲囊 가가공점파위낭

집집마다 빈 가마니로 자루를 만들어서

築盛沙礫三四塊 축성사력삼사괴

모래자갈 담아서 서너 더미 쌓아 두었다가

寒溪水陷月粼粼 한계수함월린린

차가운 시냇물에 잠긴 달빛 일렁거릴 즈음

男婦相携負且戴 남부상휴부차대

사내 아낙 서로 이끌며 이고 져서 나르네

總總擺列如植樁 총총파렬여식장

죽 늘어 세운 것이 말뚝 박아 놓은 듯하고

餘剩屬之崩橋外 여잉속지붕교외

남은 것은 무너진 다리 밖에 엮어 놓았네

卽此區區名度厄 즉차구구명도액

곧 이것을 구구하게 액막이라 이름 하니

度與不度誰能解 도여불도수능해

막는지 못 막는지를 그 누가 알겠냐마는

樵採從今免徒涉 초채종금면도섭

나무꾼들 이제 맨발로 물 건널 일 없으니

巫姑未嘗誑人賄 무고미상광인회

무당 할멈 사람 속여 돈 뜯은 것만은 아닐세

 

燒田 소전

밭둑 태우기

白竹長竿碎作炬 백죽장간쇄작거

마른 대나무 긴 장대 쪼개서 횃불 만드니

兒童噀火出門去 아동손화출문거

아이는 불을 뿜으며 문밖으로 나가는구나

放膽今夕爲火戱 방담금석위화희

오늘 저녁 대담함은 불놀이를 위해서이니

家翁肫肫不嗔汝 가옹순순불진여

할아버지는 자상하게도 나무라지 않는구나

溪南坡隴如衲紩 계남파롱여납질

시내 남쪽 제방들이 마치 기운 승복 같이

先從低田斜遵渚 선종저전사준저

낮은 밭에서 시작하여 냇가를 번져가네

草枯風細燃不休 초고풍세연불휴

마른풀 잔잔한 바람에 계속하여 번져서

分外熛颯如着絮 분외표삽여착서

엉뚱한데 불똥 날려 버들 솜 앉은 듯하네

羣兒眼薰類迷藏 군아안훈류미장

아이들은 눈이 매워서 숨바꼭질놀이 하듯

冒烟還走烟深處 모연환주연심처

연기 무릅쓰고 연기 속으로 도로 달려가네

隔溪呼喚不相聞 격계호환불상문

시내 사이에 두고 불러도 서로 못 듣지만

莫遣流星墮糞所 막견류성타분소

불똥이 거름 더미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라

遺蝗種育尙可捕 유황종육상가포

남아있는 병해충 종자는 잡을 수 있겠지만

糞燒無從長我黍 분소무종장아서

거름 더미 타 버리면 곡식 키울 수 없단다

 

※肫肫(순순) : 자상하거나 공손한 모양을 나타낸다.

 

候月 후월

달맞이

近南則水近北旱 근남칙수근북한

남쪽에 가까우면 물난리 반대면 가뭄이라

色貴黃潤輪厚滿 색귀황윤륜후만

누런 색 완전히 둥근 모양 소중히 여기네

早出宜秈晩宜粳 조출의선만의갱

일찍 뜨면 올벼 늦게 뜨면 늦벼에 좋다고

田家以月爲占斷 전가이월위점단

농가에선 달 가지고 점을 쳐서 판단하네

嫦娥從古玉團團 항아종고옥단단

보름달은 예로부터 옥처럼 둥글었는데

空然推出环珓槃 공연추출배교반

쓸데없이 드러내어 배교반을 만들었네

尙復端嚴不羞澁 상부단엄불수삽

그래도 여전히 단정함이 손색이 없으니

快與萬人看又看 쾌여만인간우간

기뻐하며 만인과 함께 보고 또 보는구나

分明東山舊上處 분명동산구상처

반드시 동산 예전 그곳에서 떠오르는데

觀者自私迷定所 관자자사미정소

보는 자마다 뜨는 곳을 맘대로 가리키네

豐歉未判人人殊 풍겸미판인인수

풍년 흉년 판단하는 게 사람마다 다른데

老翁額手悄無語 노옹액수초무어

이마에 손 얹은 늙은이 말없이 근심하네

晡曛斂盡雲乍開 포훈렴진운사개

구름 살짝 걷히자 석양빛은 사라졌는데

問君端從何處來 문군단종하처래

묻노니 단정한 그대는 어디에서 오는가

無由取必成悵望 무유취필성창망

까닭 없이 반드시 슬프게 바라보는데

千秋喝月眞雄才 천추갈월진웅재

예부터 달 부르는 이는 정말 웅재구나

且須閣置占年法 차수각치점년법

일단 풍년을 점치는 방법은 내버려 두고

通宵照我黃金罍 통소조아황금뢰

밤새도록 나의 황금 술잔이나 비춰 주오

 

※嫦娥(항아) : 달 속에 사는 여선(女仙). 본래 유궁후(有窮后) 예(羿)의 부인이었는데, 예가 서왕모(西王母)에게 불사약(不死藥)을 얻어 오자, 상아가 이를 훔쳐 먹고 달 속에 유배되었다고 한다. 전하여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空然推出环珓槃(공연추출배교반) : 배교(环珓)는 윷처럼 던져서 그 결과에 따라 점을 치는 도구이다. 공연히 달을 점을 치는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는 뜻이다,

 

※千秋喝月眞雄才(천추갈월진웅재) : 갈월(喝月)은 달을 부른다는 의미이니 달을 불러 노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의미로 이해된다.

 

繂曳 율예

줄다리기

繂場如槃百步平 율장여반백보평

줄다리기 장소는 쟁반처럼 백 보가 평평한데

人人醉薰十步生 인인취훈십보생

술 취한 사람들은 열 걸음마다 생겨나네

鼓聲未絶呼聲動 고성미절호성동

북소리가 멎기도 전에 함성 소리가 터지니

從此擊鼓無鼓聲 종차격고무고성

이때부턴 북을 쳐도 북소리 들리지 않는구나

千趾錯植項齊彎 천지착식항제만

모든 발 굳게 디디고 일제히 목을 젖히는데

仰面不見天月明 앙면불견천월명

얼굴 들어도 하늘의 밝은 달은 보이지 않네

黑塵蓊勃出鼻底 흑진옹발출비저

발밑에서 검은 먼지 일어 코밑으로 올라오고

剗平凍地翻成坑 잔평동지번성갱

평평했던 언 땅이 깎여서 구덩이가 생겼네

當下若將決生死 당하약장결생사

당사자는 마치 생사를 결판 지으려는 듯하고

傍觀未暇論輸贏 방관미가론수영

구경꾼들은 미처 승부를 논할 겨를이 없네

忽如崩山笑不休 홀여붕산소불휴

갑자기 산이 무너지듯 한 웃음소리 터지면

轍亂旗靡曳殘兵 철란기미예잔병

줄과 깃발이 넘어지니 패잔병을 끌고 가네

汗袍凄凜夜向闌 한포처름야향란

밤 깊어 가니 땀에 젖은 옷이 서늘해지고

抹帕飄拂風怒鳴 말파표불풍노명

질풍에 휘장이 떨고 거센 바람이 울어대니

村篘麤瀉薄薄醪 촌추추사박박료

마을의 용수에서 묽은 막걸리를 쏟아 내니

無揀勝負輪深觥 무간승부륜심굉

승부를 가릴 것 없이 큰 잔을 돌리는구나

生老太平今百年 생로태평금백년

태평세월 살아온 지 어언 백 년이나 되니

此等俗戱皆人情 차등속희개인정

민속놀이 이리 즐김은 모두 인지상정이네

嗟哉汝曹眼力短 차재여조안력단

아아 너희들의 안목이 어찌 이리 짧은가

試向東海看饞鯨 시향동해간참경

동해를 향해 탐욕스런 고래를 살펴보게

 

※轍亂旗靡(철란기미) : 수레바퀴 자국 없어지고 깃발이 넘어진다는 뜻으로 군사가 패망하는 모습을 말한다.

 

※試向東海看饞鯨(시향동해간참경) : 饞鯨(참경)은 탐욕스런 고래란 뜻으로 일본을 말한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이 시를 지은 때는 일제의 침탈이 한창이었던 시기이며, 황현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절명 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罷儺 파나

뒤풀이굿 - 지신밟기

皷淵淵鉦洸洸 고연연정광광

북소리 둥둥 울리고 징소리 쾅쾅 울리고

缶坎坎角嘈嘈 부감감각조조

장구는 동당동당 뿔피리는 삘리리삘리리

旗獵獵舞躚躚 기렵렵무선선

깃발은 펄럭펄럭 춤사위는 너울너울

獸面獰獰虎冠嶢 수면영영호관요

짐승 얼굴 사납고 호랑이 관은 드높구나

園場井竈雷殷地 원장정조뢰은지

마당 우물 부엌에서 우레처럼 땅 울리며

捲進擁退奔驚潮 권진옹퇴분경조

조수처럼 분주히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네

門靈戶神增新敬 문령호신증신경

문호의 신령님께 새로이 치성을 더하니

林魈澗倛忙遁逃 임소간기망둔도

숲과 시내 도깨비들 도망가기 바쁘구나

鍾馗手攫立啖睛 종규수확립담정

종규가 눈동자를 움켜쥐고 먹으며 서서

噴血作火全身燒 분혈작화전신소

피를 뿜어 불을 일으켜서 온몸을 태우네

鬼也有膽亦應破 귀야유담역응파

귀신도 간이 있다면 응당 떨어졌을 테니

剡剡乞命高其尻 섬섬걸명고기고

목숨 구걸하며 꽁무니를 높이 드는구나

急急嚴嚴驅出門 급급엄엄구출문

엄엄하고 급급히 문밖으로 달려 나가니

天地遼廓月星昭 천지료곽월성소

드넓은 천지에 달과 별이 밝게 빛나네

鳴金一揮截然止 명금일휘절연지

징 울리며 지휘하여 자른 듯이 그치니

壯士破陣歌收鐃 장사파진가수뇨

장사들은 진을 풀고 노래도 멈추었네

廚深始出狵吠聲 주심시출방폐성

부엌 구석에서 삽살개 나타나 짖어대고

曠然籬落增寥寥 광연리락증요요

텅 빈 울타리 가에는 적막함이 더하네

却笑五窮送不得 각소오궁송불득

우스워라 오궁은 보내지를 못하였으니

退之枉作文中豪 퇴지왕작문중호

퇴지는 헛되이 문중의 호걸되었구나 

 

※鍾馗(종규) : 전설에 따르면 당 명황(明皇: 玄宗)이 병환 중에 꿈에 나타난 허모(虛耗)를 큰 귀신이 나타나서 잡아먹는 꿈을 꾸었는데, 이때 큰 귀신이 자칭 종규(鍾馗)라고 하면서 이전에 무과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하자 분격하여 전각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는데, 왕께서 장례를 치러 주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왕에게 세상의 요괴를 모두 없애주겠노라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명황은 꿈에서 깨어나 오도자(吳道子)에게 종규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는데, 찢어진 모자와 누추한 옷차림에 애꾸눈으로, 왼손은 귀신을 잡고 오른손은 귀신의 눈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에 민간에서는 종규의 초상을 붙여놓으면 귀신을 쫓고 사악함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종규의 초상을 걸어놓아 귀신을 없애고자 했다.

 

※五窮(오궁) : 당(唐)의 한유(韓愈)가 자신을 궁하게 만드는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 등 다섯 궁귀(窮鬼)를 몰아내기 위해 지은 송궁문(送窮文)을 말한다.

 

*황현(黃玹,1855~1910) : 개항기 매천집, 매천시집, 매천야록 등을 저술한 문인. 시인, 열사.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통분해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