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元朝二咏 (원조이영) - 黃玹 (황현)

-수헌- 2024. 2. 13. 10:36

元朝二咏 원조이영 黃玹 황현  

설날아침에 두 수를 읊다

 

耳明酒 이명주

귀밝이술

 

君不聞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龍聽以角蛇聽目 용청이각사청목

용은 뿔로 듣고 뱀은 눈으로 듣는다는데

物理杳昧誠難窮 물리묘매성난궁

사물의 이치는 어려워서 알 수가 없구나

我老擬學龍蛇蟄 아로의학룡사칩

나 늙으면 용과 뱀의 칩거를 배울까 하니

有耳不患無其聰 유이불환무기총

밝지 않은 귀가 있어도 근심할 일이 없네

屠穌餘瀝家家在 도소여력가가재

집집마다 걸러낸 도소주가 남아 있는데

上元天霽朝牕紅 상원천제조창홍

맑은 보름날 아침에 창이 붉게 밝아 오네

銅甁噓氣鵝黃煖 동병허기아황난

구리 술병 김을 뿜고 아황주가 데워져서

香霧暈匝春濛濛 향무훈잡춘몽몽

술 향기가 휘감으니 봄기운이 자욱하구나

琉璃半鐘手自斟 유리반종수자짐

유리잔에 반 차도록 스스로 술을 따르니

細君不識吾不聾 세군불식오불롱

아내는 내가 귀먹지 않은 걸 모르는구나

酒不到耳先到臍 주불도이선도제

술이 귀로 가지 않고 배꼽에 먼저 닿으니

但覺耳熱胸煩忡 단각이열흉번충

귀에는 오직 열이 나고 가슴만 답답하네

枕畔酩酊了無聞 침반명정료무문

취하여 베개를 베니 아무것도 안 들리어

須臾便成褎如充 수유편성유여충

금세 옷소매로 귀 막은 귀머거리 되었네

誰將此酒稱耳明 수장차주칭이명

누가 어찌 이 술을 귀밝이술이라 하였나

倒攝靈竅虧前功 도섭령규휴전공

도리어 귓구멍 막아 예전 공적 허물었네

遂致全聵亦何妨 수치전외역하방

완전히 귀머거리 된들 또한 무슨 문제랴

世事日聞徒激衷 세사일문도격충

매일 듣는 세상사는 격분만 하게 하는데

笑矣乎 소의호

우습기만 하구나

不患名實不相副 불환명실불상부

명실이 서로 돕지 않는 건 걱정하지 않고

只好愚弄田舍翁 지호우롱전사옹

다만 촌 늙은이를 비웃으며 놀리고 있네

 

賣暑 매서

더위 팔기

巷南巷北賣暑行 항남항북매서행

이 거리 저 거리로 더위를 팔러 다니는데

只有賣聲無買聲 지유매성무매성

팔겠다는 소리만 있고 사겠다는 소리 없네

萬呼千喚競揶揄 만호천환경야유

천 번 만 번 부르면서 다투어서 놀려대니

兒童氣活春寒輕 아동기활춘한경

아이들 기가 살아서 봄추위도 업신여기네

農家天時暑不畏 농가천시서불외

농가에선 농사철에 더위를 겁내지 않아야

水熱如湯長禾黍 수열여탕장화서

찌는 듯한 무더위가 농작물을 자라게 하지

五月六月日當午 오월륙월일당오

오뉴월 대낮에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면

頭上無雲汗滴土 두상무운한적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땀방울 떨어지니

千耦揮鋤泥沒骭 천우휘서니몰한

많은 사람들 호미질하다 흙투성이가 되고

暍毒盡從毛孔散 갈독진종모공산

더위 독이 털구멍으로 모두 빠져 흩어지네

忍住少頃卽逢秋 인주소경즉봉추

조금만 참아 내면 곧 가을을 맞이하여

家家鼓腹黃雲滿 가가고복황운만

황금물결 넘쳐서 집집마다 배 두드리겠지

去年長夏雨淫淫 거년장하우음음

지난해엔 여름 장마가 너무나 길고 길어

眼前溝壑多呻吟 안전구학다신음

눈앞의 구렁텅이에 신음 소리가 가득했지

寄語兒童莫浪賣 기어아동막랑매

아이에게 말하노니 더위 함부로 팔지 마라

所可買者千黃金 소가매자천황금

사려는 사람은 황금 천 냥이 필요하다네

 

※耳明酒(이명주) : 귀밝이술. 한국의 정월 대보름 세시 풍속으로, 새벽이나 이른 아침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시면 귀가 밝아질 뿐만 아니라 1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龍聽以角蛇聽目(용청이각사청목) : 옛 문헌 여러 곳에서 ‘용은 뿔로 듣고 소는 코로 듣고 뱀은 눈으로 듣고 물고기는 귀가 없어도 듣는다. 〔龍聽以角 牛聽以鼻 蛇聽以眼 魚無耳而聽〕’고 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물이(物異) 편에도 ‘용은 뿔로 듣는다고 하나, 귀가 먹은 것이 아니다. 이는 뿔로 귀를 삼은 것이다. [龍聽以角 非眞聾也 是以角爲耳者也.]‘라고 하였다.

 

※屠穌酒(도소주) : 도소주는 설날에 마시는 약주(藥酒)를 말한다. 귀신의 기운을 끊어 죽이고 사람의 혼을 다시 깨워 살린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도소주를 화타(華佗)의 비방(秘方)이라고 하였다. 그믐밤을 자지 않고 새다가 새해 첫새벽이 되면 가족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 모여서 차례로 도소주를 마시는데,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신다. 또 백출(白朮), 대황(大黃), 길경(桔梗), 천초(川椒), 계심(桂心), 호장근(虎杖根), 천오(川烏) 등의 약초를 썰어서 붉은 주머니에 넣어, 섣달그믐에 우물에 담가 두었다가 정월 보름날 이른 새벽에 꺼내 청주(淸酒)에 넣어 끓여서 동쪽을 향하여 마시는데, 어린 사람부터 순서대로 한 잔씩 마신다.

 

※銅甁噓氣鵝黃煖(동병허기아황난) : 동병(銅甁)은 구리로 만든 병으로 술을 데우는 주전자 같은 기구를 말하는 듯하다. 아황(鵝黃)은 거위새끼를 말하는데 거위새끼의 색이 노랗기 때문에 노랗게 잘 익은 술을 아황주(鵝黃酒)라 한다.

 

※細君(세군) : 윗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말. 아랫사람의 아내를 이르는 말.

 

※褎如充(유여충) : 시경(詩經) 모구(旄丘)에 나오는 ‘숙이여 백이여 옷소매로 귀를 막은 것과 같구나.〔叔兮伯兮 褎如充耳〕’한 데서 유래하여 귀머거리를 의미한다.

 

※賣暑(매서) : 정월 보름날에 행했던 풍속의 일종. 보름날 아침에 서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더위를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내가 상대의 더위를 사는 꼴이 된다. 미리 더위를 먹지 않도록 예방하려는 주술적 방법으로 정착된 세시풍속이다.

 

※千耦(천우) : 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시경(詩經) 재삼(載芟)에 ‘풀을 베어 내고 나무를 베어 내고 윤택하게 흙을 잘 갈았구나. 많은 사람이 김을 매며 논밭과 두둑을 다니네.〔載芟載柞 其耕澤澤 千耦其耘 徂隰徂畛〕’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