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급난지붕(急難之朋)

-수헌- 2023. 6. 17. 12:00

급난지붕 (急難之朋)

 

명심보감(明心寶鑑)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온다.

위급[急]하고 어려울 [難]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朋]라는 뜻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酒食兄弟千個有  주식형제천개유

술 밥 먹을 때 형님 동생은 천 명이나 있지만,

急難之朋一個無  급난지붕일개무

위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정말 요즘 현실이 그러하기에 이 말이 더욱 씁쓸하다. 특히 요즘 유명인들이 잘 나갈 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일단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전형적인 주식형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잘 아는 진짜 우정의 대명사인 관포지교(管鮑之交)관중(管仲)포숙아(鮑叔牙)마저도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아니었던 거 같다.

 

어릴 때 포숙아가 어렵게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오면 항상 관중이 더 많이 먹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불평하지 않고 관중이 덩치가 더 크기 때문에 당연히 더 먹어야 한다고 했다.

젊어서 관중과 포숙아가 함께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관중이 더 많이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이 가난하기 때문에 당연히 더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 관중이 혼자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포숙아는 관중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했다.

또 관중이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관중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변명해 주었다.

훗날 포숙아가 공자 소백(小白)을 보좌하게 되자, 관중을 천거하여 소백(小白)의 이복형인 공자 규(糾)를 보좌하게 해 준다.

 

세월이 흘러 공자 소백(小白)과 공자 규(糾)가 제나라의 왕권을 두고 다툴 때 관중은 규(糾)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소백(小白)에게 독화살을 쏘아 맞힌다. 그러나 화살이 의대(衣帶)에 맞는 바람에 소백(小白)은 무사하게 되고 왕위에 올라 제환공(齊桓公)이 된다.

제환공(齊桓公)은 자기에게 활을 쏜 관중을 죽이려 하지만, 포숙아는 오히려 제환공(齊桓公)에게 패업(霸業)을 달성하려면 관중을 중용하여야 한다며 관중을 상경(上卿)으로 추천하고 자기는 그 밑에서 일하게 되고,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패업(霸業)을 이루게 한다.

이때 관중은 ‘부모가 나를 낳았지만 항상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아뿐이다.’고 한다.

 

그러나 관중이 병이 들어 정사를 보지 못하게 되어 제환공이 관중의 후임으로 포숙아를 상경(上卿)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묻자, 관중은 포숙아는 능력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습붕(隰朋)을 등용하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포숙아는 ‘역시 관중이다. 사사로운 연으로 대업을 망치지 않는구나. 만일 그가 내게 재상을 추천했다면 내 당장 너희들을 모두 죽였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본보기가 될 만큼 두터웠지만, 어려울 때 포숙아의 도움과 배려가 없었다면 관중은 목숨을 잃었거나 구차하게 살아야 했을 텐데, 병든 자신을 대신해 포숙아를 기용하고자 하는 환공의 뜻에 반대한 관중은 포숙아에게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 아닌 주식형제(酒食兄弟)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