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狡兎三窟 (교토삼굴)

-수헌- 2023. 1. 1. 23:01

교토삼굴(狡兎三窟)         

2023년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토끼와 관련한 이야기로는 거북이와의 경주처럼 자만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별주부전처럼 지혜롭게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도 있는데, 특히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교토삼굴은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를 파서 위기에 대비한다.’는 뜻인데,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귀족 맹상군(孟嘗君)과 그의 식객 풍훤(馮諼)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맹상군(孟嘗君)의 이름은 전문(田文)으로, 신릉군(信陵君), 평원군(平原君), 춘신군(春申君)과 함께 ‘전국 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불렸다. 이들 사공자들은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맹상군의 식객이 가장 많았다 한다.

 

맹상군의 식객 중에 풍훤(馮諼)이란 사람은 집이 매우 가난하여 거지처럼 살았는데, 맹상군이 그를 받아들여 상객으로 예우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상군은 풍훤에게 식읍(食邑)인 설(薛)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라고 했다. 떠날 때 풍훤이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 올지를 물으니 맹상군은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을 사오라고 했다.

 

설읍에 도착한 풍훤은 빚을 진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채무를 하나하나 대조해 보고는 맹상군이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며 빚 문서들을 사람들이 보는 데서 불태워버렸다.

도성으로 돌아온 풍훤에게 맹상군이 무엇을 사 왔는지 묻자, 풍훤은 분부대로 공자님의 댁에 없는 '의(義)'를 사가지고 왔다고 했다. 맹상군은 속으로는 몹시 언짢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년 후에 제나라 민왕(泯王)이 맹상군의 직위를 파면시키자, 그는 봉읍지인 설읍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설읍의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백 리 밖까지 나와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광경을 본 맹상군은 크게 감동하여 풍훤에게 “오늘에야 비로소 자네가 사왔다는 '의(義)'를 이 눈으로 보게 되었네.”라고 했다.

 

그러자 풍훤은 “꾀 있는 토끼들은 굴을 세 개씩 파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설읍은 굴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굴 하나로는 안심할 수 없으니 소인이 굴 두 개를 더 파놓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맹상군이 허락하자 풍훤은 위() 나라로 가서 혜왕(慧王)에게 지금 제나라의 맹상군이 임금에게 쫓겨나 국외에 있는데, 맹상군은 재능 있고 덕이 높은 분이니 그를 등용하는 나라는 반드시 강성해질 것이라고 추천했다.

 

혜왕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사신에게 수레 1백 대와 황금 1천 근을 갖고 설읍으로 가서 맹상군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민왕은 무척 놀라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그는 즉시 태자의 스승에게 황금 1천 근과 화려하게 장식한 수레, 자신의 보검, 잘못을 사과하는 문서를 가지고 설읍으로 가서 맹상군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맹상군은 재상 직을 수락하여 두번째 굴(窟)을 완성하였으며, 풍훤의 조언을 따라 제나라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제사 기물들을 설읍에도  나누어 제나라의 종묘를 세우게 해 달라고 했다. 민왕은 그 요구를 들어주어 세번째 굴(窟)을 완성하였으며, 이리하여 맹상군은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위협이나 화액을 당하지 않고 순조롭게 제나라 재상을 지냈다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뜻으로, 바로 맹상군과 풍훤의 이 일화에서 나온 말인데,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제2. 제3의 굴(窟), 즉 플랜 B나 플랜 C 같은 대비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