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金晦翁南歸作村中四時歌以贈 (김회옹남귀작촌중사시가이증) - 李達衷 (이달충)

-수헌- 2023. 5. 1. 10:57

金晦翁南歸作村中四時歌以贈   김회옹남귀작촌중사시가이증      李達衷   이달충  

김회옹이 남으로 돌아갈 때에 지어 준 촌중사시가

 

山窓一夜春夢長 산창일야춘몽장

봄꿈 꾸는 산창의 하룻밤이 길기만 하고

杏花微雨東風香 행화미우동풍향

보슬비에 봄바람 불고 살구꽃 향기롭네

村南村北布穀啼 촌남촌북포곡제

마을 남쪽 북쪽에서 뻐꾸기는 울어대고

流水活活喧陂塘 류수활활훤피당

물은 못 두렁에서 콸콸 소리치며 흐르네

老農扣門告春及 노농구문고춘급

늙은 농부 문 두드려 봄 왔음을 알리니

畊牛正肥童僕忙 경우정비동복망

농우 한창 살이 찌고 일꾼들은 바쁘구나

先生無事獨登山 선생무사독등산

선생께서 일 없을 때 홀로 산에 오르면

山禽不去鳴其傍 산금불거명기방

산새도 가지 않고 그 곁에서 울어대고

幽花嫣然出紅頰 유화언연출홍협

숨은 꽃도 아름다운 붉은 볼을 드러내고

怊顔亦復送眉睫 초안역부송미첩

슬픈 얼굴로 다시 눈길을 보내는구나

稚子牽攀嬌且癡 치자견반교차치

예쁘고 순진한 어린아이 손에 손잡고

狂走曲徑撲蝴蝶 광주곡경박호접

오솔길 뛰어다니며 나비를 잡을 때

邑官憂民徵斂稀 읍관우민징렴희

읍관은 백성들 세금징수 적을 걱정에

相傳只有勸農牒 상전지유권농첩

오직 권농하는 공문만 서로 전달하네

 

薰風南來麥穟黃 훈풍남래맥수황

남쪽에서 훈풍 불어 보리이삭 누레지고

水田千頃雲蒼蒼 수전천경운창창

무논 천 이랑이 구름처럼 푸르러졌네

耘鋤作隊雁陣白 운서작대안진백

흰 기러기 떼처럼 무리 지어 김을 매며

低昂竸進歌聲長 저앙竸진가성장

숙였다 들었다 나가며 길게 노래하네

山枝小亭臨大野 산지소정림대야

산기슭 작은 정자에서 큰 들 굽어보니

一邊淸樾風微涼 일변청월풍미량

부근 그늘에 맑은 미풍 불어 시원하네

先生怡然滿意閑 선생이연만의한

선생은 넉넉하고 한가한 풍경이 기뻐서

於此竟日聊倘佯 어차경일료당양

여기서 해가 다하도록 거닐면서 즐겼네

雖無心交共淸吟 수무심교공청음

비록 마음으로 함께하며 읊는 이 없어도

亦有好事來相尋 역유호사래상심

서로 찾아오는 좋은 일은 또한 있다네

白頭野老擔美酒 백두야로담미주

머리 흰 시골 늙은이 좋은 술 짊어지고

綠骨山人携素琴 녹골산인휴소금

녹골산인은 수수한 거문고를 가져와서

一觴一曲愜幽興 일상일곡협유흥

한 잔 한 곡조 그윽한 흥을 돋우면서

相將未覺生夕陰 상장미각생석음

저녁 저무는 줄 모르고 서로 어울리리

 

老雁初飛霜露寒 노안초비상로한

늙은 기러기 날기 시작하고 서리 이슬 찬데

小溪水淸楓葉丹 소계수청풍엽단

작은 시냇물 맑고 단풍나무 잎은 붉구나

嘉禾登場高過屋 가화등장고과옥

타작마당 볏 더미는 지붕보다 높이 쌓이고

穹窿培塿羅峯巒 궁륭배루라봉만

큰 더미 작은 더미가 산봉우리처럼 벌였네

山蹊盡日兒童喧 산혜진일아동훤

산길에도 하루 종일 아이들이 떠들썩하니

風枝墜實紅團團 풍지추실홍단단

바람에 가지의 붉고 둥근 과실이 떨어졌네

先生高趣慠鍾鼎 선생고취오종정

선생의 높은 뜻은 부귀영화도 업신여기고

時得淸興便爲歡 시득청흥편위환

때로 맑은 흥이 일어나면 편안히 기뻐했네

秋來事事俱自得 추래사사구자득

가을이 오니 하는 일마다 스스로 만족하니

蔗味佳處誰得識 자미가처수득식

사탕수수 맛 좋은 곳을 누가 알 수 있을까

東籬菊花三兩枝 동리국화삼량지

동쪽 울타리에 피어난 국화꽃 두세 가지를

幽香滿袖厪採摘 유향만수근채적

겨우 따서 그윽한 향기를 소매 속에 채우고

携幼入室酒盈樽 휴유입실주영준

어린아이 손잡고 방에 드니 술통이 가득해

頹然一醉山月碧 퇴연일취산월벽

한바탕 마음껏 취하니 산 위 달이 푸르구나

 

穡事方成人力休 색사방성인력휴

농사일 모두 끝나니 사람들은 쉬게 되고

官租輸了生理優 관조수료생리우

관에 세금 내고 나니 생계는 넉넉하구나

東家西舍相勞慰 동가서사상로위

동편 집 서편 집 서로 노고를 위로하며

酒缸魚貫聊淹留 주항어관료엄류

머물면서 술 항아리 고기꿰미로 즐기네

野笛山歌亦可樂 야적산가역가악

들판 피리소리 산속 노래 또한 즐기니

耕夫蕘叟眞良儔 경부요수진량주

밭갈이 꾼 나무꾼도 진정 좋은 벗일세

先生平生喜放浪 선생평생희방랑

선생은 평생을 떠도는 것을 좋아하여

呼爲孟仲相獻醻 호위맹중상헌수

서로 형 동생으로 부르며 술잔 권했네

山椒日澹凍雲垂 산초일담동운수

산마루에 햇빛 엷고 찬 구름 드리우니

嚴風吹折枯桑枝 엄풍취절고상지

매운바람이 불어 마른 뽕가지를 꺾네

雪花欲作客罷去 설화욕작객파거

손님이 떠나가려할 때 눈송이 떨어져서

閉門還有一段奇 폐문환유일단기

문 닫고 돌아오니 기이함만 남아있구나

爛燒榾柮茅屋暖 란소골돌모옥난

등걸불을 피우니 오막 집이 따뜻해져서

隔窓聞竹尋小詩 격창문죽심소시

창밖 대 소리 들으며 짧은 시를 쓰노라

 

※金晦翁(김회옹) : 고려시대의 김연(金曣)을 가리킨다. 회옹(晦翁)은 그의 호이다.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으나 이달충(李達衷)과 이곡(李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문사(文士)인 듯하다. 이 시는  14구(句)로 이루어진 칠언 고시(七言古詩) 네 수[四首]인데 작가인 이달충(李達衷)은 매 일곱 번째 구(句)마다 선생(先生)으로 시작하여 김연(金曣)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고 있다.

 

※綠骨山人(녹골산인) : 양생술(養生術)을 닦으며 은거하는 산인을 말한다.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송하귀사녹골경(松下龜蛇綠骨輕)에서 나온 말인데, 귀사녹골(龜蛇綠骨)은 양생술(養生術)을 닦는 것을 말한다.

 

※穹窿培塿(궁륭배루) : 궁륭(穹窿)은 활이나 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을 말하고, 배루(培塿)는 흙으로 된 작은 구릉을 의미한다.

 

※鐘鼎(종정) : 집안에 사람이 많아 밥 먹을 때 종을 쳐서 모이게 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다 하여 매우 부귀한 집안을 말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마을에 들어찬 집들은 종을 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 집이다. [閭閻撲地 鐘鳴鼎食之家]’라는 구절이 있다.

 

※蔗味佳處(자미가처) : 자(蔗)는 사탕수수를 말하는데, 진(晋) 나라 고개지(顧愷之)가, ‘단 사탕수수[甘蔗]를 먹을 때는 꼬리부터 먹기를 시작하면 점점 아름다운 경지[佳境]로 들어간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 사탕수수는 아름다운 취미를 말한다.

 

*이달충(李達衷,1309~1384) : 고려 때 성균관 좨주 전리판서 감찰대부를 역임한 문신.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