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입동(立冬) - 겨울의 시작

-수헌- 2021. 11. 4. 11:13

입동(立冬)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입동을 기준해서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을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긴 겨울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즈음에 단풍도 저물고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무들이 헐벗기 시작한다. 재래 역법의 발생지인 중국에서는 이 시기의 초반인 초후(初候)에 물이 비로소 얼고, 중후(中候)에 땅이 처음으로 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후가 꼭 이와 같다고는 볼 수 없다.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金克己)가 田家四時(전가사시)중 겨울에서 겨울철 농가의 생활상을 잘 표현하였다.

 

田家四時 中 冬 전가사시 중 동      金克己 김극기

농가의 사계절 중에서 겨울

 

歲事長相續 세사장상속

해마다 할 일이 끝도 없이 이어져

終年未釋勞 종년미석로

해가 다 가도 일을 끝내지 못했구나

板簷愁雪壓 판첨수설압

눈에 짓눌린 판자 처마가 걱정되고

荊戶厭風號 형호염풍호

바람에 울리는 지게문 소리도 싫네

霜曉伐巖斧 상효벌암부

서리 내린 새벽에는 나무하러 가고

月宵升屋綯 월소승옥도

달밤에는 지붕 이을 새끼 꼬아야지

佇看春事起 저간춘사기

봄 농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舒嘯便登皐 서소편등고

휘파람 불며 편안히 언덕에 올라야지

 

*金克己(김극기, 1150~1209) : 고려 명종 때의 시인. 호는 노봉(老峰). 농민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노래한 농민시(農民詩)의 개척자이다. 일찍이 진사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의주 방어사를 거쳐 한림원에 들어갔다.

 

 

冬初 동초     晦齊 李彦迪 회제 이언적

초겨울

 

紅葉紛紛已滿庭 홍엽분분이만정

단풍잎 휘날려 뜰에 이미 가득한데

階前殘菊尙含馨 계전잔국상함형

섬돌 앞 시든 국화 여전히 향기롭네

山中百物渾衰謝 산중백물혼쇠사

산속 온갖 생물 모두가 시드는데

獨愛寒松歲暮靑 독애한송세모청

오직 찬 솔은 세모에도 푸르러서 좋네

 

*李彦迪(이언적, 1491~1553) :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이다. 좌찬성 겸 원상(院相)까지 지냈으나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강계(江界)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에 회재집이 있다.

 

仲冬夜聞雨聲 중동야문우성      丁壽崗 정수강

한겨울 밤에 빗소리를 듣다

 

不寐過三夜 불매과삼야

삼경이 지나도록 잠 못 드는데

愁從冷雨生 수종냉우생

찬 비 내리니 근심이 생겨나네

明朝看我鬢 명조간아빈

내일 아침 내 귀밑머리 쳐다보면

白雪幾添莖 백설기첨경

몇 가닥에 흰 눈이 더 내렸을까

 

*丁壽崗(정수강, 1454~1527) : 조선 전기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빙고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冬夜 동야      黃景仁 황경인

겨울밤

 

空堂夜深冷 공당야심냉

빈 집에 밤이 되니 더욱 서늘하여

欲掃庭中霜 욕소정중상

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보려 하니

掃霜難掃月 소상난소월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기 어려워

留取伴明光 유취반명광

달빛과 어우러지게 그냥 두었네

 

*黃景仁(황경인) : 중국 청나라 때의 시인. 자는 한용(漢鏞), 중측(仲則)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시문(詩文)을 배우면서 의지할 곳을 찾아 평생 방랑 생활을 하였다.

 

 

立冬日野外行吟 입동일야외행음      釋文珦 석문향

입동일에 야외에서 거닐며 시를 읊다

 

吟行不憚遙 음행불탄요

먼 길을 마다 않고 시 읊으며 가니

風景盡堪抄 풍경진감초

풍경을 모두 다 감상할 수 있구나

天水清相入 천수청상입

하늘과 물이 서로 맑게 섞이고

秋冬氣始交 추동기시교

가을 겨울 기운이 비로소 바뀌네

飲虹消海曲 음홍소해곡

무지개는 굽어져 바닷물을 마시고

宿雁下塘坳 숙안하당요

기러기는 연못에 내려앉아 머무네

歸去須乘月 귀거수승월

마땅히 달 뜰 때는 돌아가야 하니

松門許夜敲 송문허야고

소나무 문을 밤에 두드려도 된다네

 

*석문향(釋文珦, 1210~1290?)은 출가하여 동남방을 두루 돌아다닌 승려이다. 호는 잠산노수(潛山老叟)이고 문집 잠산집(潛山集)이 있다. 이 시는 자기처럼 승려였던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 777∼841)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퇴고(推敲)의 고사로 유명한 가도의 시 題李凝幽居(제이응유거)에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宿雁下塘坳(숙안하당요)와 松門許夜敲(송문허야고)는 여기서 차용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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