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시(田園詩)

草堂端居無事 (초당단거무사) - 李奎報(이규보)

-수헌- 2026. 1. 9. 17:30

辛酉五月 草堂端居無事 理園掃地之暇 讀杜詩 用成都草堂詩韻¹ 書閑適之樂 五首     李奎報 

신유오월 초당단거무사 이원소지지가 독두시 용성도초당시운 서한적지락 오수     이규보

신유년 오월 한가히 초당에서 지냈는데 밭매고 마당 쓰는 여가에 두시를 읽다가 성도초당시의 운에 따라 한적한 즐거움을 쓰다.

 

懶惰無心賦兩都² 나타무심부양도

게을러서 양도부를 지을 생각도 없는데

况堪著論效王符³ 황감저론효왕부

어찌 왕부를 본받아 잠부론을 짓겠는가

緬思潘閬三峯好⁴⁾ 면사반랑삼봉호

멀리는 삼봉을 즐기던 반랑을 생각하고

且任陳蕃一室蕪⁵⁾ 차임진번일실무

또 진번처럼 지저분한 집을 그냥 두려네

小塢移花邀客看 소오이화요객간

손님 청해 작은 언덕에 옮긴 꽃을 보고

比隣有酒遺兒沽 비린유주유아고

가까운 이웃에 아이를 보내 술을 사오네

何順點檢人間事 하순점검인간사

무엇하러 세상일을 좇으며 따지려 하나

出處悲歡命矣夫 출처비환명의부

가는 곳마다 애환이 사나이 운명인 것을

 

欲歸江郡詠汀蘋 욕귀강군영정빈

강마을로 돌아가 물가 마름을 읊고 싶어도

尙滯京華失鬢春 상체경화실빈춘

아직 서울에 남아 봄날 귀밑머리만 희었네

自號灌畦閑老圃 자호관휴한노포

밭에 물을 대며 스스로 농사꾼이라 하지만

皆呼傲世一高人⁶⁾ 개호오세일고인

남들은 세상을 업신여기는 고인이라 하네

談筵落屑空驚客⁷⁾ 담연락설공경객

끊임없는 담론에 손님들은 공연히 놀라고

睡榻鳴雷幾撼隣 수탑명뢰기감린

책상에서 졸다가 몇 번이나 코를 골았던가

酒渴時時須底物⁸⁾ 주갈시시수저물

술에 목마를 때마다 마땅히 필요한 사물은

櫻桃子熟摘嘗新 앵도자숙적상신

싱그럽게 잘 익은 앵두를 따 맛보는 거네

 

不把餘愚自汚溪⁹⁾ 불파여우자오계

내 어리석음이 시냇물 더럽히지 않으려고

幽棲粗免宦途迷 유서조면환도미

헤매던 벼슬길을 그만두고 숨어서 살았네

披襟快却風來北 피금쾌각풍래북

옷깃 헤치니 북에서 시원한 바람 불어오니

隱几從敎日向西 은궤종교일향서

안석에 기대 저무는 해의 가르침을 따르네

世味淺深曾染指 세미천심증염지

깊고 얕은 세상사 이치는 일찍이 겪었으니

人生得喪已忘蹄¹⁰⁾ 인생득상이망제

인생살이에서 얻고 잃는 것은 이미 잊었네

半窓林影搖森翠 반창임영요삼취

푸른 숲 그림자가 흔들려 창을 반쯤 여니

讀破書頭燕落泥 독파서두연락니

다 읽은 책 머리에 제비가 진흙을 떨구네

 

半捲疏簾獨倚欄 반권소렴독의란

성근 발을 반쯤 걷고 홀로 난간에 기대니

雨聲淙瀉劇驚湍 우성종사극경단

빗소리 속에 여울물이 소용돌이쳐 흐르네

橫雲尙自暗千陣 횡운상자암천진

겹겹이 빗겨 걸친 구름이 아직도 어두우니

落日不知餘幾竿 낙일부지여기간

지는 해는 몇 발이나 남았는지 모르겠구나

遇客只須浮大白¹¹ 우객지수부대백

손님 만나면 다만 큰 술잔 띄우면 되는데

學仙何苦鍊還丹 학선하고련환단

어찌 신선술 배우려 환단 굽는 고생 하나

爲言隣叟好來往 위언인수호래왕

이웃 노인에게 말하노니 즐겨 나다니면서

除却閑談逸老難 제각한담일로난

한담을 하지 못 하면 편히 늙기 어렵다오

 

古來達士貴知微¹² 고래달사귀지미

예로부터 통달한 선비는 기미를 안다는데

田園將蕪何日歸¹³ 전원장무하일귀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언제나 돌아가려나

莫問纍纍兼若若 막문류류겸약약

시시콜콜 계속 묻고 또 따져 묻지를 마라

不曾是是况非非 부증시시황비비

옳은 일 옳고 그른 일 그르다고 못하는데

墮車醉者只全酒 타거취자지전주

수레에서 떨어진 주정꾼은 술이 전부인데

抱甕丈人寧有機¹⁴⁾ 포옹장인영유기

독을 안은 장인이 어찌 기계를 쓰겠는가

禦寇南華如可作 어구남화여가작

열어구와 장자처럼 될 수만 있다면

吾將問道一摳衣 오장문도일구의

나 장차 옷깃을 여미고 도를 구하려 하네

 

※成都草堂詩(성도초당시)¹ : 두보(杜甫)가 만년에 성도(成都)에다 초당(草堂)을 짓고 4년을 보내며 240여 수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兩都賦(양도부)² : 양도(兩都)는 양도부(兩都賦)로, 한(漢) 나라 때 반고(班固)가 지은 동도부(東都賦)와 서도부(西都賦)를 말한다. 양도(兩都)에서 알 수 있듯이 한(漢) 나라의 두 도읍(都邑)인 서도(西都; 장안)와 동도(東都; 낙양)의 아름다움에 관해 읊은 부(賦)이다.

※王符(왕부)³ : 후한(後漢) 때의 철학가이자 정론가(政論家)로 은거(隱居)하면서 자신에 비겨 잠부론(潛夫論)을 저술하여 폐단(弊端)이 많은 정치(政治)를 논(論)하고, 당시(當時)의 사회(社會)와 정치(政治)를 비판(批判)하였다.

※緬思潘閬三峯好(면사반랑삼봉호)⁴⁾ : 반랑(潘閬)은 송(宋) 나라 때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능하였는데, 일찍이 화산(華山)의 삼봉(三峯)을 유람하였다 한다. 세상일 잊고 유람하면서 놀고 싶다는 의미이다.

※且任陳蕃一室蕪(차임진번일실무)⁵⁾ : 후한(後漢)의 정치인 진번(陳蕃)은 15세 때 한가히 지내며 집 안에 풀이 무성하여도 그대로 두었었다. 아버지의 벗 설근(薛勤)이 찾아와 ‘너는 어찌 뜰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손님을 맞지 않는가.’ 하니, ‘대장부가 세상을 살면서 마땅히 천하를 청소하여야지 한 집의 청소에 마음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했다.” 하였다. 큰 뜻을 지니고 싶다는 의미이다.

※高人(고인)⁶⁾ : 벼슬자리에 오르지 아니하고 고결(高潔)하게 사는 사람.

※談筵落屑(담연낙설)⁷⁾ : 아름다운 말이 마치 톱질할 때의 톱밥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의 호모보지(胡母輔之)라는 사람은 청담(淸淡)을 잘하여 톱질할 때 떨어지는 가루처럼 줄줄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한다.

※酒渴(주갈)⁸⁾ : 술 중독으로 인해 심하게 갈증을 느끼는 증상.

※不把餘愚自汚溪(불파여우자오계)⁹⁾ : 당나라의 유자후(柳子厚)가 영주(永州)에 귀양살이하면서 좋은 계곡(溪谷)을 발견하여 그 시내를 우계(愚溪)라 하고, 우계시서(愚溪詩序)를 지어서, ‘나의 어리석음으로 아름다운 시내를 욕되게 한다.’ 하였다.

※忘蹄(망제)¹⁰⁾ : 장자(莊子) 잡편 외물(雜篇外物)에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은 뒤에는 올가미를 잊고, 뜻을 이룬 뒤에는 말을 잊는다. [得魚忘筌 得兎忘蹄 得意忘言]’.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인생사(人生事)의 모든 득실을 잊었다는 의미이다.

※大白(대백)¹¹ : 큰 술잔. 대배(大杯)를 대백(大白), 소배(小杯)를 소백(小白)이라고 한다.

※知微(지미)¹² : 일의 아주 작은 징조나 미세한 차이, 즉 사물의 본질이나 근본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

※田園將蕪(전원장무)¹³ :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田園將蕪胡不歸]’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抱甕(포옹)¹⁴⁾ :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한 노인이 우물에 물동이를 들고 들어가 물을 담아서 밭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을 보고 ‘기계를 설치하여 두레박으로 물을 퍼내면 고생을 덜하고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니, 노인이 답하기를, ‘기계를 사용하면 기심(機心)이 생기고 기심이 생기면 본성이 안정을 잃는다. 본성이 안정을 잃으면 도가 깃들지 않는다.’ 하였다. 이에 연유하여 자연에 따르는 순박한 생활을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禦寇南華(어구남화)¹⁵⁾ : 어구(禦寇)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열자(列子) 불리는 열어구(列禦寇)를 말하고, 남화(南華)는 장자(莊子)를 말한다. 당나라 때 현종이 장자를 높이 평가하여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을 남긴 데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