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시(田園詩)

草堂端居 (초당단거) - 李奎報 (이규보)

-수헌- 2026. 1. 3. 16:24

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   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     李奎報   이규보 

초당에 고요히 거처하여 두자미의 신임초옥에 화운하다.

 

杜門無客到 두문무객도

문 닫으니 찾아오는 손님도 없어

煮茗與僧期 자명여승기

스님과 더불어 만나 차를 끓이고

荷耒且學圃 하뢰차학포

장차 쟁기를 메고 농사를 배워서

歸田當有時 귀전당유시

응당 전원에 돌아갈 때가 되었네

貧甘老去早 빈감로거조

가난해도 빨리 늙어감은 좋으나

閑厭日斜遲 한염일사지

한가한데 해가 더디 기움이 싫네

漸欲成衰病 점욕성쇠병

차차 쇠약해져 병이 들려 하지만

疏慵不啻玆 소용불시자

게으르고 느려서 뿐만은 아니네

 

寓興撫桐孫 우흥무동손

흥이 나면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虛心對竹君 허심대죽군

마음을 비우고 죽군을 마주하네

林深鴉哺子 임심아포자

깊은 숲에 까마귀가 새끼를 먹이고

園靜鳥呼群 원정조호군

고요한 동산에 새가 무리를 부르네

坐石吟移日 좌석음이일

바위에 앉아 해 기울도록 시를 읊고

開窓臥送雲 개창와송운

창을 열고 구름을 보내며 누웠더니

塵喧卽咫尺 진훤즉지척

티끌세상의 시끄러움이 지척이지만

閉戶不曾聞 폐호부증문

문 닫으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네

 

點點階苔紫 점점계태자

섬돌의 이끼는 점점 붉어지고

茸茸徑草青 용용경초청

길에는 무성한 풀이 푸르구나

殘生浮似夢 잔생부사몽

남은 생은 꿈처럼 부질없는데

破屋豁於亭 파옥활어정

정자보다 넓은 집이 무너졌네

不省空囊倒 불성공낭도

뒤집은 주머니 빈 것도 모르고

猶嫌一日醒 유혐일일성

오히려 하루라도 술 깨기 싫네

詩成誰復愛 시성수부애

시를 지어도 좋아할 이 없으니

自寫枕頭屏 자사침두병

스스로 베갯머리 병풍에 써야지

 

心已如焦榖 심이여초곡

내 마음은 이미 불탄 곡식 같아서

人誰射毒沙 인수사독사

어떤 사람이 독한 모래를 쏘아도

老於詩境界 노어시경계

시를 짓는 경계에서 늙어 가려고

謀却酒生涯 모각주생애

생애를 술이나 마시며 살려 하네

默笑觀時變 묵소관시변

변하는 시세를 보며 조용히 웃고

閑吟感物華 한음감물화

한가로이 읊으며 물화를 느끼네

在家堪作佛 재가감작불

집 안에 있어도 부처가 될터인데

靈運已忘家 영운이망가

사영운은 이미 집을 잊었구나

 

寧爲學稼老 영위학가노

편안히 농사 배우며 늙어 갈 망정

不作出貲郞 부작출자낭

돈으로 벼슬 사는 사람 되지 않으리

賦食籠狙類 부식농저류

먹이를 나눠 주며 원숭이를 기르고

忘機入鳥行 망기입조행

기심을 버리고 새들에게 들어가려네

深藏玉自貴 심장옥자귀

깊이 감추어진 옥이 절로 소중한데

不採蘭何傷 불채난하상

캐지 않는다고 난초가 어찌 슬플까

獨喜童烏輩 독희동오배

오직 기뻐하는 건 총명한 아이들이

蹁躚繞我床 편선요아상

춤을 추며 내 평상을 두른 것이네

 

※桐孫(동손) : 오동나무의 손자 가지[孫枝]. 오동나무 가지에서 다시 생겨난 가지를 말한다. 오동나무 중에서도 재질이 가장 좋아 훌륭한 자손들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동손으로 만든 거문고를 의미한다.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시 영수(咏樹)에 ‘단풍 씨앗 남겨 두어 법식을 삼고, 동손은 거문고 만들 때를 기다리리. 〔楓子留爲式 桐孫待作琴.〕’라는 구절이 있다.

※竹君(죽군) : 대나무를 의인화한 시어(詩語)이나, 붓[筆]이나 피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焦榖(초곡) : 불에 탄 곡식[焦穀]은 싹이 날 수 없으니 마음의 열정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人誰射毒沙(인수사독사) : 물여우라는 해충[蜮]은 물가에서 독한 모래를 입에 물고 사람에게 쏘는데, 맞으면 부스럼이 나고 병이 난다고 한다. 이는 남을 음해(陰害) 중상(中傷)하는 데 비유한 것으로, 누가 나를 음해하더라도 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物華(물화) :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自然界)의 아름다운 현상(現象). 아름다운 경물(景物).

※在家堪作佛(재가감작불) 靈運已忘家(영운이망가) : 영운(靈運)은 송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을 말하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사영운(謝靈運)이 불교에 심취하여 집을 잊었다는 의미이다.

※出貲郞(출자랑) :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사람.

※忘機入鳥行(망기입조행) : 망기(忘機)는 기심(機心)을 잊는다는 뜻이다. 기심(機心)은 사적(私的)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묘하게 도모하는 마음을 말한다. 옛날 바닷가에 살던 사람이 갈매기를 아주 좋아하여 매일 바닷가로 나가서 갈매기와 놀았는데, 한 번은 그의 아비가 ‘갈매기를 잡아 오라’ 하였다. 다음 날 다시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사람의 교사한 마음[機心]을 알아채고 공중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내려오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童烏(동오) : 총명한 아이, 영민한 아이. 양자운(揚子雲)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때 아홉 살 난 그의 아들 오(烏)가 같이 거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