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灣大雪後 書茅亭壁五首 錄上弼雲相公 용만대설후 서모정벽오수 녹상필운상공 李廷龜 이정구
용만에 큰 눈이 내린 뒤 초가 정자 벽에 다섯 수를 적고, 이 시들을 베껴서 필운 상공께 바쳤다.
塞垣寒日下平沙 새원한일하평사
변방의 찬 햇살 평평한 백사장에 내려앉고
暮雪蕭蕭已滿蓑 모설소소이만사
저물녘 소슬한 눈발 도롱이에 가득 쌓이네
冪地頑雲凝不捲 멱지완운응불권
땅을 덮은 짙은 구름은 엉기어 걷히지 않고
漫天狂絮浩無涯 만천광서호무애
하늘 가득 어지러운 눈발은 끝없이 드넓네
輕飄卷裏添詩興 경표권리첨시흥
가벼이 나부껴서 책 속에다 시흥을 보태고
巧上簪端作鬢華 교상잠단작빈화
비녀 위에 아름답게 올라 흰머리털이 되네
却怕銀河氷便合 각파은하빙편합
걱정스러운 것은 은하수의 물이 얼어붙어서
九霄迢遆阻星槎 구소초체조성사
아득히 먼 하늘로 뗏목이 오르지 못할까네
天工作意發陰機 천공작의발음기
하늘이 마음먹은 대로 음기를 일으켜서
幻出繁華辦一奇 환출번화판일기
경치를 화려하게 바꿔 기이하게 펼치니
却見盈虛消息處 각견영허소식처
도리어 영허소식하는 곳을 보게 되어
還如開闢混濛時 환여개벽혼몽시
오히려 개벽 혼몽하던 태초와 같구나
可憐窮海魚龍冷 가련궁해어룡냉
외진 바다 어룡들도 추위에 가련한데
休歎空林鳥雀飢 휴탄공림조작기
빈 숲의 새가 굶는다고 탄식하지 말게
湯餠地爐消永夜 탕병지로소영야
뜨거운 국수와 모닥불로 긴 밤 보내며
十分佳事更新詩 십분가사경신시
새로 시를 지으니 충분히 좋은 일이네
應是崑岡玉石焚 응시곤강옥석분
응당 곤륜산의 옥석이 함께 불에 타서
瓊灰瑤燼滿乾坤 경회요신만건곤
고운 옥의 잿가루가 천지간에 가득하니
飄零似趁梅花約 표령사진매화약
매화와 만날 약속 지키듯 조용히 날고
輕薄還欺柳絮魂 경박환기류서혼
가볍게 날려서 버들 솜인 줄 속겠구나
半夜奇功收蔡窟 반야기공수채굴
채굴을 함락은 한밤의 빼어난 공이었고
一篇新製憶梁園 일편신제억양원
양원을 생각하며 시 한 편 새로 지었네
山陰載酒堪乘興 산음재주감승흥
흥이 일면 술을 싣고 산음에 갈만하니
寧學袁安但閉門 영학원안단폐문
문 닫고 누운 원안의 뜻을 어찌 배울까
幻盡塵區作別區 환진진구작별구
티끌세상이 모두 변하여 별천지로 만드니
玲瓏珠樹耀淸都 영롱주수요청도
영롱한 구슬 나무들이 청도를 빛내는구나
驅除雲日埋光彩 구제운일매광채
구름이 해를 내몰아서 광채를 묻어 놓고
粧點河山入畫圖 장점하산입화도
강과 산을 곱게 꾸며 그림 속에 넣었구나
馬耳雙尖看突兀 마이쌍첨간돌올
뾰족한 한 쌍의 말 귀가 오뚝하게 보이고
羊腸千曲失崎嶇 양장천곡실기구
양장 같은 천 굽이 험한 산길은 사라졌네
胸中洗盡三生累 흉중세진삼생누
가슴속 삼생의 번뇌를 모두 씻어내었으니
瑩徹靈臺一點無 영철영대일점무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티끌 한 점 없구나
<馬耳 山名 在鎭江 마이 산명 재진강
마이는 산 이름으로, 진강에 있다.>
淸齋孤坐凍生甁 청재고좌동생병
깨끗한 방에 홀로 앉았으니 병에 얼음이 얼고
靜夜寒聲入小屛 정야한성입소병
고요한 밤 찬바람 소리 작은 병풍에 들어와도
不怕嚴威欺病骨 불파엄위기병골
맹렬한 위세가 병든 몸을 깔봐도 두렵지 않고
且欣疎響愜幽聽 차흔소향협유청
성근 그 소리가 그윽하고 듣기 좋아 기쁘구나
燈明半壁詩初就 등명반벽시초취
한쪽 벽 밝힌 등잔불 아래 시를 막 지어내고
脚冷重衾夢易醒 각냉중금몽이성
두꺼운 이불 속 다리가 추워 꿈을 쉽게 깨네
白戰千秋傳勝事 백전천추전승사
백전이라는 천추에 멋진 일이 전해 내려오니
高風堪繼聚星亭 고풍감계취성정
취성정에서의 그 높은 풍류를 이을만하구나
※龍灣(용만) : 평안북도 의주시의 옛 별호.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용만관(龍灣館)이 있었다.
※弼雲相公(필운상공) : 필운(弼雲)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인 이항복(李恒福,1556~1618)을 말한다.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 백사(白沙) 동강(東岡).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군(封君)되어 이항복이나 백사보다는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항복(李恒福)이 우의정을 지냈기에 필운상공(弼雲相公)이라고 하였다.
※九霄迢遆阻星槎(구소초체조성사) : 뗏목[槎]은 한(漢) 나라 장건(張騫)이 월지국(月氏國)으로 사신으로 갈 때 뗏목을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거슬러 오른 것에 비유하여 사신으로 감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중국으로 사신 가는 것을 뗏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에 비유하였다.
※陰機(음기) : 음(陰)의 가운을 만드는 기교. 천기(天氣)를 음양(陰陽) 두 기운으로 나누었을 때,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씨는 음기(陰氣)에 해당하므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즉 눈을 내리게 했다는 의미이다.
※盈虛消息(영허소식) : 영허는 성쇠(盛衰)의 뜻이고, 소식은 진퇴(進退)의 뜻이다. 즉 눈이 내려 천지를 비어있는 듯 채운 상태를 비유한 듯하다.
※開闢混濛(개벽혼몽) : 혼몽(混濛)은 우주가 생기기 전의 혼돈 세계(混沌世界)를 뜻한다.
※應是崑岡玉石焚(응시곤강옥석분) 瓊灰瑤燼滿乾坤(경회요신만건곤) : 서경(書經) 윤정(胤征)에 ‘곤륜산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모두 타버린다. [火炎崑岡 玉石俱焚]’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귀한 옥(玉)과 쓸모없는 돌[石], 즉 선악(善惡)이 함께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눈[雪]을 옥이 타고 남은 재[瓊灰瑤燼]에 비유하여 천지의 선악(善惡)을 덮어 모두 가렸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半夜奇功收蔡窟(반야기공수채굴) : 당(唐) 나라의 재상 배도(裴度)가 채주(蔡州)의 적도(賊徒)들을 토벌할 때 장수 이소(李愬)가 큰 눈이 내리던 날 한밤에 채주를 기습하여 성문을 깨뜨리고, 괴수 오원제(吳元濟)와 그 부하들을 사로잡은 고사를 말한다.
※一篇新製憶梁園(일편신제억양원) : 양원(梁園)은 서한(西漢) 양 효왕(梁孝王)이 조성한 매우 크고 호사스러운 원림(園林)이었다. 진(晉) 나라 사혜련(謝惠連)이 설부(雪賦)를 지어 양 효왕이 이곳에서 당대의 문사들과 함께 주연(酒筵)을 베풀고 놀며, 눈이 오자 흥에 겨워 시를 주고받았던 고사를 노래하였다.
※山陰載酒堪乘興(산음재주감승흥) : 진(晉)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눈이 내리는 밤 흥에 겨워 배를 저어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그의 문전에서 되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乘興而行 興盡而返]’고 한 고사를 인용하였다.
※寧學袁安但閉門(영학원안단폐문) : 후한(後漢) 때 낙양(洛陽)에 폭설(暴雪)이 내려 집집마다 사람들이 눈을 치우러 나오고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 낙양 영(洛陽令)이 성안을 시찰하다가 원안(袁安)의 집에 이르러 차가운 방 안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를 보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는 판인데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옳지 않다. [大雪人皆餓 不宜干人]’ 하였다. 이에 낙양 영(洛陽令)이 원안(袁安) 어질다고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다.
※玲瓏珠樹耀淸都(영롱주수요청도) : 주수(珠樹)는 삼주수(三珠樹)로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신선 세계의 나무인데, 잣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잎이 전부 구슬로 되어 있다고 한다. 청도(淸都)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전이다. 여기서는 눈이 내린 풍경을 천상의 세계에 비유하였다.
※三生累(삼생누) : 삼생(三生)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상인 전생(前生)과 현생(現生) 후생(後生)의 총칭이다.
※靈臺(영대) : 신령(神靈)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白戰(백전) : 백전(白戰)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백전시(白戰詩)는 특정한 어휘의 구사를 금하고 시를 짓게 했던 격식을 말한다. 백전(白戰)은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소설(小雪)에 취성당(聚星堂)에서 주연을 베풀고, 눈[雪]에 대한 시를 지으며 눈과 관련이 있는 학(鶴) 호(皓) 소(素) 은(銀) 이(梨) 매(梅) 로(鷺) 염(鹽) 등의 어휘의 사용을 금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뒤에 소식(蘇軾)이 빈객들과 함께 이를 회상하며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시 가운데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 준수하라. 맨손으로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안 되네. [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라는 구절이 있다.
*이정구(李廷龜, 1564~1635) : 조선 중기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문신. 자는 성징(聖澂) 호는 월사(月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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