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秋懷 二十六韻 (추회 이십륙운) - 李荇 (이행)

-수헌- 2025. 11. 19. 10:48

秋懷 二十六韻   추회 이십륙운     李荇   이행  

가을 회포 26운

 

憔悴三遷客 초췌삼천객

세 차례 귀양살이에 초췌한 나그네

淹留萬里心 엄류만리심

마음은 만리타향에 오래 머물렀네

南溟時弔影¹ 남명시조영

남해 가에서 때로 외로이 지내면서

北斗屢沾襟 북두누첨금

북두성을 보며 자주 옷깃을 적시네

名位平生誤 명위평생오

명예와 지위가 평생을 그르쳤어도

文章夙昔欽 문장숙석흠

문장은 일찍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忽辭丹禁直² 홀사단금직

홀연히 대궐을 하직하고 떠나오니

誰試白頭吟³ 수시백두음

누가 백두음을 불러볼 수 있을까

按劍驚山立⁴⁾ 안검경산립

우뚝 선 산에 놀라서 칼을 잡고

懷珠信陸沈⁵⁾ 회주신육침

구슬을 품고서 세상에 숨어 사는데

艱難知自古 간난지자고

간난은 예부터 있어 온 줄 알지만

意氣見於今 의기견어금

의기는 오늘날에야 보게 되는구나

骨肉分離極 골육분리극

가까운 혈육들은 멀리 헤어져 있고

朝廷隔絶深 조정격절심

조정은 까마득히 멀리 떨어졌는데

西風高樹響 서풍고수향

가을바람이 높은 나무를 울려 대고

落日遠村陰 낙일원촌음

해 떨어지는 먼 촌락은 어두워지네

海送初弦月⁶⁾ 해송초현월

바다로 초승달을 보내기 시작하고

天收半夏霖 천수반하림

하늘이 여름 장마 반을 거둘 때면

燈前挑錦字⁷⁾ 등전도금자

등잔 앞에서 비단에 글자를 수놓고

露下拭淸砧⁸⁾ 노하식청침

이슬 내리면 다듬잇돌을 닦으리라

想得愁如許 상득수여허

생각해 보니 시름이 이와 같아서

遙憐病不任 요련병불임

가련하게 병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頗能親井臼 파능친정구

물 긷고 절구질은 잘할 수 있으니

猶欲老山林⁹⁾ 유욕노산림

오히려 산림으로 늙어가고 싶구나

寶氣豐城劍¹⁰⁾ 보기풍성검

풍성검의 기운은 보배롭기만 하고

希聲太古琴 희성태고금

태고의 거문고 소리는 듣기 드문데

神期終浩浩 신기종호호

이내 정신은 언제나 호연히 넓지만

俗物謾駸駸 속물만침침

속물처럼 부질없이 바쁘게 날뛰었네

百謫安吾分¹¹ 백적안오분

여러 번 견책은 나의 분수라 여기고

三緘闕自箴¹² 삼함궐자잠

말조심하며 스스로 허물을 경계했네

弊袍仍舊制 폐포잉구제

도포는 옛날에 만들어져서 해어지고

荒語慣新音 황어관신음

새로운 말은 거친 말에 익숙해지네

詩就還孤詠 시취환고영

시를 다 지어도 오히려 혼자서 읊고

尊傾或淺斟 존경혹천짐

간혹 술이 적어 술동이를 기울이네

憂來頻杖屨¹³ 우래빈장구

근심이 생기면 자주 밖으로 나가고

興盡強登臨 흥진강등림

흥이 다하면 억지로 높은 데 오르네

熠燿光應冷¹⁴⁾ 습요광응랭

반짝이는 반딧불은 응당 차갑겠지만

蜩蟬舌未瘖 조선설미음

매미의 혀는 아직 벙어리가 아니네

野禾披綺繡 야화피기수

들판의 벼는 비단을 수놓듯 펼쳤고

澗水戛球琳 간수알구림

여울의 물은 옥구슬 굴리듯 흐르네

漸惜芳華晩 점석방화만

늦게 피는 꽃이 점점 애처로워져서

寧虞瘴癘侵 영우장려침

차라리 풍토병이 침범할까 근심하며

兢兢氷在抱 긍긍빙재포

얼음을 안고 있듯 조심하고 주의해도

颯颯雪蒙簪 삽삽설몽잠

스산한 바람에 비녀에 눈이 덮였구나

執友嗟何在¹⁵⁾ 집우차하재

나의 벗들이 어디에 있는지 탄식하며

田廬更可尋 전려갱가심

시골집을 다시 찾는 것이 옳지만

退藏迷兎窟¹⁶⁾ 퇴장미토굴

물러나 은거하자니 토끼 굴을 모르니

假息仰牛涔¹⁷⁾ 가식앙우잠

우잠에 의지하여 목숨만 잇고 있네

徑沒陶潛菊¹⁸⁾ 경몰도잠국

길은 온통 도잠의 국화로 덮여있는데

囊無季子金¹⁹⁾ 낭무계자금

전대 속에는 계자처럼 돈이 없으니

有身從餓死 유신종아사

이 몸은 굶어 죽으려고 하여

爲問首陽岑 위문수양잠

수양산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네

 

※南溟時弔影(남명시조영)¹ : 남명(南溟)은 장자(莊子)에서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붕새가 되어 9만 리 장천을 날아 남명(南溟; 남쪽 큰 바다)으로 간다고 한 데서 유래하여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하고, 조영(弔影)은 자기 그림자를 조상한다는 의미로 의지할 데 없이 홀로 외로이 사는 것을 말한다. 용재(容齋) 이행(李荇)은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거제도에 귀양 간 적이 있다.

※丹禁(단금)² : 단금(丹禁)은 붉은색으로 장식한 금원(禁苑)이라는 뜻으로 황제의 거처를 말한다.

※白頭吟(백두음)³ : 버림받은 여인이 이별을 슬퍼하며 부르는 노래로, 보통 헤어지는 섭섭한 감정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부인 탁문군(卓文君)은 사마상여가 무릉(武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원망하며 지은 곡으로 그 내용에 ‘원컨대 한마음의 사람을 얻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서로 떠나지 않으리. [願得一心人 白頭不相離]’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마상여는 이 노래를 듣고 무릉의 여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按劍驚山立(안검경산립)⁴⁾ : 안검(按劍)은 까닭 없이 놀라며 경계한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명월주나 야광벽 같은 보물을 길 가는 사람에게 몰래 던져 주면,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까닭 없이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明月之珠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劒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懷珠信陸沈(회주신육침)⁵⁾ : 회주(懷珠)는 훌륭한 재주와 덕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바위가 옥을 품으면 산이 빛나고, 물이 구슬을 품으면 시내가 아름답다. [石韞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곧 뛰어난 재능을 품고서 뜻을 펴지 못한 채 세상에 숨어 산다는 뜻이다.

※海送初弦月(해송초현월)⁶⁾ : 초승달은 저녁 무렵에 서쪽 하늘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따라서 쓸쓸한 가을밤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挑錦字(도금자)⁷⁾ :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뜻한다. 동진(東晉) 때, 진주 자사(秦州刺史)를 지낸 두도(竇滔)에게는 재주 많고 덕이 있는 아내 소혜(蘇蕙)와 조양대(趙陽臺)라는 총희(寵姬)가 있었는데, 훗날 두도는 좌천되어 서역(西域)으로 가면서, 총희 조양대만 데리고 갔다. 임지에 간 두도가 점차로 아내를 잊게 되자, 두도의 아내 소혜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회문시(回文詩)를 지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가로세로 8치의 비단에 글자를 짜 넣어 두도에게 보냈는데, 두도는 이 시를 읽고 크게 감동하여 곧 조양대(趙陽臺)를 돌려보내고 예의를 갖춰 아내를 데려왔다 한다.

※露下拭淸砧(노하식청침)⁸⁾ : 가을이 되니 변방으로 나간 남편이 추위에 떨까 봐 옷을 장만하는 아낙의 마음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 도의(擣衣)에, ‘수자리 나간 남편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아, 가을이 오니 다듬잇돌을 닦네. [亦知戍不返 秋至拭淸砧]’라 한 데서 인용하였다.

※山林(산림)⁹⁾ : 학식(學識)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숨어 지내는 선비.

※豐城劍(풍성검)¹⁰⁾ : 진(晉) 나라 뇌환(雷煥)이 얻었다는 용천(龍泉), 태아(太阿)의 두 보검을 말한다. 진 나라 때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천문을 보니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붉은 기운이 뻗쳤는데, 뇌환이 이것이 보검의 기운이 땅에서 올라간 것임을 알고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던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百謫(백적)¹¹ : 관직에 매이는 일이 없이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백적(百讁)은 한(漢) 나라 때 관리가 여러 번 견책을 받으면 면직되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三緘(삼함)¹² : 입을 세 겹으로 꿰맨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주(周) 나라 태묘(太廟)에 갔을 때 쇠로 만든 사람〔金人〕의 입을 세 겹으로 꿰맨〔三緘其口〕 것을 보았는데, 그 등 뒤에 새긴 명문(銘文)에 ‘옛날에 말조심을 하던 사람이다. 경계하여 많은 말을 하지 말지어다. 말이 많으면 실패가 또한 많으니라. 〔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라고 되어 있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杖屨(장구)¹³ : 지팡이와 짚신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집 밖으로 나감을 의미한다.

※熠燿(습요)¹⁴⁾ : 빛이 반짝거리는 모양. 도깨비불이 번득이는 모양. 반딧불.

※執友(집우)¹⁵⁾ : 뜻을 같이하는 벗을 이르는 말.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주에 ‘집우는 뜻을 같이하는 자이다. 같은 스승을 섬기는 벗은 가지고 있는 뜻이 같다. 그러므로 집우라고 하는 것이다.’ 한 데서 유래한다.

※兎窟(토굴)¹⁶⁾ : 교토삼굴(狡免三窟)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살 길을 도모하는 수단을 뜻한다. 전국 시대 풍훤(馮諼)이 맹상군(孟嘗君)에게, ‘꽤 많은 토끼는 세 굴을 파두어 근근이 죽음을 면하는데, 지금 주군(主君)께서는 굴이 하나밖에 없으니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울 수 없습니다. 주군을 위하여 두 개의 굴을 더 팔까 합니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假息仰牛涔(假息仰牛涔)¹⁷⁾ : 가식(假息)은 숨을 할딱거리며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모양을 말한다. 우잠(牛涔)은 소 발자국에 괸 물이라는 뜻으로 좁고 협소한 것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사론훈(汜論訓)에, ‘소의 발자국에 괸 물에는 미꾸라지조차 살 수 없다.’ 하였다.

※徑沒陶潛菊(경몰도잠국)¹⁸⁾ : 길에 만발한 국화를 보고 술 생각이 난다는 의미이다. 도잠(陶潛)이 중양일에 술이 없어 집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를 따 가지고 앉았으니, 잠시 뒤에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백의 입은 사자를 시켜 술을 보내와서, 그 자리에서 그 술을 마시고 취하여 돌아왔다는 데서 온 말이다. 또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는 구절이 있다.

※囊無季子金(낭무계자금)¹⁹⁾ : 계자(季子)는 전국 시대 소진(蘇秦)의 자(字)이다. 소진이 합종책(合從策)으로 육국의 재상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니, 과거 불우한 시절 자기를 멸시하였던 형수가 감히 눈을 바로 뜨고 바라보지 못하였다. 이에 소진이 그의 형수에게 ‘어찌하여 전에는 거만하더니 지금은 공손하시오?’ 하자, 형수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댄 채 ‘계자께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李荇(이행, 1478~1534) : 조선 전기 우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창택어수(滄澤漁水) 청학도인(靑鶴道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