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穀雨와 茶 (곡우와 차) 5 - 李奎報 (이규보)

-수헌- 2025. 4. 18. 23:04

房狀元衍寶見和 次韻答之   방장원연보견화 차운답지     李奎報   이규보 

장원 방연보가 보고 화답 시를 보내왔기에 차운하여 화답하다.

 

居士年來了萬緣 거사연래요만연

거사께서 근년 들어 모든 인연 끊었는데

唯有詩狂餘習유유시광여습기

오직 시에 미치는 버릇만은 남아 있구나

物或不類尋常看 물혹불류심상간

사물에는 예사로 보지 못할 것도 있으나

窮搜細剖狀其 궁수세부장기이

세밀히 분석하여 기이함을 모두 찾았네

此茶品絶可無詩 차차품절가무시

이 차가 고급품인데 어찌 시가 없을까

況復平生素酷황부평생소혹기

하물며 평생에 가장 좋아하던 것임 이랴

悠然到此誰所餉 유연도차수소향

멀리서 누가 보내서 여기에 도달했을까

想自江淮煙瘴 상자강회연장리

아마도 안개 자욱한 강회에서 왔으리라

爲恐淸香先發洩 위공청향선발설

맑은 향기가 먼저 새어나갈까 두려워서

牢繅縹箱纏紫 뇌소표상전자류

자줏빛 실로 묶어서 상자 속에 넣어두고

祕之不敢示情親 비지불감시정친

숨겨서 정든 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碌碌何曾數餘 녹록하증수여자

평범한 나머지 사람들이야 말할 게 있나

寓心獨待識茶人 우심독대식다인

마음속으로 차를 아는 사람 기다렸으나

不是風斤誰斲 불시풍근수착비

지기가 아니라면 뉘라서 믿고 알아줄까

碎鐺撲火久不煎 쇄당박화구부전

깨진 솥에 불도 꺼져 오래 끓지 않으니

正怯兒曹輕品 정겁아조경품미

아이들이 경솔하게 맛을 볼까 염려했네

譬如富貴深閨中 비여부귀심규중

비유하자면 부귀한 집 규중 깊은 곳에서

養得嬌姹鴉頭 양득교차아두치

어여쁘고 어린 소녀를 기르듯이 하면서

眼高深恐嫁凡婿 안고심공가범서

눈 높아 평범한 신랑에 시집갈까 두려워

着意東床期欲 착의동상기욕치

동상의 좋은 낭군 만나기를 생각하였네

我今何者敢來試 아금하자감래시

지금 와서 내 차 맛을 볼 사람 누구일까

意外忽逢仙分 의외홀봉선분지

신선 같은 인연으로 뜻밖에 만난 분이네

房公落落天上人 방공낙락천상인

방공은 어엿한 하늘 위에서 온 사람이라

<房爲內侍 방위내시

방공이 이때 내시로 있었다.>

褚裒皮裏陽秋저부피리양추비

저부처럼 가슴속에 춘추의 의리 갖추었네

評人餘論移於茶 평인여논이어차

인물을 평하다가 차로 논의를 옮기면서

說脈論源聊見 설맥논원료견기

생각해 낸 내력을 설파하여 보내왔구나

讀了冷冷洗煩悶 독료냉랭세번민

읽고 나니 모든 번민이 말끔히 씻겨지고

恰如醉面洒寒 흡여취면쇄한수

마치 취한 얼굴에 찬물을 뿌린 듯하구나

對茶索酒頗似狂 대차색주파사광

차 마주하고 술 찾는 게 미치광이 같으니

可笑前言眞戲 가소전언진희이

먼저 한 말이 참으로 장난 같아 우습구나

草庵他日叩禪居 초암타일고선거

다른 날에 참선하는 암자를 찾아가서

數卷玄書討深 수권현서토심지

몇 권 책을 펼쳐놓고 깊은 뜻을 토론하리

雖老猶堪手汲泉 수로유감수급천

비록 늙었으나 아직 물은 길을 수 있으니

一甌卽是參禪 일구즉시참선시

한 사발 물 떠 놓고 참선이나 할까 하네

 

※不是風斤誰斲鼻(불시풍근수착비) : 풍근(風斤)은 바람 소리 나는 도끼질이라는 뜻이나 전하여 서로 믿고 잘 통하는 상대, 즉 지기(知己)를 뜻한다, 춘추 시대 초(楚) 나라 영(郢) 땅의 사람이 백토를 코끝에 매미 날개만큼 엷게 바르고 장석(匠石)이라는 목수에게 깎으라 하니, 장석(匠石)이 바람을 내며 도끼를 휘둘러 백토만을 깎고 코는 상하지 않았다. 영(郢) 사람도 장석(匠石)을 믿고 선 채로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嬌姹鴉頭稚(교차아두치) : 아두(鴉頭)는 검은 머리라는 뜻이고, 치(稚)는 어리다는 뜻이니 젊고 아름다운 소녀라는 의미이다.

※東床(동상) : 동상쾌서(東床快婿)에서 온 말로 훌륭하고 이상적인 사위를 말한다. 진(晉) 나라의 극감(郄鑒)이 왕도(王導)의 문하(門下)에서 사윗감을 고르려고 문생(門生)을 왕 씨 문중(王氏門中)에 보냈는데, 문생(門生)이 돌아와서 '왕도의 다른 제자들은 잘 보이려고 점잔을 빼고 있었으나 그중 유독 한 사람만이 동상(東床)에 태연히 배를 깔고 엎드려 음식을 먹고 있더라' 고 보고하였다. 극감(郄鑒)은 그 사람됨을 알아보고 사위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왕희지(王羲之)였다.

※內侍(내시) : 고려 시대,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원.

※褚裒皮裏陽秋備(저부피리양추비) : 저부(褚裒)는 진(晉) 나라 때 명신(名臣)이다. 자(字)는 계야(季野). 젊어서부터 고귀한 풍모를 지녀, 강동에서 이름을 날렸다. 초(楚) 나라 출신의 명사인 환이(桓彝)의 말에 ‘계야(季野)는 가슴속에 춘추(春秋)의 의리가 있다.’ 하였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피리춘추(皮裏春秋)로, 겉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도 속으로는 따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피리양추(皮裏陽秋)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