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咸山舘觀燈行 (함산관관등행) - 李南珪 (이남규)

-수헌- 2023. 5. 23. 15:08

咸山舘觀燈行   함산관관등행      李南珪 이남규  

함산관에서 관등을 하다

 

四月八日浴佛辰 사월팔일욕불진

관불의식 거행하는 때인 사월 초파일의

東俗燃燈似上元 동속연등사상원

우리의 연등 풍속이 상원놀이와 같구나

古來咸關擅繁華 고래함관천번화

옛날부터 함관은 번화한 곳을 차지하여

環城內外萬餘家 환성내외만여가

성 안팎에 일만여 가구가 둘러 있었네

家家蠟炬明如晝 가가랍거명여주

집집마다 촛불을 켜서 밝기가 대낮 같고

疊山層棚堆錦繡 첩산층붕퇴금수

산등성이에 비단 수처럼 겹겹이 걸었네

朶朶春林綴新葩 타타춘림철신파

봄 숲에 꽃처럼 달려서 가지 늘어지고

點點晴旻排列宿 점점청민배렬숙

맑은 하늘에 별처럼 점점이 늘어섰네

縱橫聯絡十數里 종횡련락십수리

가로 세로 이어지며 십 여리나 되니

士女匝沓曳珠履 사녀잡답예주리

남녀들이 구슬 신을 끌며 돌아다니네

今夜雨收雲霧開 금야우수운무개

오늘 밤은 비도 개고 운무도 걷혀서

碧空掛出弦月來 벽공괘출현월래

푸른 하늘에 상현달이 떠서 걸려있네

風流刺史裘帶閑 풍류자사구대한

사또님도 의대를 매고 풍류를 즐기고

畵欄飛出綠陰間 화란비출록음간

채색 난간이 녹음 사이로 날아 나오네

紅露灩瀲琉璃椀 홍로염렴류리완

유리 사발 가득 홍로주가 넘쳐흐르고

曼歌輕舞雜絃管 만가경무잡현관

풍악에 섞인 가벼운 춤이 아름답구나

歡樂未央夜向闌 환락미앙야향란

환락은 끝나지 않고 밤은 깊어 가는데

嘯咏不許賓僚散 소영불허빈료산

손님들 헤어지지 못해 시를 읊는구나

玆意豈亶供笑噱 자의기단공소갹

이 풍경이 어찌 크게 웃을 일일 까만

眞要宣恩與民樂 진요선은여민악

진정 은혜 베풀어 백성과 함께 즐겼네

永興小吏拙且憃 영흥소리졸차창

영흥의 관리가 서투르고 어리석었다면

未敢輕挑庫油封 미감경도고유봉

봉고한 기름을 감히 쓰지 못했으리라

<余在郡 禁吏民放燈 故反用蔡君謨守永興時 取用城庫貯油故事

여재군 금리민방등 고반용채군모수영흥시 취용성고저유고사>

<내가 군(郡)에 있을 때 이민(吏民)의 등 다는 것을 금했는데, 반대로 채군모가 영흥 수령으로 있을 때, 성안의 창고에 비축한 기름을 사용한 옛일을 말한 것이다.>

重公折簡來與席 중공절간래여석

공의 편지를 중히 여겨 와서 자리 함께하니

都城舊俗塞外覿 도성구속새외적

도성의 옛 풍습을 변방에서도 보게 되는구나

恭憶鳳輦御端門 공억봉련어단문

임금의 수레가 궁문에 납신 때를 생각하니

昇平一曲萬衆歡 승평일곡만중환

승평곡 한 곡조에 온 대중이 환호했었네

玩戱由來非美事 완희유래비미사

놀이의 유래는 아름다운 일이 아니어서

子瞻論狀令人愧 자첨론상령인괴

소동파의 논장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네

更堪近日狂塵囂 경감근일광진효

더구나 요즘 미친 듯 세상이 시끄러우니

豊豫不見見蕭條 풍예불견견소조

풍예는 보이지 않고 쓸쓸함만 보이는구나

且聞福州陳季慈 차문복주진계자

또 들으니 송나라 때 복주의 진계자는

一詩規諷蔡太師 일시규풍채태사

시로써 채태사에게 바르게 충고했는데

太師見之爲幡然 태사견지위번연

채태사가 이를 보고 단번에 깨달으니

至今兩美簡策傳 지금량미간책전

두 사람의 좋은 글이 지금까지 전하네

願佐聖人調玉燭 원좌성인조옥촉

원컨대 성인을 도와 밝은 세상 만들어

亟回光明照蔀屋 극회광명조부옥

자비가 돌아 광명이 백성들을 비췄으면

廓掃氛穢淸區宇 곽소분예청구우

온 세상의 나쁜 기운 깨끗이 청소하고

烟火處處歌豊熟 연화처처가풍숙

곳곳에 풍년가에 밥 짓는 연기 오르고

此時通也亦受賜 차시통야역수사

이런 시절 또한 임금님 은혜가 미쳐서

篝燈讀書樂且足 구등독서악차족

등불 켜고 글 읽으니 즐거움이 족하리

 

※灌佛(관불) :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의미로 아기부처님 불상을 불단 앞에 모셔놓고 불상의 머리에 감로수를 3번에 나누어 흘리면서 아기부처님을 씻겨드리는 의식을 말한다.

 

※東俗燃燈似上元(동속연등사상원) : 우리나라에서 초파일 날 하는 연등행사를 옛날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하였다는 말이다.

 

※豊豫(풍예) : 주역(周易) 64괘(卦)의 55번째인 풍괘(豐卦)와 16번째인 예괘(豫卦). 풍형예대(豊亨豫大). 풍괘(豐卦)는 성대함을, 예괘(豫卦)는 기쁨을 상징하는 괘인데, 풍성하고 안락하여 태평함을 뜻한다.

 

※陳季慈(진계자) : 북송 시대 복주(福州) 출신으로 국자직강(國子直講)을 지낸 진열(陳烈). 당시 복주태수(福州太守)인 유근(劉瑾)이 백성들을 수탈했는데, 원소절(原宵節;정월 대보름)을 맞아 빈부에 관계없이 등롱(燈籠)을 10개씩 바치도록 하였다. 이를 보고 진열(陳烈)이 누각의 문에 걸린 큰 등롱에다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적어 부조리한 현실을 규탄하였다 한다.

富家一碗燈 (부가일완등) 부잣집에서 마련한 등불 하나는

太倉一粒粟 (태창일립속) 창고 안 좁쌀 한 톨에 불과하나

貧家一碗燈 (빈가일완등) 가난한 집은 등불 하나 때문에

父子相聚哭 (부자상취곡) 부자가 함께 모여서 통곡한다네

風流太守知不知 (풍류태수지부지) 풍류만 탐하는 태수는 아는가 모르는가

惟恨笙歌無妙曲 (유한생가무묘곡) 오직 풍악만 있고 묘곡이 없어 한스럽네

 

*이남규(李南珪,1855~1907) :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의사(義士). 자는 원팔(元八), 호는 산좌(汕左) 수당(修堂).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의 통분함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영흥부사의 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갔다가 의병에 관련되어 1907년 공주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아들과 함께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