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山居四時 再和 (산거사시 재화) - 徐居正 (서거정)

-수헌- 2023. 3. 25. 09:42

이 시는 서거정(徐居正)이 앞서 소개한 산거사시(山居四時)의 운(韻)을 그대로 화운(和韻)하여 다시 지었다.

 

再和 五首  재화 오수 

재차 화운하여 다섯 수를 짓다.

 

金章何故戀靑山 금장하고련청산

고관은 어찌 예부터 청산을 사모하는가

富貴唯餘一笑間 부귀유여일소간

부귀는 오직 한번 웃는 사이일 뿐이네

好向山中成大隱 호향산중성대은

좋아서 대은이 되려고 산중에 들어가서

會須大藥駐童顔 회수대약주동안

응당 모여 선약 먹고 청춘에 머무르리

緱山白鶴朝遊嶺 구산백학조유령

구산의 백학은 아침에 산마루에서 놀고

函谷靑牛夜渡關 함곡청우야도관

함곡관 청우는 밤에 관문을 지나갔었지

行樂地仙隨處勝 행악지선수처승

신선이 즐겨가는 그곳이 빼어난 곳이니

坤靈不必爲人慳 곤령불필위인간

땅의 신령이 사람에게 감출 필요 없구나

 

※金章(금장) : 금장(金章)은 고위 관료의 황금 인장을 말하므로 전하여 고위 관료 자체를 의미한다.

※大隱(대은) : 크게 숨어 사는 진정(眞正)한 은사(隱士)의 뜻으로 쓰였다.

※大藥(대약) : 대약(大藥)은 도가(道家)에서 만드는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 금단(金丹)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호가행(浩歌行)에 ‘이미 긴 끈으로 태양을 잡아 맬 수도 없고, 또 대약으로 청춘을 머물게 할 수도 없네. [旣無長繩繫白日 又無大藥駐朱顔]’라는 구절이 있다.

※緱山(구산) : 구산(緱山)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산으로 구령(緱嶺) 또는 구씨산(緱氏山) 이라고도 한다. 주나라 영왕(靈王)의 아들 진(晉)이 왕에게 간언을 하다 천민이 되었는데, 생황을 잘 불어서 봉황 울음소리까지 냈다고 한다. 훗날 진(晉)이 신선이 되어 백학을 타고 인간 세상에 잠깐 내려와 구산에서 가족을 만나고 헤어졌다고 한다.

※函谷靑牛(함곡청우) : 열선전(列仙傳)에 의하면, 노자(老子)가 일찍이 서쪽으로 떠날 때에, 함곡관 영(函谷關令) 윤희(尹喜)가 함곡관 위에 자기(紫氣)가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노자가 푸른 소를 타고 그곳을 지나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春寒景物護深扉 춘한경물호심비

추운 봄의 경물들이 사립문 깊이 감싸고

猿鶴前頭俗事稀 원학전두속사희

원학 앞에는 세속의 일이 드물기만 한데

雨濕柳堤千縷重 우습류제천루중

버들 둑의 버들가지 비에 젖어 묵직하고

煙拖竹塢萬竿猗 연타죽오만간의

대밭은 안개가 끼어 모든 대가 아름답네

一池淺碧鷗兼淨 일지천벽구겸정

못은 얕고 푸르러 갈매기 함께 깨끗하고

滿院殘紅燕共飛 만원잔홍연공비

집안 가득 떨어진 꽃잎 제비와 함께 나네

步屧園中時倚杖 보섭원중시의장

때때로 지팡이 짚고 정원을 거닐어 보니

石田處處秀三芝 석전처처수삼지

돌 밭 곳곳에 삼지가 높이 돋아나는구나

 

※猿鶴(원학) : 원숭이와 학이 깃든 곳, 청산(靑山)을 의미한다.

※三芝(삼지) : 예로부터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으로 일컬어지는 석지(石芝), 영지(靈芝), 육지(肉芝)를 이르는 말.

 

 

仙峯隱映瑞煙籠 선봉은영서연롱

신선봉은 서연에 싸여서 가리어 졌는데

洞裏分明見別宮 동리분명견별궁

골짝 안에는 별궁이 뚜렷이 보이는구나

花氣滿山時作雨 화기만산시작우

꽃기운 가득한 산에 때때로 비 내리고

松陰拂地易爲風 송음불지역위풍

솔 그늘 땅에 떨쳐 바람 쉬이 일어나네

香凝美酒荷筒碧 향응미주하통벽

향기 어린 좋은 술을 하통벽으로 마시니

味入瓊漿荔子紅 미입경장려자홍

경장과 붉은 여지열매의 맛에 빠져드네

日暮山禽啼散盡 일모산금제산진

날 저물어 산새들이 울면서 다 흩어져서

凭闌詩思轉鬆鬆 빙란시사전송송

난간에 의지하니 시 생각이 거칠어지네

 

※荷筒碧(하통벽) :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에 피서(避暑)를 하면서 연잎(蓮葉)에다 술 석 되를 담아서 잠(簪)으로 연잎의 줄기를 찔러서 마시면 술 향기가 맑고 시원하다 하였는데, 그것을 벽통주(碧筒州)라 하였다.

※瓊漿(경장) : 선인(仙人)들이 마시는 음료. 옥즙(玉汁)이란 뜻으로, 전하여 진귀한 음료(飮料)를 가리킨다. 맛 좋은 술의 별칭이기도 하다.

※荔子(여자) : 리치(litchi)로 알려진 중국 원산의 열대 과일로, 맛이 좋아 양귀비(楊貴妃)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생과일을 산지에서 장안(長安)까지 상하지 않게 나르느라 숱한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塵土東華萬丈深 진토동화만장심

동화문의 흙먼지는 만 길 깊이 되지만

高人丘壑百年心 고인구학백년심

은거지의 고인은 백 년 마음을 지녔네

蓴絲帶露專欺雪 순사대로전기설

순채는 이슬 띠어 오로지 눈보다 희고

菊蘂經霜解作金 국예경상해작금

국화는 서리 맞아 황금을 만들 줄 아네

蛩泣蕙花連竹枕 공읍혜화련죽침

혜화에 우는 귀뚜라미 머리맡에 들리고

鶴翻松子落瑤琴 학번송자락요금

학이 날자 솔방울이 거문고에 떨어지네

靑山不礙尋眞路 청산불애심진로

청산이 참된 길 찾는 걸 방애하지 않고

暫許吾曹去一尋 잠허오조거일심

우리가 찾아가는 길을 잠시 허락했구나

 

※塵土東華萬丈深(진토동화만장심) : 동화문은 옛 궁궐의 동쪽 문으로 백관(百官)이 입조(入朝)할 때에 출입하던 문(門)의 이름인데, 소식(蘇軾)의 시 박박주(薄薄酒)에 ‘은거하여 뜻을 구함엔 의만을 따를 뿐, 동화문의 먼지나 북창의 바람은 아예 비교하지 않는다네.〔隱居求志義之從 本不計較東華塵土北窓風〕’ 한 데서 온 말이다. 소식은 이 시의 주에서 ‘서호의 풍월이 동화문의 뿌연 먼지만 못하다.〔西湖風月 不如東華軟紅土〕’라는 전인(前人)의 희어(戲語)를 인용하였다고 했다.

※高人(고인) : 뜻이 높고 지조가 굳은 사람

※丘壑(구학) : 일구일학(一丘一壑)의 준말로 은사(隱士)의 은거지(隱居地)를 말한다. 한서(漢書) 서전(敍傳)의 ‘한 골짜기에서 고기를 낚고 …… 한 언덕 위에서 소요를 한다. [漁釣於一壑 …… 棲遲於一丘]’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擁褐閑眠靜不喧 옹갈한면정불훤

갈옷 입고 한가히 조니 고요하기만 하고

高蹤邈邈自無鄰 고종막막자무린

고상한 자취 막막하여 절로 이웃이 없네

雪宵煮茗窓渾曙 설소자명창혼서

차 끓이는 눈 오는 밤 흐린 창에 날 새고

雲閣燒丹鼎已春 운각소단정이춘

솥에 단약 고는 높은 집은 이미 봄이구나

𤉦柏心貞凌歲暮 왜백심정릉세모

잣나무의 곧은 마음은 세모 추위도 얕보고

寒梅面瘦離風塵 한매면수리풍진

겨울 매화는 수척해도 풍진을 초탈하였네

門前時有雙鵝客 문전시유쌍아객

때로는 문전에 두 사람의 아객이 있어서

博得黃庭妙入神 박득황정묘입신

황정경을 얻어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야지

 

※門前時有雙鵝客(문전시유쌍아객 ) 博得黃庭妙入神(박득황정묘입신) : 아객(鵝客)은 진(晉) 나라 때 명필(名筆) 왕희지(王羲之)가 거위를 매우 좋아하여 산음(山陰)의 도사(道士)에게 도덕경(道德經)을 써주고 거위와 바꾸어 왔던 데서, 왕희지 같은 명필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시 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에, ‘경호의 흐르는 물에 맑은 물결 일렁이니, 사명광객(四明狂客) 가는 배에 뛰어난 흥취 진진하리. 산음의 도사와 만일 서로 만나게 되면, 응당 황정경 써주고 흰 거위와 바꾸겠지.〔鏡湖流水漾淸波 狂客歸舟逸興多 山陰道士如相見 應寫黃庭換白鵝〕’ 한 데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