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無名子(尹愭)의 記故事

臘日記故事 (납일기고사) - 尹愭 (윤기)

-수헌- 2023. 1. 3. 17:28

납일(臘日)은 섣달그믐께 즈음해서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절일(節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와서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로 하여 신에게 제사를 지냄은 물론 여러 가지 세시풍속을 이어 왔었다.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납일 기고사(臘日記故事)라는 43개의 운에 86구에 달하는 장편 오언 고시를 지어 납일의 이름, 유래와 의미, 궁중의 풍속과 민간의 풍경 등을 담아, 납일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납일(臘日)이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이면 동지 뒤 25일부터 37일 사이에 들게 되는데 올해처럼 동지가 음력 11월 그믐날이면 음력으로 새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납제를 지냈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올해는 음력 1월 4일이 세 번째 미일(未日)이다.

 

臘日記故事 납일기고사 尹愭 윤기  

납일의 고사를 적다

 

臘字亦多義¹ 납자역다의

납 자에는 또한 뜻도 많고

臘名亦多更² 납명역다경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고

臘日亦互迭³ 납일역호질

날짜도 서로 달리 들었으니

歷代有章程 역대유장정

역대로 지내는 방법이 있었네

禽獸取狩獵 금수취수렵

사냥을 하며 짐승을 잡으면서

新故在交接 신고재교접

묵은해와 새해를 서로 이었네

大祭以報功 대제이보공

큰 제사 올려 은공을 갚으려고

歲終乃聚合⁴⁾ 세종내취합

한 해가 끝날 때 제물을 모았네

嘉平標夏世 가평표하세

하나라 시대엔 가평이라고 했고

淸祀著殷葉 청사저은엽

은나라 시대엔 청사라고 하였고

周制建大蜡 주제건대사

주나라 시대엔 대사라고 하였고

漢興爰改臘 한흥원개랍

한나라 일어나니 납으로 고쳤네

臘以享先祖 납이향선조

납제를 지내 선조에게 제향하고

蜡以索百神⁵⁾ 사이색백신

대사로 모든 신에 제사 지냈네

同日而異祭⁶⁾ 동일이이제

같은 날에 다른 제사를 지내니

宴飮縱吏民⁷⁾ 연음종리민

관리와 백성들 마시며 즐겼네

五行皆有終 오행개유종

오행이 모두 끝나는 날에 있으니

丑未與戌辰⁸⁾ 축미여술진

축 미일과 더불어 술 진일이네

王者體其德 왕자체기덕

왕들이 그 덕을 몸소 체험하니

隨時異盛衰 수시이성쇠

때에 따라 성쇠를 달리하는구나

盛祖衰則臘 성조쇠칙랍

조일에는 성하고 납일엔 쇠하니

占日遞變移⁹⁾ 점일체변이

점을 쳐서 날을 고치고 바꾸었네

至後第三是 지후제삼시

납일은 동지 뒤 세 번째 날인데

遇閏四爲期 우윤사위기

윤년이 되면 네 번째 날로 한다

八蜡會萬物¹⁰⁾ 팔사회만물

팔사를 지낼 온갖 제물을 모으니

禮儀肇伊耆¹¹ 예의조이기

제례의식은 이기씨가 시작했는데

嗇農畷猫乕¹² 색농철묘호

선색 사색 농 우표철 묘호와

防庸及昆蟲¹² 방용급곤충

방과 수용과 곤충에 제사 지냈네

息老龡豳頌¹³ 식로취빈송

빈송을 연주해 노물을 쉬게 하고

土鼓動渢渢¹³ 토고동풍풍

흙 북 두드리는 소리 크게 울렸네

赭鞭鞭草木¹⁴⁾ 자편편초목

붉은 채찍으로 초목을 후려쳤다는

甞聞太古風 상문태고풍

오랜 옛적 풍속을 일찍이 들었지

百日澤一日¹⁵⁾ 백일택일일

백일 노동에 하루 은택을 내려서

燕樂乃勞農 연악내로농

힘쓴 농민에게 잔치를 베풀었네

子貢譏若狂¹⁶⁾ 자공기약광

미치광이 같다는 자공을 나무라며

義大非爾知 의대비이지

대의는 네가 알 수 없다고 하셨네

明日卽初歲 명일즉초세

다음 날이 곧 새해의 첫날이어서

秦後擧賀儀¹⁷⁾ 진후거하의

진나라 이후로 하례를 거행하였네

始皇復舊號 시황부구호

진시황이 옛 이름을 복구하였으니

何用紛更爲 하용분경위

어찌 번잡하게 다시 고쳐서 쓸까

茅昇謠里童¹⁸⁾ 모승요리동

모몽이 승천하자 동요 지어 불렀고

楊缶和趙女¹⁹⁾ 양부화조녀

양운의 장구는 조녀에게 화답했네

石湖舂藏瓦²⁰⁾ 석호용장와

석호는 쌀 찧어 질그릇에 저장하고

細陽恩開圄²¹ 세양은개어

세양 현령은 은혜롭게 감옥 열었네

殺黃竈上祠²² 살황조상사

누런 양 잡아 조왕신에 제사 지내고

投椒井中禳²³ 투초정중양

산초를 우물에 던져 푸닥거리 했네

瘦羊甄博士²⁴⁾ 수양견박사

여윈 양 고른 견우는 수양 박사였고

伏獵蕭侍郞²⁵⁾ 복렵소시랑

소경은 복렵 시랑이 되었구나

藏䦰叟嫗喧²⁶⁾ 장구수구훤

장구놀이 하는 할미들은 시끄럽고

薰肉人士忙²⁷⁾ 훈육인사망

사람들은 고기 굽느라 바쁘구나

誰罷紫宸朝 수파자신조

누구는 궁궐에서 조회를 마치고

多尋雪梅香 다심설매향

눈 속 매화 향을 자주 찾는구나

竊食過知仁²⁸⁾ 절식과지인

음식을 훔친 데서 어짊을 알겠고

逐邪戱爲虐²⁹⁾ 축사희위학

귀신 쫓는 놀이는 학정이 되었네

萱柳驚節物 훤류경절물

원추리와 버들은 봄소식에 놀라고

管罌下脂藥³⁰⁾ 관앵하지약

약물을 항아리에 담아 하사했네

七寶爭送粥³¹ 칠보쟁송죽

칠보 그릇에 다투어 죽을 보내고

百侲先驅儺³² 백진선구나

진자들이 앞장서 악귀 물리쳤네

奇祥說三白³³ 기상설삼백

삼백의 뛰어난 상서에 기뻐하며

田公笑且歌 전공소차가

농부는 웃으면서 노래를 불렀네

賢哉延年母³⁴⁾ 현재연년모

엄연년의 어머니는 현명하였고

仁矣范氏子³⁵⁾ 인의범씨자

범 씨의 자제는 어진 사람이었네

黑貂憐獨飮³⁶⁾ 흑초련독음

가련한 태후는 흑초 달고 홀로 마셨고

陳咸能知此³⁷⁾ 진함능지차

진함은 능히 이리될 줄 알았네

劉家戌之日³⁸⁾ 유가술지일

한나라의 납일은 술일이었으나

而今恒在未³⁹⁾ 이금항재미

지금 조선은 항상 미일에 있네

內局和妙劑⁴⁰⁾ 내국화묘제

내의원에서는 약제를 조제하여

紛紜餉富貴⁴⁰⁾ 분운향부귀

떠들썩하게 권세가에 하사하네

承雪水共酌¹ 승설수공작

눈 받아 녹인 물을 같이 마시고

調丸金以衣 조환금이의

환약을 조제하여 금박을 입히네

飛走肝俱白² 비주간구백

날짐승 길짐승 간이 모두 희니

辟瘟願嘗味³ 벽온원상미

역병을 먹으려고 맛보길 원하네

豪家宰兔猪⁴⁴⁾ 호가재토저

부호가에선 토끼와 돼지를 잡고

俠兒射鳥雀⁴⁵⁾ 협아사조작

젊은 아이들은 산새를 사냥하네

烹炰相與樂 팽포상여악

찌고 구워 서로 베풀어 즐기면서

却笑窮寂寞 각소궁적막

궁핍하고 적막하여도 웃으리라

暖遙或凍消⁴⁶⁾ 난요혹동소

혹 추위 누그러져도 봄은 멀고

雲蒼倐歲昏⁴⁷⁾ 운창숙세혼

구름이 변하듯 세월이 빠르구나

土風寧不殊 토풍녕불수

지방 풍속은 어찌 다르지 않을까

故事尙有存 고사상유존

옛날의 흥취는 아직 남아 있구나

幸際昇平世 행제승평세

다행히 태평한 세월을 만나서

穩過月十二 온과월십이

평온하게 열두 달을 보냈으나

恨乏佳節酬 한핍가절수

좋은 명절에 보답 못해 한스러워

詎謀良夜醉 거모량야취

어찌 좋은 밤에 취하지 않으랴

凍吟呼兒題 동음호아제

아이 불러 겨울 시를 지어 읊으며

聊以寓談戱 료이우담희

객사에서 농담거리에 귀 기울이네

 

※臘字亦多義(납자역다의)¹ : 납 자의 의미에는 저녁, 섣달, 그믐, 사냥, 모이다, 모으다, 조상에게 올리는 큰 제사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臘名亦多更(납명역다경)² : 중국 하나라 때는 가평(嘉平), 은(殷) 나라 때는 청사(淸祀), 주(周) 나라 때는 대사(大蜡), 한(漢) 나라 때는 납(臘)이라고 불렀다.

 

※臘日亦互迭(납일역호질)³ : 납일은 시대마다 그 날자가 달랐는데, 중국에서는 세 번째 술일(戌日) 또는 진일(辰日) 등으로 시대마다 달랐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에는 12월 인일(寅日)이었다. 그러나 고려 문종 때는 술일로 납일을 정했지만 대체로 대한(大寒) 전후 진일로 납일을 삼았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로 정한 것이다.

 

※聚合(취합) : 취합(聚合)은 신에게 제향을 올리기 위해 그해 수확한 곡물과 잡은 고기를 모은다는 뜻이다.

 

※蜡以索百神(사이색백신)⁵⁾ : 예기에는 ‘이기씨(伊耆氏)가 비로소 사(蜡-납향 납일에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행하였으니, 蜡는 索이다. 한 해의 12월에 만물을 모아서 이를 색향(索饗)한다.’고 되어 있다. 곧 백신을 찾아 흠향을 올린다는 의미이다.

 

※同日而異祭(동일이이제)⁶⁾ : 후한의 학자들은 납제와 대사의 의미에 대해 ‘납제는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고, 대사는 백신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같은 날 지내는 다른 제사이다.〔臘者祭先祖 蜡者報百神 同日異祭也〕’라고 해설하였다.

 

※宴飮縱吏民(연음종리민)⁷⁾ : 후한 때의 문인 채옹(蔡邕)의 저서 독단(獨斷)에 ‘납이란 한 해의 마지막에 지내는 대제이니, 관리와 백성들이 마음껏 연회 하며 마신다.〔臘者歲終大祭 縱吏民宴飮〕’고 하였다.

 

※丑未與戌辰(축미여술진)⁸⁾ : 한나라는 술일, 위라는 진일, 진나라는 축일로 납일을 삼았는데 이 날이 오행상 해당 왕조의 덕이 끝나는 날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와 고려 초기까지는 인일, 고려 때에는 술일과 진일에 납향제를 지내다가 조선에 와서는 미일로 납일을 정하였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우리나라 역법에서는 동지 이후 세 번째 맞는 미일(未日)을 납일로 삼는데, 동방의 성덕(盛德)이 오행 중 목(木)에 있기 때문이다.’하였다. 목은 오행으로 동방이고, 청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占日遞變移(점일체변이)⁹⁾ : 나라를 세운 왕조에서는 왕조의 덕에 부합하는 오행을 기준으로, 해당 기운이 성한 날을 조일(祖日), 기운이 쇠한 날을 납일(臘日)로 삼았다. 한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는데, 화(火)는 술일에 쇠하기 때문에 술일을 납일로 삼았다. 위나라는 토덕(土德)으로 왕이 되었는데, 토(土)는 진일에 쇠하기 때문에 진일을 납일로 삼았다. 진나라는 금덕(金德)으로 왕이 되었는데, 금(金)은 축일에 쇠하기 때문에 축일을 납일로 삼았다. <古今事文類聚> 조선은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는데, 동방을 상징하는 목은 서방을 상징하는 미일(未日)에 쇠하기 때문에 미일을 납일로 삼은 것이다.

 

※八蜡會萬物(팔사회만물)¹⁰⁾ : 팔사(八蜡)는 주(周) 나라 때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여덟 농신(農神)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예기(禮記)에 ‘천자의 큰 사제(蜡祭)가 여덟 가지이다. 이기씨가 처음 사제를 만들었다. 사제라는 것은 찾는다는 말이니, 매년 12월에 만물을 취합하여 신을 찾아 제향 하는 것이다.〔天子大蜡八 伊耆氏始爲蜡 蜡者索也 歲十二月 合聚萬物而索饗之〕’ 하였다. 곧 취합(聚合)은 그해 수확한 곡물과 잡은 고기를 모아 신에게 제향을 올리는 것이다.

 

※伊耆(이기)¹¹ : 이기씨(伊耆氏)는 요 임금의 성(姓)으로, 곧 요 임금을 가리킨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이기씨가 처음으로 사(蜡)를 행하였다.〔伊耆氏始爲蜡〕’ 하였다. 일설에 이기씨는 염제 신농(炎帝神農)이라고도 한다.

 

※嗇農畷猫乕 防庸及昆蟲(색농철묘호 방용급곤충)¹²⁾ : 주(周) 나라 때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지내는 팔사의 여덟 농신의 이름이다. 여덟 농신은 선색(先嗇), 사색(司嗇), 농(農), 우표철(郵表畷), 묘호(猫虎), 방(坊), 수용(水庸), 곤충(昆蟲)이다. <禮記郊特牲>

 

※豳頌,土鼓(빈송,토고)¹³ : 빈송(豳頌)은 주(周) 나라 주공(周公)이 섭정을 마치고 나이 어린 성왕(成王)을 등극시킬 때, 백성들 생업의 어려움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지었던 시경의 빈풍칠월편을 말한다. 이 시는 주로 농사에 관한 일을 노래하였는데, 시경 주례(周禮) 춘관종백 약장(籥章)에 ‘나라에서 납향제를 지내면 빈송을 불고 흙 북을 쳐서 늙은이와 만물을 쉬게 한다.〔國祭蜡則吹豳頌擊土鼓以息老物〕’라고 하였다.

 

※赭鞭(자편)¹⁴⁾ : 자편(赭鞭)은 악귀를 물리치는 붉은 채찍이다. 신농씨가 백초(百草)의 성질과 맛을 검증할 때 이 채찍을 가지고 백초를 후려쳤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제석일 밤에 궁궐 뜰에서 나례(儺禮) 의식을 베풀 때 장고와 자편(赭鞭)을 쳐서 역귀를 몰아낸다고 하였다. <林下筆記>

 

※百日澤一日(백일택일일)¹⁵⁾ :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 나오는 ‘백일지사 일일지택(百日之蜡一日之澤)’을 원용한 표현이다. 일일지택(一日之澤)에서의 일일(一日)은 사(蜡) 제사를 지내는 날이고, 택(澤)은 선왕(先王)의 은택을 말한다. 즉 선왕(先王)이, 백성들이 한 해 내내 수고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납일이 되면 백성들로 하여금 잔치를 열여 그 하루를 즐기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백일은 1년 내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子貢譏若狂(자공기약광)¹ :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 의하면, “자공이 납향 제사를 구경하고 있을 때 공자께서 ‘사(賜)야 즐거웠느냐?’ 하고 물었다. 자공이 대답하기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한데. 저는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백일 동안 노고한 뒤에 지내는 납향 제사는 하루 동안 즐기도록 하는 군주의 은택이니, 네가 알 수 없을 것이다. 활을 조이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는다면 문왕과 무왕도 어찌하지 못하고. 활을 풀어만 놓고 조이지 않는다면. 문왕과 무왕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 번 조이고 한 번 풀어놓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子貢觀於蜡 孔子曰 賜也樂乎 對曰 一國之人皆若狂 賜未知其樂也 子曰 百日之蜡 一日之澤 非爾所知也 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하였다.

 

※秦後擧賀儀(진후거하의)¹⁷⁾ : 중국 풍속에는 납일 다음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 때문에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로는 납일 다음날에 마치 설날의 하정(賀正)과 똑같이 하례하였다고 한다.

 

※茅濛(모몽)¹⁸⁾ : 모몽(茅濛)은 진시황 때의 인물로 주나라가 쇠하자 화산에 들어가 귀곡선생(鬼谷先生)을 스승으로 모셨다. 득도한 뒤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그 지방에서 동요를 지어 부르기를 ‘황제께서 만약 배우고 싶거든 납을 가평으로 하소서.〔帝若學之臘嘉平〕’라고 하였다고 한다.

 

※楊缶和趙女(양부화조녀)¹⁹⁾ : 한 선제(漢宣帝) 때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은 본디 진나라 사람이다. 죄에 걸려 폐서인이 된 후, 빈객을 모아 연회를 열어 즐기므로 그의 친구 손회종(孫會宗)이 자중하라고 편지를 보내 충고하였다. 이에 양운이 손회종에게 답한 글에 “나는 본디 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 노래를 잘하고, 부인은 조나라 여자로 평소 거문고를 잘 타며, 노비 가운데 노래를 잘하는 자가 몇 있다. 술이 거나해져 귀가 달아오르면 하늘을 올려보며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를 한다.〔家本秦地 能爲秦聲 婦趙女也 雅善鼓瑟 奴婢歌者數人 酒後耳熱 仰天撫缶而呼嗚嗚〕”하였다.

 

※石湖舂藏瓦(석호용장와)²⁰⁾ : 석호는 송나라 때의 시인 범성대(范成大)이다. 그의 악부시 촌전악부(村田樂府) 중 첫 수 동용행(冬舂行)의 서문에서 ‘납일에 쌀을 찧어 한 해의 살림을 계획한다. 절구질을 많이 해 모아서, 납일에 일을 모두 마친 뒤 질그릇으로 만든 창고 안에 갈무리해두면, 한 해가 지나도록 상하지 않는다. 이것을 동용미(冬舂米)라고 한다.〔臘日舂米爲一歲計 多聚杵臼 盡臘中畢事 藏之土瓦倉中 經年不壞 謂之冬舂米〕’라고 하였다.

 

※細陽恩開圄(세양은개어)²¹ : 한나라의 우연(虞延)이 세양 현령(細陽縣令)이 되었을 때, 매년 복날과 납일 등 세시 가절이 되면 번번이 죄수들을 방면하여 잠시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쇠게 해 주었다. 죄수들은 그 은혜에 감동하여 날짜를 지켜 돌아왔다고 한다.

 

※殺黃竈上祠(살황조상사)²² : 한 선제(漢宣帝) 때에 음자방(陰子方)이란 자가 있었는데, 납일 새벽 불을 지필 때면 조왕신이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음자방이 절을 하고 복을 빌었다. 마침 집에 누런 양이 있어 이를 잡아 조왕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이후로 음자방은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민간에 납일에 조왕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投椒井中禳(투초정중양)²³ : 12월 납일 밤에 주위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고 아무도 몰래 우물에 산초를 던지면 새해에 병과 재앙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 풍속이 있다.

 

※瘦羊甄博士(수양견박사)²⁴⁾ : 후한의 견우(甄宇)는 북해(北海) 사람으로 광무제(光武帝) 때 박사에 배수되었다. 당시 매년 납일이 되면 박사에게 양 한 마리를 내리는 관례가 있는데, 통통한 양도 있고 비쩍 마른 양도 있었다. 그러자 당시 박사 좨주(博士祭酒)가 모든 양을 잡은 뒤 똑같이 나누어 가지자고 하였다. 견우가 반대하자 이번에는 제비 뽑기를 하려고 하였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견우는 박사의 행동으로 비천하다고 여겨 부끄러워 자신이 먼저 가장 마른 양을 골라 갔다. 이후로 견우는 ‘수양 박사’로 불려졌다.

 

※伏獵蕭侍郞(복렵소시랑)²⁵⁾ : 당나라 호부 시랑(戶部侍郞) 소경(蕭炅)이 예기(禮記)에 나오는 증(蒸) 상(嘗) 복(伏) 납(臘)이라는 사계절 제사의 이름을 읽을 때 그 뜻을 알지 못해 ‘복렵(伏獵)’이라고 읽었다. 뒤에 이 이야기를 들은 장구령(張九齡)이 소경을 보고 ‘도성 안에 복렵 시랑(伏獵侍郞)이 있다지?’라고 놀렸다고 한다.

 

※藏䦰(장구)²⁶⁾ : 옛 놀이의 하나로 장구(藏鉤) 또는 송구(送鉤)라고도 하는데, 고리를 보내어 그것을 손안에 감추고 찾게 하며 즐기는 유희로 이를 통해 벌주를 먹이기도 하였다. 주처(周處)의 풍토기(風土記)에 “의양에서는 납일에 음복한 후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장구놀이를 하는데, 두 조로 나뉘어 승부를 가린다.……고리 하나를 여러 사람의 손 가운데 감추어두고 상대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義陽臘日飮祭之後 叟嫗兒童爲藏鉤之戲 分爲二曹 以校勝負……一鉤藏在 數手中 曹人當射知所在]”라고 하였다.

 

※薰肉人士忙(훈육인사망)²⁷⁾ : 납일에 아이들은 시절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닭 오리 등의 고기를 훈제하여 구워 술을 마시는 풍속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竊食過知仁(절식과지인)²⁸⁾ : 한나라 때에는 납일에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한탁(韓卓)이라는 사람 집의 노비가 음식을 훔쳐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다. 음식을 훔친 것은 괘씸하지만, 그 마음을 갸륵하게 여겨 용서해주었다고 한다. 과지인(過知仁)은 관과지인(觀過知仁), 곧 어떤 허물을 저질렀는지를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진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노비가 음식을 훔친 것이 죄이기는 하나, 목적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이므로 그 허물이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逐邪戱爲虐(축사희위학)²⁹⁾ : 양(梁)나라 경종(景宗)이 영군(領軍)이 되었을 때 놀이를 좋아하여, 매년 납일이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굿을 벌여 귀신을 쫓고 집집마다 술과 음식을 추렴하여 놀이판을 벌이게 하였다. 그러나 부하들이 이를 핑계로 민간에서 미인을 강탈하고 재물을 탈취하곤 하여 중지하였다. 즉 위정자들이 행하는 납일의 구나(驅儺) 행사와 연회가 백성들에게는 도리어 학정이 되었다는 뜻이다.

 

※管罌下脂藥(관앵하지약)³⁰⁾ : 당나라의 학자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의하면, 당나라 때에는 납일에 궁중에서 신하들에게 입술이 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구지(口脂), 얼굴에 바르는 면약(面藥) 및 기타 약물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두보의 시 납일(臘日)에서도 ‘눈 빛을 뚫고 원추리 나고, 버들가지엔 봄빛이 흘르네.……입술과 얼굴에 바르는 약이 임금의 은택을 따라, 벽옥관과 은항아리 궁궐에서 내려오네.〔侵陵雪色還萱草 漏洩春光有柳條……口脂面藥隨恩澤 翠管銀罍下九霄〕’라고 하였다. 두보가 이렇게 노래한 이후로 구지와 면약, 원추리와 버들가지는 납일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七寶爭送粥(칠보쟁송죽)³¹ : 중국 남방에서는 납일이 음력 12월 8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날은 석가모니가 성불한 날로 납팔절(臘八節)로 불리는데, 사찰에서는 크게 설법회를 열고 공양을 하며, 칠보 그릇에 다섯 가지 곡물로 쑨 죽을 담아 올린다. 이것을 납팔죽(臘八粥)이라고 한다. 혹은 일곱 가지 곡물로 쑤기 때문에 칠보죽(七寶粥)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侲子(진자)³² : 진자(侲子)는 예전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을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를 거행할 때의 나자(儺者)의 하나를 이르던 말로 초라니라고도 한다. 납일 날 액막이 구나(驅儺)를 할 때, 어린아이들을 뽑아 초라니를 만들고 마당놀이 형식을 빌어 초라니들로 하여금 역신을 쫓아내게 한다. 초라니 패는 무려 120명이나 되는데, 모두 붉은 두건을 쓰고 손에 땡땡이 북을 들고서, 몰려다니며 창화를 하면서 역신을 쫓는다.

 

※三白(삼백)³³ : 농정전서(農政全書)에 ‘납일 이전에 세 차례 큰 눈이 오는 것을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하는데, 보리농사에 아주 좋다. 고 한다. 또 조야첨재(朝野僉載)에 ‘섣달에 눈 오는 것을 보면, 농부가 껄껄 웃는다.〔臘月見三白 田公笑嚇嚇〕’ 하였다.

 

※賢哉延年母(현재연년모)³⁴⁾ : 延年은 한나라 중종효선황제(中宗孝宣皇帝) 때 사람 엄연년(嚴延年)을 말하는데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그의 어머니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남해 태수(河南太守)로 부임한 동해 사람 엄연년은 다스림이 음험하고 가혹한 데다 변덕스럽고 살육을 자행하여, 별명이 백정 태수〔屠伯〕였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부임을 따라 동해에서 낙양에 왔는데 마침 납일이었다. 아전이 중죄인의 사형 집행을 보고하려 하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 도정(都亭)에 머무르며 관아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연년이 도정에 와서 뵙기를 청하여도 그의 어머니는 연년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에 연년이 갓을 벗고 죄를 청하자, 그의 어머니가 ‘죄인을 죽여 위엄을 세우고자 한다면 어찌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겠는가?〔多刑殺人 欲以立威 豈爲民父母意哉〕’ 하고 꾸짖었다. 그러고는 납일이 끝난 후 ‘천도와 신명이 있으니 인명은 마음대로 죽일 수 없다.’라고 훈계한 뒤 곧장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동해군 백성들이 모두 그 어머니의 현명함을 칭찬하였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仁矣范氏子(인의범씨자)³⁵⁾ : 범씨(范氏)의 자제는 서진 시기의 사람인 범교(范喬)를 가리킨다. 향촌 사람들이 납일이 되면 범교 소유의 산에서 나무를 도둑질하여 베어 가곤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범교에게 고하였으나, 범교는 짐짓 모른 체하였다. 이 사실을 안 향촌 사람들이 부끄러워 그냥 돌아갔다. 그러자 범교가 ‘시골에서 납일에 나무를 훔치는 것은 단지 부모와 화목하게 놀고자 해서 그런 것일 뿐인 걸.〔鄕臘日取此 欲與父母相歡娛耳〕’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藝文類聚>

 

※黑貂憐獨飮(흑초련독음)³⁶⁾ : 전한(前漢) 한 평제(漢平帝)를 시해하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이 정안태후(定安太后; 한 평제의 비이자 왕망의 딸이다)에게 환심을 얻고자 갖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왕망이 왕위를 찬탈한 후 관복에 흑초(黑貂)를 덧대던 전통을 바꾸어 황초(黃貂)를 덧대게 하고, 또 한나라의 정삭(正朔 ; 정월초하루)과 복날 및 납일을 바꾸었다. 이러한 일이 잘 못된 것임을 안 태후는 흑초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였고, 한나라의 정조와 납일을 만나면 홀로 좌우의 시위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太后令其官屬黑貂 至漢家正臘日 獨與其左右相對飮食〕고 한다. <資治通鑑綱目>

 

※陳咸(진함)³⁷⁾ : 진함은 전후한(前後漢) 교체기에 살았던 법률가로 당시 한나라에서 율령에 가장 밝은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왕망이 왕권을 찬탈한 뒤 그에게 제도를 새로 고칠 것을 명하자 이에 격분하여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갔다. 이후로 율령에 관한 문서들을 벽장 속에 봉함하고는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구절은 ‘진함이 은거한 것은 왕망이 찬탈한 뒤 이토록 폭정과 난정을 펼칠 줄 미리 알고 그리했던 것인가?’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漢書>

 

※劉家戌之日(유가술지일)³⁸⁾ : 유가(劉家)는 유방(劉邦)이 세운 한 왕실(漢王室)을 말한다. 한 국가는 오행으로 따져 해당 국가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날을 조일(祖日)로 삼고, 쇠해지는 날을 납일로 삼는다. 한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일어난 왕조인데, 화기(火氣)는 술일(戌日)에 쇠약해진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에서는 12월의 술일을 납일로 삼았다.

 

※而今恒在未(이금항재미)³⁹⁾ : 조선은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는데, 동방을 상징하는 목은 서방을 상징하는 미일(未日)에 쇠하기 때문에 미일을 납일로 삼은 것이다.

 

※內局和妙劑 紛紜餉富貴(내국화묘제 분운향부귀)⁴⁰⁾ : 우리나라의 경우, 납일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청심원(淸心元), 안신원(安神元), 소합원(蘇合元) 같은 각종 환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렸는데, 이것을 납약(臘藥)이라고 한다. 임금은 그것을 측근 신하와 나인(內人) 등에게 하사하였다. 정조 때에는 새로 제조한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 두 종의 환약을 만들어 모든 영문(營門)에 나누어주어 군졸들을 치료하는 데 쓰도록 했고, 또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관서에서도 납약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東國歲時記>

 

※承雪水共酌(승설수공작)¹ : 납일에 내린 눈을 받아 녹여 만든 물을 항아리에 담아 놓고, 1년 동안 이 물로 병을 치료하고 소독한다. 여기에 과일을 담아 보관하면 맛과 색이 변치 않는다고 한다. 또 이 물로 장조림을 하면 역시 고기가 부패하지 않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납설수(臘雪水)라고 한다. <本草綱目>

 

※飛走肝俱白(비주간구백)² : 겨울을 나기 위해 짐승들이 몸에 한껏 지방을 축적해 놓은 상태이므로, 납월이 되면 날짐승과 들짐승의 간이 모두 지방으로 가득 차서 희다고 한다. 이때가 사냥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辟瘟願嘗味(벽온원상미)³ : 납일에 잡은 날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한 해 동안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豪家宰兔猪(호가재토저)⁴⁴⁾ : 납(臘)은 엽(獵)과도 의미가 통하는 글자이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납일에 날짐승과 길짐승을 사냥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다.

 

※俠兒射鳥雀(협아사조작)⁴⁵⁾ :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에서는 ‘납일에 잡은 짐승들은 모두 좋다. 그중에 특히 참새는 노약자에게 이롭기 때문에 인가에서 그물을 쳐서 잡는다.’고 하였다. 또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를 먹이면 마마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暖遙或凍消(난요혹동소)⁴⁶⁾ : 두보의 시 납일(臘日)에 ‘예년 납일엔 따스한 날이 멀더니, 올해 납일엔 얼음이 다 녹았네. 〔臘日常年暖尙遙 今年臘日凍全消〕’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납일은 간혹 따스한 해도 있지만, 봄이 아직 멀다는 뜻이다.

 

※雲蒼倐歲昏(운창숙세혼)⁴⁷⁾ : 두보의 시 가탄(可歎)에 ‘하늘 위의 흰 옷 같은 뜬구름이 잠깐 사이 변하여 늙은 개처럼 보이는구나.〔天上浮雲似白衣 須臾改變如蒼狗〕’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곧 세상 변천이 무상하여 금세 한 해가 가고 세밑이 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