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한식(寒食) 이곡 (李穀)

-수헌- 2022. 4. 2. 11:37

壬午歲寒食 임오세한식     李穀 이곡 

임오년 한식에

 

宦路從來足是非 환로종래족시비

벼슬길은 예로부터 시비가 많은 법인데

更堪親老遠庭闈 경감친로원정위

다시 늙으신 어버이를 멀리 떠나 있다네

已從客路逢寒食 이종객로봉한식

이미 나그네 길 가다가 한식을 만나니

也任京塵染素衣 야임경진염소의

많은 서울 먼지가 흰옷을 물들이는구나

細雨忽來驚節換 세우홀래경절환

홀연히 가랑비 오니 바뀐 계절에 놀라고

落花如掃惜春歸 낙화여소석춘귀

낙화를 쓸어 낸 듯 가는 봄이 아쉽구나

忍貧要趁良辰醉 인빈요진량진취

가난은 참더라도 명절엔 취하고 싶은데

鬢髮多情心事違 빈발다정심사위

귀밑머리가 다정한 심사를 그르치는구나

 

※庭闈(정위) : 부모가 거처하는 방이라는 뜻으로, 어버이를 이르는 말.

※京塵染素衣(경진염소의) : 서울에서의 고달픈 타향살이에 원래 지녔던 순수한 감정마저 각박해지는 것을 느낀다는 뜻이다. 위(魏) 나라 조식(曹植)의 시에 ‘서울에 풍진이 많으니 흰 옷이 검어지네 [京洛多塵素衣化爲緇]’라는 구절이 있고,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시에도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차용한 것 같다.

 

 

寒食獨坐書懷 한식독좌서회     李穀 이곡 

한식날에 홀로 앉아 심회(心懷)를 적다

 

去年寒食遊西山 거년한식유서산

지난해 한식에는 서산에서 놀았는데

今年寒食獨掩關 금년한식독엄관

올해 한식에는 문 닫고 홀로 있구나

東風御柳自今古 동풍어류자금고

봄바람 궁중 버들은 예나 이제나 같은데

客路何處開愁顔 객로하처개수안

수심에 찬 나그네 얼굴 어디에서 펴질까

世無德公同上冢 세무덕공동상총

함께 성묘할 덕공은 이 세상에 없고

但見乞祭來墦間 단견걸제래번간

단지 무덤 사이에 걸제 온 사람만 보이네

高堂明鏡多白髮 고당명경다백발

고당의 거울에 흰머리가 많이도 비치지만

久矣不着萊衣斑 구의불착래의반

노래자의 색동옷 못 입은 지도 오래됐구나

故園花木皆手種 고원화목개수종

고향 동산 꽃나무 모두 내 손으로 심어서

留與黃鳥啼綿蠻 류여황조제면만

꾀꼬리에게 남겨 주어 울음소리 이어지네

人生富貴亦百歲 인생부귀역백세

인생의 부귀 또한 누린 들 백 년인데

歲月一去無由還 세월일거무유환

세월은 한번 가면 돌이킬 수 없구나

天敎我輩故鍾情 천교아배고종정

하늘이 일부러 우리에게 정을 가르쳐서

遇物興懷常不閑 우물흥회상불한

일만 있으면 정이 일어 못 견디게 하네

誰能起我强一醉 수능기아강일취

누가 크게 한번 취하게 하려 날 일으켜도

久病不出腰脚頑 구병불출요각완

오랜 병에 허리 다리가 굳어 못 나가겠네

 

德公(덕공) : 후한 말엽의 은사(隱士)인 방덕공(龐德公;龐統)을 말한다. 그는 일찍이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복룡 봉추(伏龍 鳳雛)라 불린 고사(高士)인데, 가족과 함께 양양(襄陽)의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며 살았다. 역시 당시의 고사였던 사마휘(司馬徽)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그가 성묘하러 산에 올라가고 집에 없자 사마휘가 대신 주인 행세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乞祭(걸제) : 묘제(墓祭)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구걸하여 먹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귀인(貴人)들과 노닐었다고 처첩에게 거드름을 부리는 천장부(賤丈夫)의 이야기가 있다. 《맹자》

※高堂明鏡多白髮(고당명경다백발) : 이백(李白)의 시에 ‘그대 보지 못 했는가 고당의 거울에 비치는 슬픈 흰머리를.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인용한 듯하다.

※萊衣斑(래의반) : 노래자(老萊子)의 색동옷이란 뜻으로,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인 노래자가 칠십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가 있다.

 

*이곡(李穀, 1298~1351) : 고려 후기의 학자 문인. 字는 중부(仲父), 號는 가정(稼亭).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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