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春分 춘분

-수헌- 2022. 3. 19. 11:43

이틀 뒤(21일)면 춘분(春分)인데 전국에 비가 내리고 강원 산간지방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한다. 춘분(春分)은 밤낮의 길이가 같은 날이며 춘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봄 날씨가 깃들기 시작한다. 보통 양력 3월 21일경인데 아직까지 추위는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며 때늦은 눈이 내리기도 한다. 춘분 무렵부터 농부들은 물꼬를 손질하고 논밭에 뿌릴 씨앗 종자를 고르는 등 본격적인 농사일을 시작한다. 따라서 춘분에 날씨를 보고 한 해 농사와 길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 춘분에 비가 내리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춘분에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는 속설이 있다. 또 이 날 동풍이 불면 보리 풍년이 들고, 서풍이 불면 보리가 흉년으로 귀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비가 많이 오나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한다.

올해 춘분에는 봄비가 내려 코로나도 물러나고, 동풍이 불어 경제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춘분을 노래한 옛 시인들의 시에도 이러한 풍속이 잘 표현되어 있다.

 

 

春分後雪 춘분후설     權擘 권벽

 

雪入春分自古稀 설입춘분자고희

춘분 때에 눈 오는 일 예로부터 드문데

禁煙時節助寒威 금연시절조한위

불 못 때는 한식 무렵 추위를 더하는구나

欺梅似妬香魂返 기매사투향혼반

시샘하듯 매화 속여 향기를 돌려보내고

着柳先成亂絮飛 착류선성란서비

버드나무에 붙어 버들 솜을 먼저 날리네

已覺天時差較晩 이각천시차교만

천시가 어긋나 늦어짐을 이미 깨달으니

從敎人事轉相違 종교인사전상위

사람 일도 따라서 같이 어그러지겠구나

何當變作催花雨 하당변작최화우

어떻게 하면 이 눈들을 봄비로 바꾸어서

好與東君共發揮 호여동군공발휘

봄 신에게 주어 함께 위세 떨치게 할까

 

*권벽(權擘, 1520~1593) : 조선시대 관찰사, 승문원 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대수(大手), 호는 습재(習齋). 시인인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아버지이다.

 

 

春分 춘분     李廷馣 이정암

 

天時忽忽到春分 천시홀홀도춘분

천시는 흘러 어느 듯 춘분 절기가 되어도

東北都無吉語聞 동북도무길어문

동북의 도성엔 좋은 소식 들려오지 않는구나

山雨溪風渾漫興 산우계풍혼만흥

산과 계곡에 비바람 섞여 부질없이 일어나니

不如終日醉醺醺 불여종일취훈훈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지냄보다 못하겠구나

 

*이정암(李廷馣, 1541~1600) : 조선시대 병조참판, 전주부윤,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 퇴우당(退憂堂) 월당(月塘).

 

 

田家卽事 전가즉사     申光洙 신광수

 

雨歇朝耕水北田 우헐조경수북전

비 그친 아침 북쪽 밭 갈고 물을 대고

春牟撒種乞豐年 춘모살종걸풍년

봄보리 종자 뿌리며 풍년을 기원한다

西家老叟籬前語 서가로수리전어

서쪽 집 늙은이 울 앞에서 말하기를

今日春分直上烟 금일춘분직상연

오늘 춘분인데 연기 곧게 올라가는구나

 

*신광수(申光洙, 1712~1775) : 조선 후기 영릉 참봉, 연천현감, 영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 또는 오악산인(五嶽山人).

 

 

春分日大雪次東坡韻 춘분일대설차동파운     李健命 이건명

춘분에 큰 눈이 내려 소동파의 시에 차운하다

 

陰雨連旬見日稀 음우련순견일희

열흘에 걸친 오랜 비에 해 보기 드물어

逢春瘦骨㥘寒威 봉춘수골겁한위

수척한 몸이 봄 맞아도 추위가 겁나네

無端風雪縈回下 무단풍설영회하

난데없는 눈보라가 휘몰아쳐 내리더니

不減冬天瀾漫飛 불감동천란만비

겨울 날씨 못지않게 하늘 가득 흩날리네

靑帝正宜流惠澤 청제정의류혜택

청제가 의당 은택을 베풀어야 마땅한데

玄冥胡乃奪權機 현명호내탈권기

현명이 어찌하여 시기의 권한을 빼앗는가

如今天意眞難料 여금천의진난료

지금의 하늘 뜻은 참으로 알기 어려워서

中夜沈吟起攝衣 중야침음기섭의

한밤중에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읊조린다

 

※靑帝(청제) : 각 방위를 관장하여 지킨다는 오방신장의 하나로, 동쪽과 봄을 맡은 신.

※玄冥(현명) : 玄[검은색]은 오행 가운데 수(水)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하여 현명을 겨울의 신 또는 물의 신이라 한다.

*이건명(李健命, 1663~1722) : 조선 후기 우승지,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강(仲剛), 호는 한포재(寒圃齋).

 

※次東坡韻(차동파운) :蘇軾(소식)의 시 계축춘분후설(癸丑春分後雪)을 차운하였는데 원운(元韻)은 다음과 같다.

 

雪入春分省見稀 설입춘분성견희

춘분에 찾아보기 드문 눈이 내리니

半開桃李不勝威 반개도리불승위

반쯤 핀 복숭아 자두 꽃 견디지 못하네

應慚落地梅花識 응참락지매화식

떨어진 매화꽃이 아는 게 부끄러운 듯

卻作漫天柳絮飛 각작만천유서비

도리어 하늘 가득 버들개지처럼 날리네

不分東君專節物 불분동군전절물

오로지 봄 신의 계절을 분간하지 못하고

故將新巧發陰機 고장신교발음기

그 때문에 새로운 기교로 음기를 내뿜네

從今造物尤難料 종금조물우난료

이제 조물주 뜻을 헤아리기 더욱 어려울 테니

更暖須留御臘衣 경난수류어랍의

마땅히 다시 따뜻한 겨울옷 입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