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譯』蓬萊詩集(완역 봉래시집)-楊士彦/五言律詩(오언율시)

孤亭 (고정) 外

-수헌- 2025. 1. 27. 11:41

孤亭  고정  

외로이 머물다.

 

日白雨西黑 일백우서흑

햇살 밝은데 비 오는 서쪽은 어둡고

雲昏天北靑 운혼천북청

구름 어두운데 북쪽 하늘은 푸르네

終風紛起滅 종풍분기멸

바람 그쳐도 어지러이 일었다 사라지는

震宇喪雷霆 진우상뢰정

천둥소리에 세상 잃을까 두렵구나

吟廢詩書澁 음폐시서삽

시서가 힘들어 읊던 것도 그만두고

行迷道路停 행미도로정

도로를 헤매며 다니다가 멈추어서

方將竚淸景 방장저청경

사방에서 맑은 경치를 기다리려고

江漢一孤亭 강한일고정

강한에서 외로이 홀로 머무는구나

 

 

高山獨不降   고산독불강 

높은 산만 홀로 우뚝 솟았네.

高麗忠臣注書吉再少時觀漲詩曰 大野皆沈沒 高山獨不降 人傳誦之 識者異之

고려충신주서길재소시관창시왈 대야개침몰 고산독불강 인전송지 식자이지

고려 충신 주서 길재가 젊을 때 홍수를 보고 지은 시에, 큰 들이 모두 가라앉았는데 높은 산만 홀로 우뚝 솟았다 했다. 사람들이 외워서 전하니 식자들은 기이하게 여겼다.

 

西北猶傾圮 서북유경비

서북이 마치 뒤집히고 무너진 듯

羅浮亦散流 나부역산류

나부산마저 흩어져 떠내려가네

壯君堯則大 장군요칙대

요임금의 장한 뜻을 크게 본받은

獨使禹功休 독사우공휴

우임금의 공만이 훌륭하였구나

乾坤高一表 건곤고일표

천지가 하나같이 높이 드러나니

山岳幾千秋 산악기천추

산악은 몇 천 년이나 되었는데

滄溟有砥石 창명유지석

넓고 큰 바다에 숫돌이 있다면

吾欲繫扁舟 오욕계편주

나는 조그만 배를 매고 싶구나

 

※注書吉再(주서길재) : 고려 말 주서(注書) 벼슬을 지낸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말한다. 주서(注書)는 고려시대 7품 벼슬로 문하주서(門下注書) 도는 첨의주서(僉議注書)를 말한다.

※羅浮(나부) : 문맥상으로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나부산(羅浮山)을 말하는 듯하다, 경치가 수려해서 광동성의 4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堯則大 禹功休(요칙대 우공휴) : 요(堯) 임금의 치수(治水)정책과 우(禹) 임금의 치수 공적(治水功績)을 말한다. 요(堯) 임금 시절 거대한 홍수가 하늘까지 넘쳐 백성들의 피해가 크자 요(堯)임금은 곤(鯀)을 시켜 치수(治水)하게 하였는데, 곤(鯀)은 제방을 쌓는 정책을 썼으나 치수에 실패하여 참수되고 만다. 요(堯)임금의 뒤를 이은 순(舜) 임금은 곤(鯀)의 아들인 우(禹)를 시켜 치수하게 하였는데, 우(禹)는 물길을 터주고 주거지를 재배치하는 정책으로 치수에 성공하여, 순(舜)임금을 이어서 하(夏)나라를 세웠다는 고사를 말한다.

※滄溟有砥石(창명유지석) : 창명(滄溟)은 넓고 큰 바다를 말하고, 지석(砥石)은 숫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채근담(菜根譚)의 ‘덕을 행하고 성정을 바르게 갈고 닦는 마음의 숫돌. [總是進德修行的砥石]’을 의미한다. 뒤 구절과 연계하여 큰 바닷속에 마음의 숫돌이 있다면 조그만 배를 타고 찾아가겠다는 의미이다.

 

 

築榭   축사 

정자를 짓다.

 

九松誰始種 구송수시종

아홉 소나무는 누가 처음 심었는지

三面對溪山 삼면대계산

삼면이 산과 계곡을 마주하고 있네

自適當時趣 자적당시취

한가히 사는 것이 그때 뜻이었지만

能來破地慳 능래파지간

찾아와 땅 파헤치려니 망설여지네

伐枚煙嶂列 벌매연장렬

안개 낀 산의 나무를 베어 벌리니

臨鏡狎鷗還 임경압구환

물가에 갈매기 돌아와 희롱하는데

苓兔何鳥首 영토하조수

영토는 어떤 새의 우두머리인지

壺中日月閑 호중일월한

호로병 속의 해와 달만 한가롭구나

 

※臨鏡(임경) : 거울을 대하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정자가 있는 물가로 이해된다.

※壺中(호중) : 호로병 안이란 말로 별천지를 의미한다. 호공(壺公)이란 신선이 저잣거리에서 약을 팔고 있었는데, 하루는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호공이 천정에 걸어 둔 호로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하루는 호공이 그를 따라 호로병 속으로 들어갔는데, 호로병 속은 완전히 별천지로 해와 달이 있고 선궁(仙宮)이 있었다 한다.

 

 

天使迎送題名契軸   천사영송제명계축 

천사를 맞이하고 보내며 계축에 공적을 적다

 

龍馭乘雲霧 룡어승운무

용어가 안개구름 위로 오르고

皇華下海堧 황화하해연

황하가 바닷가 땅에 내려와서

哀榮尊玉冊 애영존옥책

영예로운 옥책으로 애도하니

泥誥照中天 이고조중천

직첩이 온 하늘을 비추는구나

擁箒犇晨月 옹추분신월

깜짝 놀라 새벽달을 비로 쓸고

操刀擊夜鮮 조도격야선

능숙하게 좋은 밤을 마주쳤네

涵恩歌湛露 함은가담로

은혜를 입어 담로를 노래하며

江上幾杯傳 강상기배전

강상에서 몇 잔이나 전했던가

 

※天使(천사) : 예전에, 제후국에서 천자(天子)의 사자를 이르던 말로써 중국에서 온 황제의 칙사를 말한다. 1568년(선조 2년)에 중국의 태감(太監) 장조(張朝)가 행인사 행인(行人司行人) 구희직(甌希稷)과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명종(明宗)의 제전(祭奠)과 시호(諡號) 및 부의(賻儀)를 전달하였는데 이들을 말한다.

※契軸(계축) : 기념할 만한 일을 맞이한 이에게 뜻있는 사람들이 잔치를 베풀고 축하 선물로 주기 위하여 시부를 지어 만든 권축.

※龍馭(용어) : 용을 타다. 용을 타고 승천하다. 전하여 황제의 죽음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명종(明宗)의 붕어(崩御)를 말한다.

※皇華(황화) : 옛날 중국의 사신을 높여 부르는 말

※海堧(해연) : 바닷가의 땅이란 뜻이나, 중국에서 볼 때 바다 건너의 나라인 조선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인다.

※玉冊(옥책) : 예전에, 제왕과 후비의 존호를 올릴 때 송덕문을 옥 조각에 새겨 엮어 맨 책을 이르던 말.

※泥誥(이고) : 임금의 도장을 찍어 봉함한 직첩.

※操刀(조도) : 능숙하다는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칼을 잡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르게 하면 많이 다치게 될 것이다. [未能操刀而使割也 其傷實多]’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湛露(담로) : 가득히 내린 이슬이란 뜻으로 군주(君主)의 깊은 은혜를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많은 이슬이 내렸으니, 햇볕이 아니면 마를 수 없네. 질탕하게 밤에 술 마시니,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 [湛湛露斯 匪陽不晞 厭厭夜飮 不醉無歸]’라고 하였는데, 천자가 제후에게 연회를 베풀 때 부른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