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譯』蓬萊詩集(완역 봉래시집)-楊士彦/五言絶句(오언절구)

卽事 (즉사) 外

-수헌- 2025. 1. 26. 12:50

卽事  즉사 

孤煙生曠野 고연생광야

빈 들판에 한 줄기 연기 피어나고

殘月下平蕪 잔월하평무

조각달은 거친 지평선을 넘어가네

爲問南來雁 위문남래안

남으로 날아오는 기러기에 묻노니

家書寄我無 가서기아무

집에서 내게 부친 편지는 없느냐

 

 

佛頂臺次紫洞韻  불정대차자동운 

불정대에서 차식의 시를 차운하여

 

山岳爲肴核 산악위효핵

산악을 술안주와 과일로 삼고

滄溟作酒池 창명작주지

푸른 바다는 술 못으로 만들었으니

狂歌凋萬古 광가조만고

미친 듯 힘 다하도록 노래 부르며

不醉願無歸 불취원무귀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

 

懸瀑風前水 현폭풍전수

폭포에 걸린 물 앞에 바람불고

瑤臺天外山 요대천외산

하늘 밖의 산은 요대로구나

蕭然坐終日 숙연좌종일

종일토록 조용히 앉았노라니

孤鶴有餘閑 고학유여한

외로운 학처럼 한가할 뿐이네

 

圭峯入紫微 규봉입자미

규봉은 자미궁에 들었고

斗屋倚岩扉 두옥의암비

커다란 집은 바위문에 의지했네

邀客定僧出 요객정승출

손님 맞으려 스님이 나오니

白雲生滿衣 백운생만의

흰 구름 생겨 옷에 가득하네

 

 

贈遠上人  증원상인  

원상인에게 드리다.

 

遠師鳴雷鼓 원사명뇌고

대사께서는 멀리 뇌고를 울리며

乾坤頓覺掀 건곤돈각흔

건곤에서 문득 불법을 깨달았네

餘音散巖壑 여음산암학

남긴 말씀이 산골짜기에 흩어져서

草木盡欲言 초목진욕언

초목에게도 말을 다 하고자 하네

 

※頓覺(돈각) : 불교의 참뜻을 문득 깨달음.

 

 

有懷  유회  

그리움이 있어서

 

美人隔湘浦 미인격상포

미인이 상포에서 떨어져 있으니

一夕生秋風 일석생추풍

하룻밤에 가을바람이 일어나네

思之不可見 사지불가견

그리워해도 볼 수가 없으니

獨立亂山中 독립란산중

홀로 어지러운 산속에 서있네

 

※美人隔湘浦(미인격상포) : 미인(美人)은 중국 문학에서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이후 ‘마음속으로 흠모하거나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시어로 쓰인다. 당(唐)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도 초추야좌증오무릉(初秋夜坐贈吳武陵)이라는 시에서 미인격상포(美人隔湘浦)라는 표현으로 절친인 오무릉(吳武陵)을 미인(美人)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상포(湘浦)는 유종원(柳宗元)과 오무릉(吳武陵)이 상수(湘水)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었기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降仙樓 강선루 

日落黃牛峽 일락황우협

황우협에 해가 떨어지니

天低白帝城 천저백제성

하늘도 백제성 아래에 있네

陽臺有神女 양대유신여

양대에는 신녀가 있으니

莫遣雨雲行 막견우운행

운우만 하고 보내지 말게

 

※黃牛峽(황우협) : 중국 장강(長江)의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릉협(西陵峽)의 세 협곡을 삼협(三峽)이라 하는데 황우협(黃牛峽)은 서릉협(西陵峽)의 한 협곡이다. 우(禹) 임금이 삼협(三峽)을 개척할 때 무산(巫山)의 신녀(神女)가 토성(土星)에게 도와 달라고 하자, 토성이 큰 황소로 변해 도와주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白帝城(백제성) : 무산(巫山) 아래 무협(巫峽)을 끼고 있는 높다란 옛 성. 서한(西漢) 말년(末年)에 공손술(公孫述)이 사천을 차지하고 자칭 촉왕(蜀王)이라 하였다, 이때 우물에서 흰 기운이 뻗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형상이 백룡(白龍)을 닮았다 하여 스스로 백제 황제라 칭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해 백제성이라 하였다. 뒷날 삼국시대 유비(劉備)가 동오(東吳)에 패하여 이곳으로 쫓겨 와서 죽은 곳이기도 하다.

※陽臺(양대) : 초(楚) 나라 무산(巫山)에 있는 누대(樓臺)로 초대(楚臺)라고도 한다. 초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잘 때 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을 잤는데, 아침에 떠나면서 ‘저는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비가 되는데, 아침이면 양대(陽臺)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다. 이에 유래하여 남녀의 정교(情交)를 구름과 비와 나누는 정(情)이라 하여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한다.

【이 시는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강선루(降仙樓)의 절경을 초회왕의 양대(陽臺)의 전설에 비유하였다. 이 전설은 두보(杜甫)가 시에서 ‘백구황우협 조운모우사(白駒黃牛峽 朝雲暮雨祠)’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많은 중국 시인들의 시가 전한다.】

 

 

書玄緝詩軸  서현집시축  

현집의 시축에 쓰다

 

東華吾欲辭 동화오욕사

나는 조정의 직책을 사퇴하고

衣塵吾欲拂 의진오욕불

의복의 먼지를 떨쳐내 버리고

隨汝入名山 수여입명산

너를 따라서 명산에 들어가서

茹芝駐壯髮 여지주장발

지초 먹으며 장발로 살고 싶네

 

※東華(동화) : 동화(東華)는 송나라 궁성의 동쪽 문 이름인데, 입조(入朝)할 때 이 문을 이용했다. 전하여 도성이나 조정을 의미한다.

※壯髮(장발) : 이마에까지 내려와서 머리털이 난 것으로 제왕의 기상을 갖춘 것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굳센 머리카락이란 뜻으로 늙지 않고 젊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