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思 추사 李敏求 이민구
가을날의 생각
玉露傷瑤草 옥로상요초
맑은 이슬 내려 고운 풀 시들고
金風動碧林 금풍동벽림
가을바람이 푸른 숲에 불어오는
秋生大江素 추생대강소
가을 들어 큰 강의 물빛이 희고
日落萬峯陰 일락만봉음
해 지자 온 산에 어둠이 깃드네
念別關城遠 염별관성원
이별할 생각을 하니 관성은 멀고
將歸客路深 장귀객로심
나그네 길 돌아가려는 마음 깊네
小窓繁緖集 소창번서집
작은 창가에서 번다한 생각 드니
空外聽調砧 공외청조침
하늘 밖에서 다듬이질 소리 듣네
2
逝燕懷陽岸 서연회양안
떠나는 제비는 따뜻한 언덕 생각하고
窮蟬抱摵桐 궁선포색동
궁한 매미는 앙상한 오동에 매달렸네
我來如昨日 아래여작일
내가 여기에 온 것이 어제와 같은데
節去已秋風 절거이추풍
계절이 가고 벌써 가을바람 불어오네
海色黃雲盡 해색황운진
바다는 온통 누런 구름으로 덮여 있고
山聲碧樹空 산성벽수공
빈 나무 사이로 산이 우는소리 들리네
端憂逢暮序 단우봉모서
근심 끝에 저무는 계절을 만나게 되니
浩蕩憶秦中 호탕억진중
한양을 그리는 마음이 끝이 없구나
3
舊國黃茅瘴 구국황모장
고향 땅에 가을이 찾아왔는데
高秋碧海城 고추벽해성
가을 하늘 높고 바다처럼 푸르네
風飄雲葉亂 풍표운엽란
거센 바람에 구름과 낙엽 날리고
露泛月華淸 노범월화청
달빛에 젖은 이슬이 맑구나
老菊寒仍發 노국한잉발
늙은 국화는 추위 속에도 피고
傷禽暗自驚 상금암자경
상처 입은 새는 어둠을 겁내네
南來有烽火 남래유봉화
남쪽으로 오는 봉화가 있으니
夜夜寸心明 야야촌심명
밤마다 촌심을 밝히는구나
4
獨坐虛堂夜 독좌허당야
깊은 밤 빈집에 홀로 앉아서
秋宵盡五更 추소진오경
가을밤 오경을 모두 지새웠네
繁星仍守次 번성잉수차
뭇별들은 자리 지키고 있는데
片月近低城 편월근저성
조각달은 성 가까이 기울었네
草草區中趣 초초구중취
세상은 덧없이 달려만 가는데
茫茫海上情 망망해상정
바다 위의 정경은 아득하구나
晨風猶怨落 신풍유원락
새벽바람도 낙엽을 원망하면서
偏向葉間鳴 편향엽간명
유난히 나뭇잎 사이에서 우네
5
絶域愁仍病 절역수잉병
변방의 시름이 병으로 이어져서
孤城閉不開 고성폐불개
외로이 성에서 문 닫고 지내네
燕從今日去 연종금일거
제비는 오늘부터 떠난다는데
雁到此山廻 안도차산회
기러기는 이 산으로 돌아오네
海色窮秋霽 해색궁추제
가을이 가니 바다 빛깔은 맑고
邊聲薄暮哀 변성박모애
저물녘 변방 소리가 구슬프네
蕭條萬里外 소조만리외
적막하고 쓸쓸한 만 리 밖에서
書札幾時來 서찰기시래
서찰은 어느 때쯤 오려는가
6
玉衡斜漢界 옥형사한계
옥형은 은하수에 기울었고
珠斗掛城樓 주두괘성루
북두성이 성루에 걸렸는데
歲暮龍藏壑 세모용장학
세모에 용은 골짜기에 숨고
秋深鳥養羞 추심조양수
가을 깊어 새는 먹이를 저장하네
乾坤悲泛梗 건곤비범경
천지 사이 떠돌이 신세가 슬퍼서
滄海憶乘桴 창해억승부
푸른 바다에 배 띄우려 생각하니
客夜雄心折 객야웅심절
객지에서의 밤에 큰 뜻은 꺾이고
涼風鬢髮愁 량풍빈발수
서늘한 바람에 귀밑털만 시름겹네
7
濩落乾坤內 호락건곤내
천지 안에 쓸모없는 신세가 되어
蒼茫海甸通 창망해전통
아득한 바닷가를 돌아다녔네
征南迷毒霧 정남미독무
남으로 가서 독한 안개에 헤맸고
遡北結歸風 소북결귀풍
북으로 거스르는 바람에 막혔네
塞月渡寒水 새월도한수
변방의 달빛에 차가운 물 건너고
關雲伴落鴻 관운반낙홍
관문의 구름과 기러기와 짝했네
羈懷無處好 기회무처호
나그네 회포에 좋은 곳이 없으니
錯莫此宵中 착막차소중
이 밤중에 착잡하기만 하구나
8
納履循階闥 납리순계달
신발 신고 섬돌을 서성거리다가
移筇倚板扉 이공의판비
지팡이 옮겨 판자문에 기대서니
秋風遙寺出 추풍요사출
가을바람 먼 산사에서 불어오고
暮磬一僧歸 모경일승귀
저녁 풍경 소리에 스님이 돌아가네
入海故人少 입해고인소
바다에 들어오니 벗들은 드물고
過江鄕信稀 과강향신희
강을 건너니 고향 소식이 뜸하네
飄颻萬里意 표요만리의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을
欲其斷雲飛 욕기단운비
조각구름 따라 날아가고 싶구나
※秦中(진중) : 진중(秦中)은 진(秦) 나라의 도성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한양을 가리킨다.
※黃茅瘴(황모장) : 띠 풀이 누렇게 되는 병이라는 뜻으로 가을을 의미한다. 중국 광주(廣州) 지방에서는 여름을 청초장(靑草瘴), 가을을 황모장(黃茅瘴)이라 부른다고 한다.
※南來有烽火(남래유봉화) 夜夜寸心明(야야촌심명) :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는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병조좌랑(兵曹佐郎),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지냈는데, 이때의 우국 심정을 표현한 듯하다.
※玉衡, 珠斗(옥형, 주두) : 옥형(玉衡)은 북두칠성 가운데 다섯 번째 별이고, 주두(珠斗)는 북두칠성이 구슬처럼 꿰여 있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모두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泛梗(범경) : 물에 둥둥 뜬 나무 장승[木偶人]을 가리키는 말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의미한다.
※養羞(양수) :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8월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갈무리한다. [群鳥養羞]’라고 하였다.
※濩落(호락) : 넓고 크다는 뜻이나, 전하여 쓸모가 없는 것을 이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위왕이(魏王)이 혜자(惠子)에게 큰 표주박 씨를 주어 심었는데, 그 열매가 너무 커서, 물을 채우니 무거워서 혼자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잘라서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얕고 평평해서 쓸 곳이 없었다. 공연히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쓸모가 없어서 그것을 쪼개버렸다. [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착막(錯莫) : 적막하고 쓸쓸하다.
※ 乘桴(승부) : 잘못된 세상을 탄식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이라도 타고 바다에 나갈까 보다. [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하였다.
*이민구(李敏求,1589~1670) :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 또는 관해(觀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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