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토요일(16일)은 초복(初伏)이다. 복날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 하지(夏至) 후의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初伏), 하지 후의 네 번째 경일이 중복(中伏), 입추 뒤의 첫 경일이 말복(末伏)이 된다. 예로부터 이날은 개장국을 비롯해 각종 보양식과 과일로 양기를 돋우고 더위를 쫓기도 하였다. 복(伏)이란 말은 엎드려 숨는다는 뜻이다. 경일(庚日)은 오행(五行)상 金에 해당하고 金은 서늘한 가을을 의미하는데 金마저도 엎드려 숨을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無名子 尹愭(무명자 윤기)는 ‘복(伏)’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와 유래를 설명하고, 이날에 있었던 각종 고사를 인용하여 시를 지었다.
伏日 복일 尹愭 윤기 (無名子集)
伏藏金氣三庚中 복장금기삼경중
삼복중에 가을 기운이 엎드려 숨었으니
磔狗四門刱德公 책구사문창덕공
사문의 개 잡는 것은 덕공에서 시작됐네
盡日應閑靑瑣闥 진일응한청쇄달
종일토록 모든 문이 응당 닫혔을 터이니
避炎誰噏碧荷筩 피염수흡벽하용
더위 피할 벽하통은 누구와 마실까
詼諧割肉聞方朔 회해할육문방삭
동방삭은 익살 부리며 고기 잘랐다 하고
驕貴雕氷想國忠 교귀조빙상국충
양국충이 교만하게 얼음 새긴 일 생각하네
肯效熱行褦襶子 긍효열행내대자
더위 속 나다니는 내대자를 어찌 본받을까
羔羊斗酒樂無窮 고양두주악무궁
양고기와 말술에 즐거움이 끝이 없구나
※金氣 : 가을철의 기운. 오행(五行)에서 금(金)은 가을을 의미한다.
※磔狗四門刱德公(책구사문창덕공) : 사기 진본기(秦本紀)에 ‘진 덕공(秦德公) 2년, 초복날에 사문에서 개를 잡아 충해를 막았다’ 하였는데,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풍속이 여기에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碧荷筩(벽하통) : 연잎으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벽통배(碧筩杯)를 말한다. 위나라의 정각(鄭慤)이 삼복 무렵에 큰 연잎을 따다가 술 석 되를 담아서, 비녀로 연잎을 찔러 구멍을 내어 연줄기와 통하게 한 다음 연 줄기를 휘어 둥그렇게 코끼리 코〔象鼻〕처럼 만들어서 돌려가며 마셨는데, 이것을 벽통배(碧筩杯)라고 한다.
※東方朔(동방삭) :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해학(諧謔)을 잘하기로 이름났는데, 한 번은 복일(伏日)에 황제가 종관(從官)들에게 고기를 하사했는데 태관 승(太官丞)이 날이 저물도록 오지 않아 고기를 나누어 가질 수 없자, 동방삭이 칼을 들어 자기 몫의 고기를 잘라내어 가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楊國忠(양국충) : 양국충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실권자로, 양귀비(楊貴妃)의 6촌 오빠이다. 그는 복날이 되면 단단한 얼음으로 봉황이나 용 등 온갖 짐승 모양을 조각하여 왕공과 귀족들에게 선물했다 한다.
※褦襶子(내대자) : 사리를 분간할 줄 모르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내대는 여름철에 햇빛을 가리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쓰는 패랭이〔凉笠〕의 일종이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정효(程曉)의 시에 ‘지금 삿갓 쓴 사람이, 무더위에 남의 집 찾아왔네. 주인이 손님 왔다는 소리 듣고, 이를 어쩌나 하며 찡그리네.〔只今褦襶子 觸熱到人家 主人聞客來 嚬蹙奈此何〕‘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泮齋初伏 次人韻 반재초복 차인운 尹愭 윤기 (無名子集)
성균관 재실에서 초복에 남의 시를 차운하여
庚炎未解小龍團 경염미해소룡단
삼복더위에 작은 부채도 부치지 못하는데
分外豪家氷雪盤 분외호가빙설반
세도가처럼 얼음 쟁반은 분에 넘치는구나
養士均頒狗炒細 양사균반구초세
유생에게 골고루 개고기 조금씩 나눠주니
令人却憶酒杯寬 영인각억주배관
술잔에 너그럽던 사람들이 절로 생각나네
兒童故厭扇揮暑 아동고염선휘서
아이들은 예부터 더위에 부채질 싫어하니
槐杏時看風送寒 괴행시간풍송한
홰나무 은행나무가 시원한 바람 보내주네
到底酸儒多潦倒 도저산유다료도
마침내 무더위에 의욕 잃은 유생이 많으니
任敎行路一層難 임교행로일층난
멋대로 본받은 행로가 한 층 어려워지겠네
※泮齋(반재) : 泮(반)은 학교란 뜻으로 성균관을 의미하고, 泮齋(반재)는 성균관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小龍團(소룡단) : 작은 부채라는 말이다. 임금이 의장(儀仗)으로 ‘용 그림이 그려진 둥근 부채〔龍團〕’를 사용하기 때문에 격을 낮추어 ‘小’자를 쓴 것 같다.
※氷雪盤(빙설반) : 성균관 식당에서는 부채질이 금지되어 있는 대신, 삼복날 저녁 식사 시간에 주먹만 한 얼음이 1인당 한 덩이씩 제공되었다 한다. <無名子集 泮中雜詠>
初伏家獐縱曰些 초복가장종왈사
초복에 나오는 개장국이 적다고 해도
勝如中伏兩甘瓜 승여중복량감과
중복에 나오는 참외 두 개보다 낫고
最是西瓜末伏日 최시서과말복일
말복에 나오는 수박이 가장 좋아서
暫時能使爽喉牙 잠시능사상후아
잠시나마 입안을 시원하게 해 주는구나
<初伏進犬肉一楪 中伏進甘瓜二介 末伏進西瓜一介 近來則或只納幾文錢
초복진견육일접 중복진감과이개 말복진서과일개 근래칙혹지납기문전
초복에는 개고기 한 접시를 내주고 중복에는 참외 두 개를 내 주고 말복에는 수박 한 개를 내준다. 근래에는 그저 돈으로 몇 문(文)을 내주고 말기도 한다.>
伏日洪判尹邀與拈韻同賦 복일홍판윤요여념운동부 尹愭 윤기 (無名子集)
복날 홍 판윤이 초대하여 같은 운으로 함께 읊다.
丈人同巷許襟期 장인동항허금기
한 마을 어른께서 흉금 트기를 허락하여
佳節招邀厚意垂 가절초요후의수
좋은 명절에 초대하여 후의를 베푸셨네
荒誕德公禳磔後 황탄덕공양책후
황당하게 덕공은 개를 잡아 제를 지냈고
詼諧方朔割歸時 회해방삭할귀시
동방삭은 고기 베어 돌아가며 해학했네
蒸炎頓失三朝雨 증염돈실삼조우
찜통더위는 사흘 내린 비에 사라지고
老病渾消一局棊 노병혼소일국기
늙은이 병은 바둑 한 판에 사라졌네
乘醉欲還山日暮 승취욕환산일모
취하여 돌아오는 산길에 해가 저무니
穿林筇屐不嫌遲 천림공극불혐지
지팡이 짚고 숲 속 길로 더디 가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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