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동지 팥죽 - 李穀(이곡), 李穡(이색)

-수헌- 2021. 12. 21. 13:02

내일(22일)이 동지(冬至)인데...

예전에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사당에 올리고, 액막이로 집안 곳곳에 뿌리고. 이웃 간에도 나눠 먹었다. 특히 동지는 아세(亞歲) 즉 작은 설날이라 하여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동지 팥죽을 먹어야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줄 알았다. 그것도 팥죽의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다고 세어가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핵가족시대 아파트 생활이라 집에서 팥죽을 쑤는 집이 거의 없고, 프랜차이즈 죽 집에서 사 먹거나 혹 절에 가면 점심공양으로 먹을 수 있을듯한데 그 마저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절에서는 먹지 못한다고 하며, 나눠는 준다고 한다.

고려시대 대 문장가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그의 부친인 가정(稼亭) 이곡(李穀) 선생의 시에 동지 팥죽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豆粥 두죽     李穡 이색

팥죽

 

冬至鄕風豆粥濃 동지향풍두죽농

시골 풍속에 동짓날 팥죽을 짙게 쑤니

盈盈翠鉢色浮空 영영취발색부공

푸른 사발에 뜬 빛깔이 곱고 아름답네

調來崖蜜流喉吻 조래애밀류후문

꿀을 타서 입술과 목구멍에 흘려 내리면

洗盡陰邪潤腹中 세진음사윤복중

음사를 다 씻고 뱃속도 부드럽게 하겠네

 

盈盈(영영) : 곱고 아름다운 자태. 여자의 날렵하고 아름다운 자태. 사뿐사뿐한 걸음걸이. 방긋방긋 웃는 모양.

 

謝順菴冬至豆粥 兼呈朴敬軒 사순암동지두죽 겸정박경헌     李穀 이곡

순암의 동지 팥죽을 고마워하며 아울러 박경헌에게도 드리다.

 

陽復堅氷事已非 양부견빙사이비

동짓달에 얼음 어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曉窓冬粥莫予違 효창동죽막여위

새벽 창가의 동지 팥죽은 어김이 없네

咄嗟金谷味雖好 돌차금곡미수호

순식간에 마련한 팥죽 맛이 비록 좋아도

倉卒滹沱功不微 창졸호타공불미

창졸간에 올린 호타의 공도 작지 않았네

香積共分來紺宇 향적공분래감우

감우에서 나온 향적을 함께 나눠 먹으니

侯鯖誰羨出朱扉 후청수선출주비

주비에서 나온 후청을 누가 부러워하랴

何當鋤豆南山下 하당서두남산하

어찌하면 남산 아래 콩밭의 김을 매고

草露霑衣帶月歸 초로점의대월귀

이슬에 옷 적시고 달빛 아래 돌아올까

 

순암(順菴) : 고려말의 의선순암대선사(高麗 義旋順菴大禪師). 이 시는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순암 대선사가 보내준 팥죽에 감사하는 시이다.

 

陽復(양복) : 양의 기운이 회복된다는 뜻으로 동짓달(음력 11월)을 달리 이르는 말. 주역(周易)의 복괘(復卦)에서 유래하였다.

咄嗟(돌차) : 눈 깜짝할 사이.

金谷(금곡) : 금곡은 진(晉) 나라 부호(富豪) 석숭(石崇)의 원명(園名)인데, 석숭이 손님을 위해 팥죽을 대접하면서 한 번 호흡하는 사이에 마련하게 하였다.[爲客作豆粥 咄嗟便辦]고 한다. <진서(晉書),석숭열전(石崇列傳)>

倉卒滹沱功(창졸호타공) :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황제가 되기 전에 요양(鐃陽) 무루정(無蔞亭)에서 풍이(馮異)에게 팥죽을 대접받아 배고픔을 면하고, 또 남궁(南宮)에 이르러서 보리밥을 대접받은 뒤에 호타하(滹沱河)를 건너갔는데, 제위에 오르고 나서 풍이에게 “창졸간에 무루정에서 대접받은 팥죽과 호타하의 보리밥에 대한 후의를 오래도록 보답하지 못했다.[倉卒無蔞亭豆粥 滹沱河麥飯 厚意久不報]”라고 하면서 값진 물건을 하사한 고사가 있다. 그래서 후대에 팥죽과 보리밥에 호타(滹沱)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풍이열전(馮異列傳)>

香積(향적) : 향적여래(香積如來)가 잡수시는 향기 나는 향적반(香積飯)의 준말로, 사찰의 모든 음식을 가리킨다.

紺宇(감우) : 불교 사찰의 별칭.

侯鯖(후청) : 오후청(五侯鯖)의 준말이다. 고기와 생선을 합쳐서 만든 요리를 청(鯖)이라고 하는데, 서한 성제(成帝) 때 누호(樓護)가 왕씨(王氏) 가문의 다섯 제후들이 준 진귀한 반찬을 한데 합쳐서 요리를 만들고는 오후청이라고 칭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西京雜記>

朱扉(주비) : 대문을 붉은색으로 치장한 집으로, 귀족이 사는 고대광실을 가리킨다.

草露霑衣帶月歸(초로점의대월귀) :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원전거(歸田居)에 “남산 아래에 콩 심으니, 풀은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무네. 새벽에 일어나 잡초를 김매고, 달빛 띠고서 호미 메고 돌아오네. 좁은 길에 초목이 자라나니,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시네. 옷 젖는 것이야 아까울 것 없으나, 그저 농사만 잘됐으면. [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道狹草木長 夕露沾我衣 衣沾不足惜 但使願無違]”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앞 구절의 何當鋤豆南山下(하당서두남산하)와 함께 여기서 차용하였다.

 

* 이곡(李穀, 1298~1351) : 고려 말엽의 학자.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아버지이다.

 

稼亭集의 謝順菴冬至豆粥 兼呈朴敬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