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사명대사(四溟大師)는 1604년 7월 한양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가 1605년 5월 조선인 피로인 3,500여 명을 데리고 부산으로 돌아온다. 조선 조정은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전혀 그 행적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본토로 건너갔는지 여부와, 도쿠가와(德川家康)와의 회담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1605년 5월 12일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의 서신을 받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이때는 이미 사명대사도 거의 부산에 도착했을 무렵이니 사명대사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명대사는 5월에 귀국후 6월 초에 조정에 복명하고, 그해 10월 그믐께 묘향산에 들어가서 일본으로 가기 전에 입적한 스승 서산대사의 상(喪)을 뒤늦게 수제(守制) 하였다. 이후 경술(1610)년 8월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