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淵明과 和陶詩

和歸去來辭韻 癸丑 (화귀거래사운 계축) - 宋奎濂 (송규렴)

-수헌- 2023. 11. 10. 23:07

和歸去來辭韻 癸丑   화귀거래사운 계축     宋奎濂   송규렴  

귀거래사에 화운하다 계축년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我今去此將安歸 아금거차장안귀

나 이제 이곳을 떠나 돌아가려 하네

得不得曰有命兮 득불득왈유명혜

얻고 얻지 못함은 운명에 달렸다고 하니

復何喜而何悲 부하희이하비

다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

昔余遊乎上國兮 석여유호상국혜

옛날 내가 서울에서 지낼 적에

謂前軌其可追 위전궤기가추

선현의 길을 따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羌心勞而日拙兮 강심로이일졸혜

마음만 애가 탈뿐 날로 졸렬해지니

慨身事之將非 개신사지장비

내 몸이 장차 잘못될까 개탄했네

徒簪裾而哺啜兮 도잠거이포철혜

관리가 되어서 먹고 마시기만 하였으니

辱君食與君衣 욕군식여군의

임금이 주신 밥과 옷을 욕되게 하였네

縱塡海之誠篤兮¹ 종전해지성독혜

비록 바다를 메우는 정성이 두터워도

奈負山之力微¹ 내부산지력미

산을 짊어질 힘이 부족하니 어찌할까

睠玆鄕山 권자향산

이에 고향을 그리워하여

浩然來奔 호연래분

큰 뜻을 품고 달려왔네

幽居臨水 유거림수

물가에 숨어 지내며

草屋荊門 초옥형문

사립문에 초가집을 짓고

簞食瓢飮² 단사표음

대그릇에 밥 먹고 표주박으로 물 마셔도

至樂攸存 지락유존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그 속에 있네

瓦杯自酌 와배자작

질그릇 잔에 스스로 따라 마시니

不用金樽 불용금준

금 술잔도 필요 없구나

臨淸風而醉倒兮 임청풍이취도혜

취하여 쓰러져도 맑은 바람을 쐬니

喜爽氣之醒顔 희상기지성안

상쾌한 기운이 얼굴을 깨워서 즐겁고

時乘興而覓句兮 시승흥이멱구혜

때로는 흥이 일어 시구를 찾으니

字不勞於吟安 자불로어음안

힘들이지 않고 글자를 찾아 쉽게 읊네

聞至人之在世兮³ 문지인지재세혜

들으니 성인이 이 세상에 있을 때

貴遊心於冥關 귀유심어명관

명관에 마음 두는 것을 귀하게 여겨

聆雷霆而莫聞兮 영뢰정이막문혜

천둥소리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하고

覩泰山猶無觀 도태산유무관

태산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했지

嗟時俗之貿貿兮 차시속지무무혜

아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幾櫝買而珠還⁴⁾ 기독매이주환

어찌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가

嗤膠柱於趙侯兮⁵⁾ 치교주어조후혜

기러기발에 아교를 발라 조후를 조롱하고

笑斲輪於齋桓⁶⁾ 소착륜어재환

수레바퀴 깎는 비유로 제 환공을 비웃었지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야지

且卒歲以優遊 차졸세이우유

장차 삶을 마치도록 여유롭게 즐기리라

旣莫足爲世用兮 기막족위세용혜

이미 세상에서 쓰이지 못했는데

舍初服其焉求⁷⁾ 사초복기언구

초복을 버리고 무엇을 구할 수 있을까

居陋巷而自樂兮 거루항이자악혜

누추한 곳에 살아도 스스로 즐겁고

處安宅而無憂 처안댁이무우

편안한 집에 거처하니 근심이 없구나

惟稼穡之爲寶兮 유가색지위보혜

오로지 농사짓는 것을 보배로 여기며

恒服力乎田疇 항복력호전주

항상 밭두둑에서 열심히 일하리라

維山有月 유산유월

산에는 달이 떠 있고

維湖有舟 유호유주

호수에는 배가 있으니

呼儔侶而命駕兮 호주려이명가혜

친구를 불러서 수레를 타게 하여

指某水與某丘 지모수여모구

아무 언덕이나 물을 찾아다니리라

追東山之氣象兮⁸⁾ 추동산지기상혜

동산의 기상을 따르고

挹北海之風流⁹⁾ 읍북해지풍류

북해의 풍류를 끌어당기면서

沕與物而同春兮¹⁰⁾ 물여물이동춘혜

그윽이 만물과 더불어 봄을 느끼면서

聊任化而長休 요임화이장휴

조화에 맡겨 즐기면서 길이 쉬리라

 

已矣乎 이의호

그만두어야지

人生少壯能幾時 인생소장능기시

인생에서 젊은 날은 얼마나 될까

日月逝矣不曾留 일월서의불증류

가는 세월은 어찌 기다리지 않는가

餘年足可惜 여년족가석

남은 세월이 정말 아까우니

曷不脩身以俟之¹¹ 갈불수신이사지

어찌 몸을 닦으며 천명을 기다리지 않으리

功名本無分 공명본무분

공명은 본래 내 분수에 없고

富貴終難期 부귀종난기

부귀도 끝내 기약하기 어렵구나

余旣滋蘭之九畹兮¹² 여기자란지구원혜

내 이미 구원에다 난초를 심었으니

庶及時而耘耔 서급시이운자

때에 맞추어 김매고 가꾸어 살찌우리라

兢朝乾而夕惕兮¹³ 긍조건이석척혜

아침에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에 두려워하며

列左書與右詩 열좌서여우시

시경과 함께 서경을 좌우에 펼쳐 놓고

得聖賢而爲歸兮 득성현이위귀혜

얻어들은 성현의 말씀에 귀의하여

脚踏實地更何疑 각답실지경하의

몸소 실천한다면 무엇을 다시 의심하랴

 

 

<附尤齋先生小跋¹⁴⁾

宗人宋道源爲示所和歸去來 其辭致之高古 道源亦自知其不能與之上下矣 惟日乾夕惕之句 是淵明道不到者 而又淵明之所不屑者 只五斗米也¹⁵⁾ 其視道源之玉堂天曹 則還可爭優劣於其間耶 抑使淵明生於道源之後 則其將撫孤松而和此辭耶 殆難與俗人言也 崇禎昭陽赤奮若¹⁶⁾暮春日 華陽洞主人書

붙임 우재(尤齋) 선생의 소발(小跋)

종인(宗人) 송도원(宋道源)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운한 것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그 말의 정치(情致)가 높고 예스러움은 도원 스스로도 도잠(陶潛)과 상하를 따질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오직 “종일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까지 두려워한다.”라는 구절은 연명(淵明)도 말하지 못한 부분이다. 또한 연명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은 단지 오두미(五斗米)의 녹을 받는 지위였으니, 도원이 홍문관과 이조에 임명되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도리어 그 두 사람 사이에 우열을 따질 수 있겠는가. 만약 연명이 도원보다 후세에 태어났다면,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이 글에 화답했을까. 아마도 속인과는 말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숭정(崇禎) 계축년 저무는 봄날 화양동 주인(華陽洞主人)이 쓰다.>

 

※縱塡海之誠篤兮(종전해지성독혜) 奈負山之力微(내부산지력미)¹ : 나라를 위하는 정성은 지극하지만, 역량이 부족함을 비유한 말이다. 전설에 따르면, 염제(炎帝)의 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빠져 죽어 정위(精衛)라는 새가 되었는데, 그 원한으로 항상 서산의 나무나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 했다는 이야기와, 장자(莊子)에 ‘모기에게 산을 지게 하고 노래기에게 황하를 치달리게 한다면, 반드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使蚊負山, 商蚷馳河, 必不勝任矣.]’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簞食瓢飮(단사표음)² : 논어(論語)의 단사표음(簞食瓢飮)에서 온 말로 청빈한 생활 속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누린다는 말이다. 단사표음(簞食瓢飮)은 ‘어질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 [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한 공자(孔子)의 말씀에서 유래하였다.

 

※至人(지인)³ : 지극히 덕이 높은 사람. 성인.

 

※幾櫝買而珠還(기독매이주환)⁴⁾ : 근본과 지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 한비자(韓非子)에 ‘정나라에서 구슬을 파는 초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목란으로 궤를 만들고, 계수와 산초의 향을 입히고, 주옥을 엮어 장식하고, 붉은 옥으로 꾸미고, 물총새의 깃으로 장식하였더니, 정나라 사람은 그 궤만 사 가고 그 구슬은 돌려주었다. [楚人有賣其珠於鄭者, 爲木蘭之櫃, 薰以桂椒, 綴以珠玉, 飾以玫瑰, 輯以羽翠 . 鄭人買其櫝而還其珠.]’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嗤膠柱於趙侯兮(치교주어조후혜)⁵⁾ : 교주(膠柱)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의 준말로, 거문고의 줄을 괴는 기러기발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없도록 아교로 붙여 놓고 연주한다는 뜻으로,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趙) 나라의 명신 인상여(藺相如)가 조괄(趙括)에 대해 ‘왕께서 명망이 있다는 이유로 조괄을 쓰는 것은 기러기발에 아교 칠을 하고 거문고를 뜯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그의 아비가 지은 책만 읽어서 임기응변할 줄을 모릅니다.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笑斲輪於齋桓(소착륜어재환)⁶⁾ : 착륜(斲輪)은 수레바퀴를 깎는다는 말이다. 제 환공(齊桓公)이 당상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나무를 깎아 바퀴를 만드는 목수가 환공(桓公)에게, ‘수레바퀴를 여유 있게 깎으면 헐거워서 견고하지 못하고 너무 꼭 맞게 깎으면 빡빡해서 돌아가지 않으니 손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호응하는 것이어서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신(臣)이 아들에게도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신의 아들도 신에게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읽고 있는 옛 글도 역시 그 깊은 참뜻을 전하지 못하고,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하였다는 고사를 말한다.

 

※舍初服其焉求(사초복기언구)⁷⁾ : 초복을 버린 다는 것[舍初服]은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초복(初服)은 벼슬에 나아가기 전에 착용하던 옷이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나아갔으나 이미 들어가지 못하고 허물만 입었으니, 물러나 다시 나의 초복을 손질하리. [進不入以離尤兮 退將復脩吾初服]’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追東山之氣象兮(추동산지기상혜)⁸⁾ : 속세에 대한 마음을 접고 유유자적하겠다는 말. 동산(東山)은 진(晉) 나라 사안(謝安)의 별칭이다. 그가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에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면서 계속되는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유유자적했던 고와동산(高臥東山)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挹北海之風流(읍북해지풍류)⁹⁾ : 북해(北海)는 후한(後漢) 시대 공융(孔融)의 별칭인데, 공융(孔融)처럼 풍류를 즐기며 살겠다는 말이다.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은 ‘자리 위에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술동이 속에 술이 늘 비지 않는다면, 내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면서 술과 빈객을 사랑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沕與物而同春兮(물여물이동춘혜)¹⁰⁾ : 만물의 변화에 따라 그와 함께 소통하며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마음이 잘 조화되어 있으면 시원하게 트여서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밤이나 낮이나 변화가 끼어들 틈이 없게 하면 사물과 더불어 봄기운을 간직하게 된다. [使之和豫, 通而不失於兌, 使日夜無郤, 而與物爲春.]’라고 하였다.

 

※曷不脩身以俟之(갈불수신이사지)¹¹ :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몸을 닦고 천명을 기다림은 명을 세우는 것이다.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余旣滋蘭之九畹兮(여기자란지구원혜)¹² : 초야에 물러나 산다는 말이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에도 계속 인의(仁義)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내가 구원의 땅에 이미 난초를 심어 놓고, 다시 백 묘의 땅에 혜초를 심었노라.[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余.]’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兢朝乾而夕惕兮(긍조건이석척혜)¹³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까지 두려워하면 위태하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無咎]’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附尤齋先生小跋(부우재선생소발)¹⁴⁾ : 우재 선생(尤齋先生)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로, 송규렴(宋奎濂)이 쓴 화귀거래사운(和歸去來辭韻)에 대한 발문이다.

 

※只五斗米也(지오두미야)¹⁵⁾ : 오두미(五斗米)는 현령(縣令)의 녹봉을 말한다. 진(晉) 나라 도잠(陶潛)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군(郡)에서 독우(督郵)를 파견하자, 아전들이 관복을 입고 뵈어야 한다고 하니, 도잠이 ‘내가 어찌 오두미 때문에 향리의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힌단 말이냐.’라고 하며 그날로 관직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돌아왔다.

 

※崇禎昭陽赤奮若(숭정소양적분약)¹⁶⁾ : 숭정(崇禎)은 명(明) 나라의 연호이다. 이 당시 청나라의 연호는 강희(康煕)였으나, 송시열은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명나라의 연호인 숭정을 계속 사용하였다. 소양적분약(昭陽赤奮若)은 고간지(古干支)로, 소양(昭陽)은 계(癸)를 가리키고 적분약(赤奮若)은 축(丑)을 가리킨다. 따라서 숭정(崇禎) 계축년(1673, 현종 14)이다.

 

*송규렴(宋奎濂,1630~1709) : 조선후기 이조참의, 부제학,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도원(道源), 호는 제월당(霽月堂). 앞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를 쓴 송상기(宋相琦)의 부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