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歸去來辭 차귀거래사 趙緯韓 조위한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련다
世不我知可以歸 세불아지가이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돌아가도 되리라
自古不遇者非一 자고불우자비일
예부터 때를 만나지 못한 이가 하나가 아니니
吾何爲乎傷悲 오하위호상비
내 어찌 슬퍼하기만 할까
仰孤雲之高標¹⁾ 앙고운지고표
고운의 높은 인품을 우러러보니
邈淸風之難追 막청풍지난추
쫓기 어려운 청풍처럼 아득하고
瞻頭流之幽邃²⁾ 첨두류지유수
두류산의 그윽하고 깊숙한 곳을 우러러보니
絶人間之是非 절인간지시비
인간 세상의 시비가 끊어졌네
催潘岳之秋興³⁾ 최반악지추흥
반악의 추흥부처럼 반백이 되어서
拂張翰之征衣⁴⁾ 불장한지정의
장한처럼 나그네의 옷을 떨치면서
涉漢水之浩溔 섭한수지호요
아득히 일렁이는 한강을 건너서
辭終南之翠微 사종남지취미
푸르른 종남산을 하직하였네
浩然而歸 호연이귀
호탕한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策馬南奔 책마남분
말을 채찍질하여 남으로 달렸네
朝發京華 조발경화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夕至衡門⁵⁾ 석지형문
저녁에 오두막집에 도착했네
玉堂金馬⁶⁾ 옥당금마
금마 옥당이야
匪我思存 비아사존
날 그리워하지 않겠지만
可以供老 가이공로
노년을 이바지 할 수 있고
樂我瓢尊 악아표존
술잔은 날 즐겁게 하리라
念誰昔之嬰禍 념수석지영화
지난날 겪었던 재화를 생각하니
羌魄悸而汗顏 강백계이한안
아 혼백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는구나
食同魚而滅耳⁷⁾ 식동어이멸이
같은 생선을 먹는데 귀가 없다면
豈人心之所安 기인심지소안
어찌 인심이 편안하겠는가
饕薄祿而營生 도박록이영생
박한 녹봉을 탐하며 생계 꾸리는 것은
縱軀命之所關 종구명지소관
설령 목숨에 관계된 것일지라도
較得失於平生 교득실어평생
평생의 득실을 따져보아서
盍遐擧而大觀 합하거이대관
어찌 멀리 올라 큰 것을 보지 않으랴
矧年老而多病 신년로이다병
하물며 늙어가며 병이 많으니
可卷懷而求還 가권회이구환
뜻을 접고 돌아가고자 할 만하고
世雖棄乎君平⁸⁾ 세수기호군평
세상이 비록 군평을 버린다 해도
道卽存於蜺桓⁹⁾ 도즉존어예환
도는 바로 예환(鯢桓)에 남아있다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구나
聊卒歲而優游 요졸세이우유
그저 세월이나 즐기면서 한가로이 놀며
臥一壑之煙霞 와일학지연하
안개 노을이 낀 골짜기에 누웠으니
竟何慕而何求 경하모이하구
결국 무엇을 그리워하고 구하려 할까
當粱肉於晩食 당량육어만식
식사가 늦으면 고량진미처럼 맛있고
替榮華於無憂 체영화어무우
영화를 버리면 근심이 없다는 것을
古人先我而實獲 고인선아이실획
옛사람이 나보다 먼저 알았으니
欽往迹而爲疇 흠왕적이위주
지난 자취를 흠모해 농사를 지으리
顏闔鑿坏¹⁰⁾ 안합착배
안합(顔闔)은 담장을 뚫고 도망하였고
管寧浮舟¹¹⁾ 관녕부주
관녕(管寧)은 배를 타고 돌아왔으니
或潛身於滄 혹잠신어창
어떤 이는 창해에 몸을 숨겼고
或絶響於林丘 혹절향어림구
어떤 이는 산림에서 명성이 끊어졌네
雖出處之異路 수출처지이로
비록 나아가는 곳의 길은 달리했으나
蓋明哲之同流 개명철지동류
대개 명철함은 같은 흐름이었지
顧余志之異是 고여지지이시
생각해 보니 내 뜻은 이들과 달라서
但有意於歸休 단유의어귀휴
다만 돌아가서 쉬는 데 뜻이 있네
已矣乎
그만두어야지
人生富貴在何時 인생부귀재하시
내 인생에 부귀함이 언제 있었을까
歲月如流不可留 세월여류불가류
유수 같은 세월은 잡아둘 수가 없구나
吁嗟乎 우차호
아~아~
舍此將安之 사차장안지
이곳에서 편히 쉬려고 하네
唐虞不復見¹²⁾ 당우불부견
요순(堯舜)을 다시 볼 수가 없으니
巢許非所期¹³⁾ 소허비소기
소허(巢許)는 기약할 바가 아니구나
甘終身而倘佯 감종신이당양
기꺼이 종신토록 한가로이 거닐면서
趁春耕而夏耔 진춘경이하자
봄에는 밭을 갈고 여름에는 김을 매야지
遡長風而放歌 소장풍이방가
항상 바람을 맞으면서 노래 부르고
迎素月而哦詩 영소월이아시
밝은 달을 맞이하여 시를 지어야지
旣得所而定居 기득소이정거
이미 자리를 찾아 거처를 정했으니
肯從詹尹決所疑¹⁴⁾ 긍종첨윤결소의
어찌 첨윤에게 물어 의문점을 해결하리
※孤雲(고운)¹⁾ :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말한다.
※頭流(두류)²⁾ : 두류산(頭流山)으로 현재의 지리산(智異山)을 말한다. 조위한(趙緯韓)은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폐고(廢錮.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음)를 당하고, 이후 인목대비 폐출 논의가 시작되자 벼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1618년 삶의 터전을 모친의 친정이 있던 남원으로 옮겨 지리산 유람을 다녔는데, 이때 이 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를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催潘岳之秋興(최반악지추흥)³⁾ : 반악(潘岳, 247년~300년)은 중국 서진 시대의 시인 겸 문인으로 자는 안인(安仁)이다. 그가 지은 추흥부(秋興賦)는 관직에 대한 자신의 피로와 정체된 관료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였는데, 그 추흥부’(秋興賦) 서(序)에 ‘내 나이 서른둘에 처음 흰 머리카락 두 올을 보았네. [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고 한 표현에 비유하였다.
※張翰(장한)⁴⁾ : 장한(張翰)은 진나라 때의 문인이다.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동조연(東曹掾)으로 있을 때, 어느 날 가을바람이 일어나자 고향인 강동(江東)의 줄나물〔菰菜〕과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한데, 어찌 수 천리 타관에서 벼슬하며 좋은 벼슬이라 할 수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 以要名爵乎〕’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있다.
※衡門(형문)⁵⁾ : 두 기둥에다 한 개의 횡목을 질러 만든 허술한 대문. 즉 허술한 옛집을 의미한다.
※玉堂金馬(옥당금마)⁶⁾ : 한(漢) 나라 때 대궐의 옥당전(玉堂殿)과 금마문(金馬門), 한림원. 금마옥당(金馬玉堂). 우리나라에서는 홍문관을 옥당이라 했다.
※食同魚而滅耳(식동어이멸이)⁷⁾ :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식어무반 물승노마(食魚無反 勿乘駑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제(齊) 나라의 재상을 지낸 안자는 이 말을 ‘백성의 힘이 다할 때까지 부리지 말라 [毋盡民力乎]와 ‘불초한 자를 측근으로 등용하지 말라 [則無置不肖于側乎]’고 풀이했다. 생선을 뒤집어서까지 먹어치우면 백성의 고혈을 빠는 것과 같고 능력 없는 관료를 높은 자리에 앉히면 눈과 귀가 가려져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니 식어(食魚)를 백성을 다스림에 비유하였다. 주역(周易)에 하교멸이 총불명야(何校滅耳 聰不明也)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형틀에 채워져서 귀가 잘리는 것‘은 듣는 것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백성을 다스림에 귀가 밝지 못하다면’으로 이해된다.
※君平(군평)⁸⁾ : 한(漢) 나라 때 복술가(卜術家)인 엄준(嚴遵)의 字이다. 그는 사천(四川) 성도(成都)에서 점을 쳐 주고 살았는데, 백전(百錢)을 벌면 가게 문을 닫고 발을 내린 다음 사람들에게 노자(老子)를 가르쳤다 한다.
※鯢桓(예환)⁹⁾ :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고래가 헤엄치는 물도 연못이고, 고요히 멈추어 있는 물도 연못이며, 흘러가는 물도 연못이니, 연못에는 아홉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번에 계함(季咸)에게 보여 준 것은 세 가지에 해당한다. [鯢桓之審爲淵 止水之審爲淵 流水之審爲淵 淵有九名 此 處三焉]’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이는 열자(列子)가 그의 스승인 호자(壺子)에게 스승의 도(道)가 제일인줄 알았는데 당시 관상을 잘 보는 무당 계함(季咸)의 도(道)가 더 높은 것 같다고 하자, 호자(壺子)가 ‘나는 너에게 껍데기는 전수해 주었지만, 알맹이는 아직 다 전해주지 않았는데, 너는 참으로 도를 터득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하면서 도의 근본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顏闔鑿坏(안합착배)¹⁰⁾ : 안합(顏闔)은 노(魯) 나라의 은사(隱士)인데 ‘노나라의 군주가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폐백을 들려 보냈더니 뒷담을 뚫고 도망쳤다. [顏闔魯君欲相之而不肯 使人以幣先焉 鑿坏而遁之]’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管寧浮舟(관녕부주)¹¹⁾ : 관녕(管寧)은 한(漢) 나라 때의 은사(隱士)로 북해(北海) 사람인데, 요동(遼東)에서 37년을 은거하다가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고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삼국지 위서 관녕전(三國志 魏書 管寧傳)>
※唐虞(당우)¹²⁾ : 당(唐)은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 임금과 제순 유우씨(帝舜有虞氏)로 불리는 순(舜) 임금을 말한다.
※巢許(소허)¹³⁾ : 소허(巢許)는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를 말한다. 소부는 속세를 떠나 나무 위에 살았기에 소부라 하는데, 요 임금이 천하를 맡기려 해도 받지 않았고, 허유는 요 임금이 천하를 물려준다 하자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허유가 재차 요임금의 선양제의를 받자 귀가 더러워졌다며 기산 영천(箕山潁川) 강물에 귀를 씻었다. 이를 본 소부(巢父)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 한다.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는 세속의 부귀공명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詹尹(첨윤)¹⁴⁾ : 첨윤(詹尹)은 초나라의 복관(卜官, 점치는 관리) 정첨윤(鄭詹尹)을 말한다. 굴원(屈原)이 주위의 모함으로 강남땅으로 유배당하게 되었을 때, 첨윤(詹尹)에게 자신이 끝까지 충정(忠情)을 지켜야 하는지, 뜻을 굽히는 게 좋은지 점을 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첨윤이 점을 치더니 점을 쳐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니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뜻대로 나가라고 말하였다 한다.
*조위한(趙緯韓,1567~1649) : 조선시대 직제학, 공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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