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興十絶句 추흥십절구 李敏求 이민구
가을 흥취. 열 수의 절구
西望東臺晴日光 서망동대청일광
서쪽에서 동대를 보니 개인 햇살이 빛나서
朝來不省曉來霜 조래불성효래상
아침이 와도 새벽 서리 내린 줄을 몰랐네
阿誰着此丹靑手 아수착차단청수
누가 언덕에다 이런 단청을 그려 입혀서
幻出高林赤又黃 환출고림적우황
높다란 숲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만들었나
日日來來得又抛 일일래래득우포
얻었다가 또 버리듯 매일 오던 날 들이
流光已涉九秋交 류광이섭구추교
빛처럼 흘러가서 벌써 가을도 다 지났네
今朝送盡南歸燕 금조송진남귀연
오늘 아침 남으로 가는 제비 다 보냈지만
猶爲明年護舊巢 유위명년호구소
그래도 내년을 위해 옛 둥지는 지켜야지
秋日燈前蟋蟀鳴 추일등전실솔명
가을날 등불 앞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常時入耳兩無情 상시입이량무정
평소 들을 때는 아무런 느낌 없었는데
悽然客臥關山夜 처연객와관산야
나그네가 관산의 밤에 쓸쓸히 누우니
知是愁人釀淚聲 지시수인양루성
시름겨운 사람 눈물짓게 함을 알겠네
四序平分秋易傷 사서평분추역상
사철은 고른데 가을은 마음 상하기 쉽고
晝何憭慄夜何長 주하료률야하장
낮은 얼마나 쓸쓸하고 밤은 얼마나 긴지
淸霜已改千林碧 청상이개천림벽
맑은 서리가 벌써 온 숲의 푸른빛을 바꾸니
病樹寧辭一葉黃 병수녕사일엽황
병든 나뭇잎 시드는 걸 어찌 면할 수 있으랴
木落天高秋潦乾 목락천고추료건
가을장마 걷히니 낙엽 지고 하늘 높은데
故園東望路何難 고원동망로하난
고향 가는 동쪽 길은 어찌 그리 험한가
關山八月西風急 관산팔월서풍급
관산 팔월에 가을바람 세게 불어오니
今夜松楸白露寒 금야송추백로한
오늘 밤 선영에는 맑은 이슬이 차겠네
邊城霜落刺楡黃 변성상락자유황
변방 성에 서리 내려 시무나무 시들고
天末高風送雁行 천말고풍송안행
하늘 높은 바람이 기러기 행렬 보내는데
八月關河消息斷 팔월관하소식단
팔월이 되니 관하에는 소식이 끊어지니
故園歸路入秋長 고원귀로입추장
가을 들어 고향에 돌아갈 길 멀어졌네
天畔孤城落日邊 천반고성락일변
해가 저무는 하늘가 외로운 성 주변의
高秋物色遍山川 고추물색편산천
산천에 두루 펼친 가을 물색을 뽐내네
寒花獨保風霜後 한화독보풍상후
찬 국화는 풍상 뒤에도 홀로 꼿꼿한데
腐草空慙雨露前 부초공참우로전
풀은 우로 앞에 썩으니 괜히 부끄럽네
爛熳東籬九日杯 난만동리구일배
동쪽 울타리 중양절 술자리 무르익으니
高情逸興倂相催 고정일흥병상최
높은 정과 멋진 흥을 나란히 일으키네
蕭條宋玉悲秋恨 소조송옥비추한
송옥이 쓸쓸히 가을의 한을 슬퍼한 것이
半爲當年作賦才 반위당년작부재
절반은 그 당시 부를 짓는 재주 되었네
殊方行止本無依 수방행지본무의
이역을 떠돌면서 본래 의지할 곳 없는데
客舍簞瓢計更違 객사단표계경위
객사의 음식마저도 계획과 어긋나는구나
秋後歲功收得少 추후세공수득소
가을에 한해 농사 수확이 변변치 않은 건
春間水稻種來稀 춘간수도종래희
봄철에 벼 종자를 적게 심어서겠지
孤城又對菊花斑 고성우대국화반
고성에서 아롱진 국화를 또 마주했는데
落日行雲兩不還 낙일행운량불환
지는 해와 떠가는 구름은 돌아오지 않네
六載故人無一字 육재고인무일자
옛 친구들 육 년이나 소식 한 자 없으니
世間窮處是關山 세간궁처시관산
세상의 궁벽한 곳이 바로 관산이로구나
※九秋(구추) : 음력 구월의 늦가을을 의미함.
※松楸(송추) : 송추(松楸)는 주로 묘지에 많이 심는 나무들로, 분묘(墳墓)나 선영을 의미한다.
※刺楡(자유) : 자유(刺楡)는 느릅나뭇과의 낙엽교목으로, 시무나무라고 한다. 스무나무라고도 하며, 옛날 이정표 대신 이십 리마다 심어서 이정표를 대신했다고도 한다.
※宋玉(송옥) : 송옥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 문인인데, 가을의 쓸쓸함이 송옥의 부(賦) 창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실제 송옥의 작품에 ‘슬프다, 가을의 기운이여. 쓸쓸하구나. 초목은 지고 쇠한 모습으로 변하였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와 같은 작품이 있다.
※殊方(수방) : 이역(異域), 타지(他地).
※簞瓢(단표) : 도시락과 표주박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민구(李敏求,1589~1670) :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 관해(觀海). 병자호란 때 강도 검찰 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어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해 배편을 준비했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왕이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소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 난이 끝난 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영변에 유배되었다가 아산으로 옮겨졌다. 1649년에 풀려난 뒤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이 시의 첫 구절의 동대(東臺)가 영변의 약산에 있는 봉우리임을 생각하면 이시는 영변 유배 시에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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