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방치되어 있던 병풍을 우연히 확인하게 되었다. 아내가 혼수로 가져온 병풍이라 40여 년이 흘렀는데, 아파트 생활에 사용할 일이 없어 그 내용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확인해 보니 적힌 시의 내용이 요즘의 내 처지와 같아 보인다. 글씨는 소암(昭岩)이란 분이 추사체로 쓴 글씨로 찾아보니 다른 병풍 작품도 많이 보이는데, 어떤 분인지 확인이 안 돼서 아쉽다.
飮酒看牡丹 음주간모란 劉禹錫 유우석
모란을 보면서 술을 마시다
今日花前飮 금일화전음
오늘 꽃 앞에 두고 술을 마시는데
甘心醉數杯 감심취수배
기꺼운 마음에 몇 잔술에 취한다
但愁花有語 단수화유어
다만 걱정은 저 꽃이 말을 한다면
不爲老人開 부위노인개
늙은이 위해서는 피지 않는다 하리
※유우석(劉禹錫,772~842): 중당(中唐) 시대의 시인으로 자는 몽득(夢得)이다. 백거이(白居易)와 친밀히 지내며 시작활동을 활발히 하였으며, 작품집으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이 있다.
題兒雲林竹石圖 제예운림죽석도 高遜志 고손지
예운림의 죽석 그림에 제함
卷石不盈尺 권석불영척
한 줌의 돌은 한 자 높이도 못 채우고
孤竹未成林 고축미성림
대나무 한그루로는 숲을 만들 수 없네
惟有歲寒節 유유세한절
오로지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乃智君子心 내지군자심
마침내 군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네.
※고손지(高遜志) ; 이름을 손지(巽志)로도 쓴다. 명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사민(士敏). 저서에 색암집(嗇庵集)이 있으며, 이숭인(李崇仁) 정몽주(鄭夢周) 등 고려 말기의 학자들과도 교유했다고 하며, 이숭인(李崇仁)의 도은집(陶隱集)에 발문(跋文)을 써주기도 했다.
竹里館 죽리관 王维 왕유
獨坐幽竹裏 독좌유죽리
대숲 속 깊은 곳에 홀로 앉아서
彈琴復長嘯 탄금부장소
거문고 뜯다가 휘파람도 불어 본다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 속이라 아무도 모르는데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밝은 달이 찾아와 비추어 주네
贈弟穆十八 증제목십팔 王维 왕유
목십팔 아우에게 주다
與君靑眼客 여군청안객
반가운 손님인 그대와 더불어
共有白雲心 공유백운심
흰 구름 같은 마음 함께 했었지
不向東山去 불향동산거
동산을 향하여 떠나지 못하니
日令春草深 일령 춘조심
날마다 봄풀만 무성히 자라겠네
※靑眼(청안) : 백안시(白眼視)와 달리 사람을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예교에 구애받지 않고 靑眼을 하거나 白眼(흰 눈동자)를 만들 수 있어서 세속 예의에 갇힌 선비를 보면 흰 눈동자로 그들을 대했다. 혜희(嵆喜)가 찾아오자 곧 완적은 백안을 하니 혜희는 기뻐하지 않고서 물러갔다. 혜희의 아우 혜강(嵆康)이 그 소식을 듣고 곧 술을 마련하고 거문고를 끼고 찾아오니, 완적이 크게 기뻐하며 곧 청안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예법에 갇힌 선비들은 그를 미워하길 원수처럼 하게 됐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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