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次應中秋懷韻 (차응중추회운) - 李玄逸 (이현일)

-수헌- 2023. 10. 6. 13:59

次應中秋懷韻   차응중추회운      李玄逸   이현일

응중의 추회 시에 차운하다.

 

半夜秋聲徹戶涼 반야추성철호량

한밤 벌레 소리 문을 통해 서늘하게 들리기에

起看庭樹著衰黃 기간정수저쇠황

일어나 뜰의 나무 보니 매우 누렇게 시들었네

寂寥已自希夷混 적요이자희이혼

적요한 신세 이미 스스로 희이와 뒤섞였는데

遲暮還嗟節序忙 지모환차절서망

만년에 돌아보며 세월이 빠름을 탄식하는구나

揚水束薪吾極憤 양수속신오극분

나는 양수속신에 대해 지극히 분노하였는데

大東杼軸爾偏傷 대동저축이편상

너는 대동저축에 대해 몹시도 상심하는구나

窮廬百感知徒耳 궁려백감지도이

외진 집 안에서의 온갖 감회 그저 부질없느니

笙鶴常思出八方 생학상사출팔방

생학 타고 팔방으로 나가는 생각만 하고 있네

 

余常恨國恥未雪 中弟每憂民隱不澤 故頸聯引詩及之

여상한국치미설 중제매우민은불택 고경련인시급지

나는 늘 국치(國恥)를 씻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고, 중제(中弟)는 매양 고통받는 백성에게 은택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경련(頸聯)에서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언급하였다.〉

 

※應中(응중) : 작자 이현일(李玄逸)의 형제 가운데 넷째인 이숭일(李嵩逸,1631~1698)의 자이다. 호는 항재(恒齋)이고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냈다.

 

※希夷(희이) : 인간세상이 아닌 명계(冥界)를 의미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 하였다. 당(唐) 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홍몽(鴻蒙;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상태)을 뛰어넘고 희이(希夷)와 뒤섞여, 적요(寂寥)하게 살아 아무도 나를 아는 이가 없다.’고 하였다.

 

※揚水束薪吾極憤(양수속신오극분) : 시경(詩經) 양지수(揚之水)에 ‘느릿느릿 흐르는 물은 묶은 섶도 흘려보내지 못한다.〔揚之水 不流束薪〕’ 하였다. 이 편의 내용은 주(周) 나라 왕실을 침공해 아버지인 유왕(幽王)을 살해한 신(申) 나라를, 평왕(平王)이 토벌하기는커녕 오히려 초(楚) 나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보내어 수자리를 서게 한 것을 빗대어 조롱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인조18년에 조정이 명(明) 나라를 침공하는 청(淸) 나라를 토벌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병을 보낸 일을 통탄하고 있다.

 

※大東杼軸(대동저축) : 시경(詩經) 대동(大東)〉에 ‘대동과 소동에 베틀 북이 다 비었도다.〔大東小東 杼軸其空〕’고 하여, 동쪽에 있는 크고 작은 제후국(諸侯國)들이 주(周) 나라 왕실을 위한 부역(賦役)에 시달리고 있음을 풍자하였다.

 

*이현일(李玄逸,1627~1704) : 조선후기 사헌부장령,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