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次韻洌水久雨傷稼一 (차운열수구우상가 1) - 淞翁 (송옹)

-수헌- 2023. 7. 14. 15:16

次韻洌水久雨傷稼一    차운열수구우상가 1     淞翁   송옹  

열수의 '오랜 비에 심어 놓은 곡식이 상하다' 운을 차운하다.

 

一氣周流有縮溢 일기주류유축일

천기가 두루 흐름에는 줄고 넘침이 있으니

時來則然非天失 시래즉연비천실

때에 따라 그런 거지 하늘의 잘못 아니네

舟車簦笠互爲用 주거등립호위용

배 수레 우산 삿갓은 서로 쓸모가 있기에

聖人裁制以育物 성인재제이육물

성인께서 자르고 지어서 만물을 만들었네

 

曰暘曰雨豈或然 왈양왈우기혹연

맑거나 비 오는 게 어찌 늘 같을 수 있나

此語本從韓公出 차어본종한공출

이 말은 본디 한공으로 부터 나온 것인데

此理昭然倘有之 차리소연상유지

이 이치가 밝아 혹시라도 쓰임새가 있어도

媟媟何從女郞乞 설설하종여랑걸

무엇을 좇아 예의도 없는 여랑에게 비는가

 

今年旱亢又雨淫 금년한항우우음

금년에는 심한 가뭄에 비 또한 너무 내려

風魃雲蜧恣隳突 풍발운려자휴돌

바람과 가뭄 구름 비가 마구 횡포 부리니

愁來仰頭空咄咄 수래앙두공돌돌

시름겨워 머리 들고 공연히 놀라 한탄하니

說天無靈況說佛 열천무령황렬불

하늘도 영험 없는데 하물며 부처라 다를까

 

先生飢吟不離席 선생기음불리석

선생은 굶으면서도 자리 뜨지 않고 읊으니

滿屋詩書誰復秩 만옥시서수부질

집안 가득한 시와 글 누가 다시 정리할까

老憂眞同夔蚿憐 노우진동기현련

늙은이 근심은 기가 현을 부러워함과 같고

病情或似駏蛩卹 병정혹사거공휼

병중의 생각은 항상 거공의 근심과 같구나

 

書來要自三過讀 서래요자삼과독

글이 오면 꼭 스스로 세 번 이상을 읽으니

珠璣滿眼驚一一 주기만안경일일

눈에 가득 주옥같은 문장 하나하나 놀랍네

扶持賴有神明力 부지뢰유신명력

천지신명의 힘에 보살핌이 넉넉히 있어서

可憐天生花作骨 가련천생화작골

천생에 타고난 아름다운 몸이 사랑스럽구나

 

已知酸醎異好惡 이지산함리호오

이미 시고 짠 것의 좋고 싫음을 알았으니

可能門竇無圭蓽 가능문두무규필

자그마한 오두막집이 없어도 견딜 수 있네

興來弄筆究陰晴 흥래롱필구음청

흥이 나면 맑고 흐림 탐구해 붓을 놀리니

語言疏朗氣鬱屈 언어소랑기울굴

언어는 산뜻하나 기분은 울적하기만 하네

 

我居濱水無一里 아거빈수무일리

나는 마을도 하나 없는 물가에 살고 있으니

却恐黿鼉爭入室 각공원타쟁입실

자라와 악어가 집에 들어와 다툴까 두렵구나

盈虧洄遹莫知由 영휴회휼막지유

차고 줄며 좇고 거스르는 까닭 알 수 없으나

坂田之特尙有鬱 판전지특상유울

비탈진 밭도 특별하여 아직은 무성하구나

 

安知極備不極無 안지극비불극무

어찌 극비가 도리어 극무가 아닌 줄을 알까

請君更莫思杲日 청군갱막사고일

그대는 밝은 태양을 다시는 생각을 마시게

 

※洌水(열수) : 열수(洌水)는 한강의 옛 이름인데, 다산의 별호(別號)로 쓰였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고향인 양주 소내[苕川;소천] 부근의 열수(洌水)에서 자랐다.

 

※淞翁(송옹) : 조선후기 진안현감, 정언, 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윤영희(尹永僖, 1761~?), 송옹(松翁)은 그의 호이며. 자는 외심(畏心)이다, 이 시는 다산이 구우상가(久雨傷稼)라는 시를 지어 보여주자 그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曰暘曰雨(왈양왈우) :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 서징(庶徵)에 ‘여러 가지 징험이란, 비 오는 것과, 햇빛 나는 것과, 더운 것과, 추운 것과, 바람 부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두루 오고, 각기 그 발생 순서대로 한다면, 모든 풀이 무성하여질 것입니다. 한 가지만 너무 갖추어져도, 흉하고, 한 가지만 너무 없어도, 흉합니다. [庶徵 曰雨 曰暘 曰燠 曰寒 曰風 曰時 五者來備 各以其敍 庶草蕃廡 一極備凶 一極無凶]’ 한 데서 나온 말이다.

 

※韓公(한공) : 당(唐) 나라 시인 한유(韓愈), 한유의 시 침주기우(郴州祈雨)에 ‘여랑의 혼신께 비를 비는데 구운 고기 제수가 정결하며 많구나. [乞雨女郞魂 炰羞潔且繁]’라는 구절이 있다. 여랑(女郞)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영험이 있는 소녀의 혼신을 뜻함.

 

※夔蚿(기현) : 기(夔)는 발이 하나인 벌레이고, 이고, 현(蚿)은 지네처럼 발이 많이 달린 벌레인데,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기(夔)는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현(蚿)은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한다. [夔憐蚿 蚿憐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즉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을 부러워하는 인정을 비유한 것이다.

 

※駏蛩(거공) : 항상 떨어지지 않고 붙어살면서 서로 도와준다는 거허(鉅虛)와 공공(蛩蛩)이라는 동물을 말한다. 거허(鉅虛)와 공공(蛩蛩)은 궐(蟨)이라는 짐승이 따주는 감초를 먹고사는데, 잘 달리지를 못하는 궐(蟨)에게 위험이 닥치면 거허(鉅虛)와 공공(蛩蛩)이 궐(蟨)을 업고 달아난다고 한다. 이는 서로 유능한 것과 유능하지 못한 것을 보완하여 환난에 서로 의지함을 말한다. 한유(韓愈)가 맹교를 언급한 시에 ‘시종일관 거공처럼 함께 살고 싶은데, 동야는 머리를 돌려 보지도 않는구나.〔願得終如鉅蛩, 東野不廻頭.〕’라는 구절이 있다. 《韓昌黎集 卷5 醉留東野》

 

※珠璣(주기) : 주옥(珠玉), 아름다운 문장, 주옥같은 글귀.

 

※규필(圭蓽) : 규두필문(圭竇蓽門)의 준말로, 시골 오두막집을 말한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선비는 한 이랑의 밭과 집, 벽만 있는 좁은 방에 대를 쪼개어 작은 사립문을 달고 쑥대로 이은 집에 깨진 옹기로 들창을 달고, 나갈 때는 옷을 갈아입고 이틀에 하루치의 음식을 먹는다. [儒有一畝之宮 環堵之室 篳門圭窬 蓬戶甕牖 易衣而出 幷日而食 ]’라고 하였다.

 

※極備, 極無(극비, 극무) : 너무 많음과 너무 적음을 의미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한 가지가 너무 많아도 흉하며, 한 가지가 너무 없어도 흉하다.〔一極備 凶 一極無 凶〕’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극비가 극무보다는 낮지 않느냐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