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久雨傷稼 (구우상가) - 丁若鏞 (정약용)

-수헌- 2023. 7. 11. 22:25

久雨傷稼   구우상가      丁若鏞   정약용 

오랜 비에 심어 놓은 곡식이 상하다.

 

次韻東坡久旱甚雨之作三首 奉示淞翁 차운동파구한심우지작삼수 봉시송옹

동파의 구한심우의 시 세 수를 차운하여 송옹에게 받들어 보이다

 

旱苗禱雨遭河溢 한묘도우조하일

가물던 모에 비를 빌다 강물이 넘쳐나니

水邊禾黍驚漂失 수변화서경표실

물가의 벼와 기장이 떠내려갈까 두렵네

如燈須膏膏滅燈 여등수고고멸등

기름 모자란 등잔에 기름이 등불 끄듯이

養物太過翻害物 양물태과번해물

사물을 기를 때 지나침이 도리어 해롭네

破家沈竈復幾人 파가침조복기인

돌아오니 부서진 집 잠긴 부엌은 몇이며

澎湃水從房櫳出 팽배수종방롱출

물살이 방문을 통해 맹렬히 솟아 나오네

釣船拯溺氣獨盈 조선즌닉기독영

낚싯배로 사람을 건지자니 기가 막히고

急聲處處挼手乞 급성처처나수걸

곳곳에서 급한 소리로 손 모아 애걸하네

麥不暇晒薪更濕 맥불가쇄신갱습

보리 말릴 겨를 없고 땔나무도 젖었으니

懦奴吆喝愁黔突 나노요애수검돌

나약한 종은 검은 연기 시름에 소리치네

 

枯槁强學休糧師 고고강학휴량사

억지로 단식을 배워 스승께서 야위어지니

浩淼眞成水觀佛 호묘진성수관불

아득한 물은 진정 수관불을 이룬 듯하네

先生食貧尙豪橫 선생식빈상호횡

선생은 가난해도 오히려 의지가 강하시어

祿牌常縻護軍秩 녹패상미호군질

언제나 호군 직책의 벼슬에 매어 있었네

老我放逐三十年 노아방축삼십년

늙은 나는 쫓겨난 지 삼십 년이 되었는데

卽塡溝壑誰將卹 즉전구학수장휼

구렁텅이에 빠진다면 누가 구해주려 할까

家徒四壁食則再 가도사벽식즉재

집안엔 벽만 네 개라 하루 두 번만 먹고

世有三蠹吾居一 세유삼두오거일

세상의 삼 두 중에 내가 하나를 가졌구나

生涯敢說飮河腹 생애감설음하복

생애에 뱃속을 채울 물은 정해져 있다는데

天幸收回瘴江骨 천행수회장강골

다행히도 장강에서 몸 거두어 돌아왔구나

 

 

幼年已慣喫藜莧 유년이관끽려현

어려서부터 명아주 비름 먹기에 익숙하여

終歲無愁臥蓬蓽 종세무수와봉필

만년에 오두막에 누웠어도 근심이 없는데

何須待罥設蛛罟 하수대견설주고

무엇하려 쳐진 거미줄에 얽히길 기다릴까

不必求伸甘蠖屈 불필구신감확굴

굽힌 몸 감수하며 굳이 펴려 하지 않았네

恩怨都歸廟堂坐 은원도귀묘당좌

은혜와 원망은 모두 조정으로 귀결되지만

憂愉不出環堵室 우유불출환도실

근심과 즐거움 내 집 담장을 나가질 않네

扶筇出岸試觀漲 부공출안시관창

지팡이 짚고 언덕에서 넘치는 물 바라보니

快哉足以疏煩鬱 쾌재족이소번울

답답한 마음 풀기에 충분하여 상쾌하구나

但祝高田終有秋 단축고전종유추

다만 높은 밭에도 넉넉한 결실 맺길 빌며

欣見頑雲吐晴日 흔견완운토청일

두꺼운 구름이 토하는 맑은 해 기쁘게 보네

 

※淞翁(송옹) : 조선후기 진안현감, 정언, 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윤영희(尹永僖, 1761~?), 송옹(松翁)은 그의 호이며. 자는 외심(畏心),

 

※澎湃(팽배) : 큰 물결이 서로 부딪쳐 솟구치는 것, 맹렬한 기세로 일어남.

 

※吆喝(요갈) : 고함치다. 큰 소리로 외치다.

 

※黔突(검돌) : 시커멓게 솟아오르는 연기.

 

※枯槁(고고) : 초목이 말라 물기가 없음, 야위어서 파리함.

 

※水觀佛(수관불) : 수관을 한 부처, 수관은 불교 용어로써, 맑은 물을 보면서 극락의 대지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물의 맑은 것을 관상(觀想)하고 차차 생각을 진취시켜 나가면 유리와 같은 정도(淨土)의 대지가 넓고 편편하여 높고 낮은 데가 없고, 또 그 물과 같은 투명한 광명이 몸의 안팎에 두루 비치는 모양을 보기까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家徒四壁食則再(가도사벽식칙재) : 집안에 네 벽 말고 아무것도 없어 하루 두 끼 밖에 못 먹는 어려운 형편을 표현하였다.

 

※三蠹(삼두) : 삼두(三蠹)는 세 종류의 좀 벌레를 말한다. 속어(俗語)에 이른바 밥벌레, 잠 벌레, 글 벌레를 말하는데, 정약용 자신이 이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飮河腹(음하복) : 음하만복(飮河滿腹), 물이 많이 있더라도 마시는 분량은 실상 배를 채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이 제 분수의 넉넉함을 알아야 한다는 비유.

 

※瘴江(장강) : 장강(瘴江)은 풍토병이 심하며 습하고 독기가 심한 땅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유배지를 의미한 듯함.

 

※喫藜莧(끽려현) : 명아주와 비름을 먹는 가난한 생활을 말한다.

 

※蓬蓽(봉필) : 쑥이나 가시덤불로 지붕을 이은 가난한 사람의 오두막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