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重九日 (중구일) - 李奎報 (이규보)

-수헌- 2023. 10. 16. 16:18

重九日 旣以手病未出遊   중구일 기이수병미출유     李奎報   이규보  

중구일에 손의 병으로 나가 놀지 못하다.

 

去年尙州遇重九 거년상주우중구

지난해는 상주에서 중구일을 맞았는데

臥病沈綿未飮酒 와병침면미음주

병으로 오래 누워 술을 마시지 못하고

强携藜杖起尋僧 강휴려장기심승

억지로 일어나 지팡이 짚고 스님을 찾아

<予南行集 有重九訪資福堂頭詩 여남행집 유중구방자복당두시

나의 남행집(南行集)에 중구에 자복당두(資福堂頭)를 찾은 시(詩)가 있다.>

手撚寒香空自嗅 수년한향공자후

부질없이 국화를 들고 냄새를 맡았네

去年已去莫追悔 거년이거막추회

이미 가버린 지난해는 후회하지 않고

却待今年作高會 각대금년작고회

올해는 좋은 모임 꼭 가지려 별렀건만

豈知今年又病手 기지금년우병수

올해 또 손 병이 날 줄 누가 알았으랴

未趁好事時酒輩 미진호사시주배

시주 무리들의 좋은 일에도 못 나가네

亦復起飮嚼霜蘂 역부기음작상예

또다시 일어나 물 마시고 국화를 씹으며

未能免俗聊爾耳 미능면속료이이

속됨을 못 면하고 그저 지낼 뿐이구나

山妻笑勸良足歡 산처소권량족환

아내가 웃으며 권한 술도 족히 기쁜데

何必登高爛慢醉 하필등고란만취

어찌 높은데 올라 흠뻑 취해야만 하나

書生命薄何足道 서생명박하족도

서생의 기박한 운명을 어찌 말로 하랴

佳節年年病中度 가절년년병중도

좋은 명절을 해마다 병중에 지나는구나

落日愁吟遶菊籬 낙일수음요국리

석양에 울밑의 국화를 시름겹게 읊으니

西風有信猶吹帽 서풍유신유취모

가을바람은 믿음대로 모자에 불어오네

 

※資福堂頭(자복당두) : 자복(資福)은 국가와 왕실을 위해 복을 기원하는 사찰인 자복사(資福寺)를 말하며, 당두(堂頭)는 절의 주지 또는 주지가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沈綿(침면) : 병이 낫지 않고 오래 계속됨.

 

※未趁好事時酒輩(미진호사시주배) : 시주(時酒)는 계절에 맞는 술을 말하니 여기서는 국화주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구일에 국화주 마시는 좋은 모임에 못 나감을 말한다.

 

※聊爾(료이) : 구차한 모양. 잠시 잠깐 우선.

 

※登高爛慢醉(등고란만취) : 중구일(重九日)에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며 액운을 떨치는 풍속을 말한다.

 

 

 

〈이 시는 앞의 중구일 앞의 시 둘째 연에서 언급한 남행집(南行集)에 수록된 자복당두(資福堂頭)를 찾은 시(詩)이다〉

 

九日 訪資福寺住老 留飮   구일 방자복사주로 유음     李奎報   이규보  

구일에 자복사(資福寺)의 늙은 주지를 찾아 머물며 마시다.

 

門前不見白衣來 문전불견백의래

문 앞에 찾아오는 백의가 보이지 않아

獨向僧家索酒杯 독향승가색주배

홀로 술을 찾아서 절을 향하여 간다

枝揷滿頭香滿口 지삽만두향만구

머리에 가지 꽂고 입엔 향기 넘치니

免敎黃花恨虛開 면교황화한허개

국화가 헛되게 핀 것을 한하지 않게 했네

 

※不見白衣來(불견백의래) : 백의(白衣)는 술을 가지고 오는 심부름꾼을 말한다. 진(晉)의 도잠(陶潛)이 중구일(重九日)에 술이 없어 무료하게 있을 때 자사(刺史) 왕홍(王弘)이 보낸 심부름꾼이 백의(白衣)를 입고 술을 가지고 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술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枝揷滿頭(지삽만두) : 두목(杜牧)의 시 구일제산등고(九日齊山登高)에 ‘속세에선 담소할 이 만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국화를 머리 가득 꽂고 돌아가리라.〔塵世難逢開口笑 菊花須揷滿頭歸〕’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