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溟大師의 충절과 詩

丙子秋遊伽山(병자추유가산) - 四溟大師 (사명대사)

-수헌- 2022. 11. 19. 15:38

丙子秋遊伽山 병자추유가산      四溟大師 사명대사

병자년 가을에 가야산을 유람하다

 

吾生於世何似者 오생어세하사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났길래

嶔奇歷落無的當 금기역락무적당

험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맞는 데가 없네

人皆呼我是狂客 인개호아시광객

사람들은 모두 나를 미친 사람이라 하나

而我自謂誠非狂 이아자위성비광

나는 스스로 진정 미치지 않았다고 하네

衷情浩浩誰與說 충정호호수여설

넓고 넓은 충정을 누구와 더불어 말할까

咄咄空成雙鬂霜 돌돌공성쌍빈상

탄식하는 사이 공연히 귀밑털만 희어졌네

翻思子長遐游興 ¹ 번사자장하유흥

자장이 멀리 유람하던 흥을 문득 생각하며

腰間獨佩藏詩囊 요간독패장시낭

허리에 홀로 시 주머니를 감추어 지녔구나

携節又著靈運履² 휴절우저령운리

지팡이 끌고 또 사령운의 발자취를 따라서

直登伽耶山路長 직등가야산로장

가야산 길을 바로 올라가니 멀기도 하구나

時維九月白露下 시유구월백로하

때는 바야흐로 구월이라 흰 이슬이 내리고

處處黄菊當重陽 처처황국당중양

중양절을 맞아 곳곳에 노란 국화가 피었네

武陵橋下水清淺 무릉교하수청천

무릉교 아래에 흐르는 얕은 물이 맑아서

手掬一飮猶瓊漿³ 수국일음유경장

손으로 움켜 마시니 마치 경장과 같구나

紅流石刻如昨日 홍류석각여작일

홍류동의 돌에 새긴 글은 어제와 같은데

幾見楚存而凡亡⁴⁾ 기견초존이범망

범 망하고 초 존재함을 몇 번이나 봤을까

無言緬想千古事 무언면상천고사

말없이 천년의 옛일을 아득하게 상상하다

思窮計絶心茫茫 사궁계절심망망

생각과 계책이 다하니 마음만 망망하구나

青松白石坐來久 청송백석좌래구

푸른 소나무 밑 흰 돌에 오랫동안 앉았더니

日暮空翠沈横塘 일모공취침횡당

해가 저물어 푸른 하늘이 못에 잠기었구나

寥寥陰壑產靈籟⁵⁾ 요요음학산령뢰

쓸쓸하고 어두운 골짝에는 바람소리가 나고

晴川瀝瀝吹笙篁 청천력력취생황

굽이치는 맑은 냇물은 생황을 부는 듯하네

僮收枯葉烹茗飲 동수고엽팽명음

아이가 마른 잎을 모아 차를 끓여 마시니

滌蕩磊塊平生腸⁶⁾ 척탕뢰괴평생장

평생 쌓인 마음속 고뇌를 깨끗이 씻어내네

徘徊不覺夜將半 배회불각야장반

밤 깊은 줄 모르고 이리저리 거닐다 보니

星廻月隨天蒼蒼 성회월수천창창

별은 돌고 달은 푸른 하늘 따라 넘어가네

據梧抱脈暫瞑目 거오포맥잠명목

오동나무를 기대어 안고 잠깐 눈을 감으니

一眠萬事俱亡羊⁷⁾ 일면만사구망양

잠깐 졸음에 만사가 양을 모두 잃었구나

夢謁孤雲舊學士 몽알고운구학사

꿈에 옛날 학사이신 고운선생을 뵈오니

宛在岩下開琴箱 완재암하개금상

굽은 바위 밑에서 거문고 상자 열고 있었네

殷勤飡余百鍊液 은근손여백련액

은근히 나에게 백련액을 먹으라고 권하며

錯說商周幷漢唐 착설상주병한당

상주와 한당을 뒤섞어 이야기하네

冷冷風度散胡蝶 냉랭풍도산호접

서늘한 바람 지나가니 호랑나비 흩어지고

怳若簫鳴驥鳳凰 황약소명기봉황

갑자기 퉁소 소리 울려 봉황을 탄듯하구나

回瞻空碧宿雲盡 회첨공벽숙운진

푸른 하늘 돌아보니 자던 구름 사라지고

熙熙白日生東方 희희백일생동방

빛나는 밝은 해가 동쪽에서 올라오는구나

藤蘿絡石水聲激 등라락석수성격

등 넝쿨이 돌에 얽혀 물소리는 거세고

猿猱亂喞饒松篁 원노란즐요송황

솔과 대숲에 원숭이가 어지러이 두런대네

悠悠度入一柱外 유유도입일주외

유유히 일주문 밖에서 들어가니

曲池追思飛羽翔⁸⁾ 곡지추사비우상

곡지에서 날던 새들이 생각나는구나

梵王臺殿逼象緯⁹⁾¹⁰⁾ 범왕대전핍상위

범왕대전에 상위가 가까이 다가와서

金彩照曜浮輝光 금채조요부휘광

단청을 밝게 비쳐서 광채가 빛나네

危樓晨夕鐘鼓動 위루신석종고동

아침저녁 높은 누각에 종과 북이 울리니

兩兩蠶鶖迴長廓¹¹ 양량잠추회장곽

스님들은 짝을 지어 긴 행랑을 돌아가네

桐孫風伯奏廣樂¹² 동손풍백주광악

동손에 바람 불어 널리 풍악을 연주하고

絲網掩映龍海藏 사망엄영룡해장

명주 그물에 가려진 용은 바다에 숨었네

平明更陟最高頂 평명경척최고정

날이 밝아 다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依依羽化朝玉皇 의의우화조옥황

날개가 돋아 그리던 옥황을 알현하네

東瞻北望無天闕¹³ 동첨북망무천궐

동쪽과 북쪽을 바라봐도 천궐은 없고

仰觀俯察齊彭殤¹⁴⁾ 앙관부찰제팽상

우러러보고 굽어보니 팽상이 똑같구나

蓬萊方丈指顧内¹⁵⁾ 봉래방장지고내

봉래산과 방장산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弱水扶桑如在傍¹⁶⁾ 약수부상여재방

약수와 부상이 곁에 있는 듯하구나

 

※子長遐游(자장하유)¹ : 자장원유(子長遠游). 견문을 넓히기 위해 멀리 유람하는 것을 말한다. 자장(子長)은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의 자인데, 사마천은 일찍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전국을 유람하여 이때 얻은 산천의 지식을 통하여 명문장이 되었다 한다.

 

※靈運(영운)² :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시인 사령운(謝靈運). 그는 서정을 주로 하던 기존의 중국 문학 사상에 산수시(山水詩)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령운은 누대의 명족인 데다 집안이 부유하여 항상 수백 명의 문생과 시종들을 이끌고 명산대천을 찾아가 노닐었다. 사령운이 산을 유람할 때 산에 오를 때는 나막신의 앞굽을 빼고, 내려올 때는 뒷굽을 뺐다는 ‘사공극(謝公屐)’의 고사가 있다.

 

※瓊漿(경장)³: 선인(仙人)들이 마시는 음료. 옥즙(玉汁)이란 뜻으로, 전하여 진귀한 음료(飮料)를 가리킨다. 맛 좋은 술의 별칭이기도 하다.

 

※楚存而凡亡(초존이범망)⁴⁾ : 장자(莊子)의 전자방(田子方)에 초나라 왕이 작은 나라인 범나라 왕과 함께 앉아 있을 때, 초나라 신하들이 범나라가 망했다고 세 사람이나 말했다. 범나라 왕이 말하기를 ‘범나라가 망하더라도 내 목숨을 잃게 하지는 못합니다. 무릇 범나라가 망하여도 내가 목숨을 잃지 않는다면 초나라가 존속하더라도 존재하기에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살펴보면, 범나라가 처음부터 망한 것도 아니고 초나라가 처음부터 존속한 것도 아닙니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듯하다.

 

※靈籟(영뢰)⁵⁾ : 바람 소리, 또는 자연의 소리를 말한다.

 

※磊塊(뢰괴)⁶⁾ : 마음에 쌓인 걱정이나 불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亡羊(망양)⁷⁾ : 양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나, 마음이 다른데 뺏겨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다는 뜻.

 

※曲池(곡지)⁸⁾ : 長安城(장안성) 동남쪽 曲江가의 연못

 

※梵王(범왕)⁹⁾ : 불교의 우주론에서 욕계(欲界) 무색계(無色界)와 함께 3계(三界)의 하나인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에 속하는 가장 위의 하늘을 다스리는 왕. 제석천(帝釋天)과 함께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 수호의 신이다.

 

※象緯(상위)¹⁰⁾ : 일월오성(日月五星)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천문(天文)을 가리킨다.

 

※蠶鶖(잠추)¹¹ : 문맥상 스님을 의미하는 듯.

 

※桐孫(동손)¹² : 오동나무의 손자 가지[孫枝]. 오동나무 가지에서 다시 생겨난 가지를 말한다. 오동나무 중에서도 재질이 가장 좋아 훌륭한 자손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天闕(천궐)¹³ : 천제가 거처하는 궁궐.

 

※彭殤(팽상)¹⁴⁾ : 장수(長壽)와 요절(夭折). ‘彭’은 고대(古代)에 장수했던 팽조(彭祖)를, ‘殇’은 요절한 사람을 가리킨다.

 

※指顧(지고)¹⁵⁾ : 거리가 아주 가까움.

 

※弱水扶桑(약수부상)¹⁶⁾ : 약수(弱水)는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의 강. 부상(扶桑)은 동해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있는 전설 속의 나무. 전하여 동해바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 광해군 때인 1612년 허균이 비문을 지어 건립하였는데, 일제 때 일본 경찰서장이 네 조각을 내어 길거리에 방치하고 한 조각은 주재소 입구 발판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광복후 1958년에 복원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웠으며 보물 제1301호로 지정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