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大雪 (대설) - 申欽 (신흠)

-수헌- 2022. 12. 14. 11:15

大雪 대설     申欽 신흠 

 

金帳羔兒酒力綿 금장고아주력면

금장 안에서 면면히 고아주 마시는데 힘쓰며

閑披鶴氅小樓前 한피학창소루전

작은 누대 앞에는 한가로이 학창의를 걸쳤네

長天遠岫空明裏 장천원수공명리

멀리 산봉우리는 긴 하늘 속에 밝게 빛나고

暝樹歸鴉滅沒邊 명수귀아멸몰변

까마귀는 어둑한 숲으로 돌아가 사라지네

謝女高才徒詠絮 사녀고재도영서

사씨녀는 높은 재주로 버들개지라 읊었고

王郞淸興漫回船 왕랑청흥만회선

왕랑은 맑은 흥취에 따라 뱃머리를 돌렸네

衰翁筆退無情思 쇠옹필퇴무정사

늙은이 필력이 떨어져서 느낌도 없으니

唯向昌辰祝有年 유향창진축유년

오직 좋은 때를 바라며 풍년을 기원하네

 

※金帳羔兒酒力綿(금장고아주력면) : 금장은 금빛 휘장으로 화려한 휘장을 뜻하고, 고아주(羔兒酒)는 송나라 때 새끼 양을 잡아 고아서 만든 물로 빚은 술 이름으로 흔히 양고주(羊羔酒)라 부른다. 사람을 살찌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처방으로 쓰였다. 송나라의 학자 송기(宋祈)가 눈 오는 밤에 기생에게 종이를 들게 하고 당서(唐書)의 초고(草稿)를 쓰면서, 전날 당 태위(唐太衛)의 집에 있었던 기생에게 ‘네가 당 태위 집에 있을 때도 이런 풍경이 있었느냐’ 하니 기생이 '당 태위는 무인이므로 이런 운치는 모르고 눈 오는 날 소금장(銷金帳) 아래서 고아주(羔兒酒)를 마시며 노래를 즐기는 취미는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鶴氅(학창) : 학창의(鶴氅衣). 신선들이 입는 새의 깃털로 만든 옷. 진서(晉書) 왕공전(王恭傳)에 왕공이 언젠가 학창의를 입고 눈밭을 거닐었는데, 맹창(孟昶)이 울타리 사이로 그 광경을 엿보고 ‘참으로 신선세계 속의 사람이다. [此眞神仙中人也]’라고 찬탄했다 한다.

 

※謝女高才徒詠絮(사녀고재도영서) : 진(晉) 나라 왕응지(王凝之)의 아내 사도온(謝道蘊)이 총명하고 재주가 있었는데, 그가 어릴 때 숙부 사안(謝安)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분분히 내리는 하얀 눈이 무엇과 흡사한가 [紛紛白雪何所似]’ 하자, 형의 아들 낭(朗)이 말하기를 ‘공중에다 소금 뿌린 것과 다르지 않다 [撒鹽空中差可擬]’라고 하니, 사도온(謝道蘊)이 말하기를 ‘버들개지 바람 따라 일어남과 같지 않은가 [未若柳絮因風起]’ 한 데서 인용하였다. <世說新語>

 

※王郞淸興漫回船(왕랑청흥만회선) : 왕랑(王郞)은 진(晉)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를 말하는데, 그가 눈이 내리는 밤 흥에 겨워 배를 저어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그의 문전에서 다시 되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乘興而行 興盡而返]’고 하였다 한다. <晉書>

 

 

大雪 대설      申欽 신흠  

 

塡壑埋山極目同 전학매산극목동

눈 간 덴 하나같이 골짝 메우고 산을 묻으니

瓊瑤世界水晶宮 경요세계수정궁

온 세계가 옥처럼 아름다운 수정궁이로구나

人間畵史知無數 인간화사지무수

인간에 서화가는 수도 없는 줄 알지마는

難寫陰陽變化功 난사음양변화공

음양이 변하는 것은 그리기가 어렵구나

 

大雪 대설      申欽 신흠  

 

小屋迢迢掛半空 소옥초초괘반공

아득하게 반공에 걸려 있는 오두막에서

俯臨平野勢無窮 부림평야세무궁

내려다보니 너른 들판이 끝이 없구나

長風吹捲千厓雪 장풍취권천애설

센 바람이 모든 비탈의 눈을 몰아다가

變盡山川一氣中 변진산천일기중

한꺼번에 산천들을 모두 바꾸어 놓았네

 

 

大雪 대설      申欽 신흠  

 

長雲萬里正崔嵬 장운만리정최외

높고 험악한 구름이 만 리에 뻗치더니

絶峽千重朔氣催 절협천중삭기최

골짝에 천 겹의 찬 기운이 밀어닥치네

昨夜昭陽江上雪 작야소양강상설

어젯밤 소양강에 눈이 많이 내렸는지

朝來不見鳳凰臺 조래불견봉황대

아침 되니 봉황대가 보이지 않는구나

 

*신흠(申欽,1566~1628) : 조선시대 예조참판, 자헌대부,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 상촌(象村) 현옹(玄翁) 방옹(放翁).